환대와 경청의 삶 (3/14)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을 경청이라고 합니다.
매우 힘든 일이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이 정서적으로 안정이 돼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평화롭고 안정 될 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그리고 진지하게 잘 새겨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경청하는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평화로움에 더하여 말을 하는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신뢰도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경청이란, 말하는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 사람을 나 자신 안으로 기꺼이 맞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경청한다고 느낄 때
말하는 상대방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음을 체감하게 됩니다.
그러면 말하는 상대방도 자신의 말을 좀 더 신중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하게 되겠죠.
귀 기울여 듣는 것은 다시 환대의 형태로 드러나게 됩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서로를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환대받고 있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경청은 낯선 사람을 친구로 만들 수도 있고, 그들의 내면을 잘 이해하게 될 것이며,
심지어는 영적인 차원에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환대하고 경청하는 것, 혼란스럽고 탁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일 수 있습니다.
이를 영성 훈련 전통에 따라 이해해 보겠습니다.
성서에 보면 하느님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서 하느님은 쉬지 않고,
우리에게 메시지와 사인을 보내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는 그래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죽 나열하고는 정작 그분이 내게 하시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미숙한 기도일 뿐입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그분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의 환대는
모든 것을 멈추고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나의 자아와 에고가 너무 크고 많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곤 합니다.
내 마음자리에 너무도 많은 것이 채워져 있기에 하느님께서 들어오실 공간이 없습니다.
환대할 여유가 없으니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공간도 부족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게 되죠.
그리고 사람에게서 그 사랑을 받지 못할 때 상처를 입게 되고,
다시 남에게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이런 관계적 상처를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것을 사람에게서 받기를 원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끔찍한 악마가 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끊임없는 성찰로 자신의 평화를 이루려는 환대와 경청의 노력이
연약한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