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두려움을 넘어서서
-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심판과 종말’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인간에게 죽음은 넘어설 수 없는 운명이고,
특히 그리스도교에서는 최후의 종말에 대한 확고한 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지옥 장면은 약방의 감초처럼 자주 등장합니다.
중세 시대에는 신자들 대부분이 글을 모르는 문맹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미술작품과 이콘 즉 성화였습니다.
교회와 성당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신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가장 훌륭한(!) 주제는
바로 지옥이었을 것입니다.
중세 시대 성당에 신자들이 드나드는 서쪽 문 입구 위의 반원형 공간을
팀파눔이라고 합니다.
그 곳에는 아주 흔하게 '최후의 심판'이 조각으로 혹은 그림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성당에 들어가고 나가며 신자들에게 온갖 상상을 불러일으킨 것이겠지요.
위대한 미술가 미켈란젤로(1475~1564)역시
시스티나 성당의 벽에 거의 10년에 걸쳐(1536-1545) ‘최후의 심판'을 그렸습니다.
성모 마리아, 세례자 요한, 안드레, 베드로, 바울 등
무려 390명 이상의 인물을 묘사했고,
구름 위의 천국에는 승천한 선한 이들과 천사의 나팔이,
다른 한쪽에는 저주받은 이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참혹한 광경이 나타나 있습니다.
왼쪽 천사의 손에 들린 장부의 두께는 얇고,
오른쪽의 천사의 장부는 두껍습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나오는 삼도의 나룻배도 보입니다.
교회의 교리를 거의 완벽하게 표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본 체세나 추기경은 그림의 인물들이 너무 난잡하다고 비난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온몸을 뱀이 칭칭 감는 벌을 받고 있는 지하의 사신(邪神) 미노스에
바로 추기경의 얼굴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것도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 바로 위쪽으로 눈에 잘 띄는 위치였습니다.
추기경이 교황에게 불평을 하자
교황은 지옥은 자신의 영역 밖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성경 마태 25:31-46절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 말씀을 토대로 본다면
심판은 인간의 극진한 선행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양모 신부님은 이 구절을 ‘불쌍한 사람들과의 진한 연대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온통 자기에게만 시선을 빼앗겨
다른 이들의 아픔과 어려움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되새겨봅니다.
무지몽매한 이들에게 심판은 막연한 두려움과 절망일 수 있습니다만
눈 밝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고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안전과 평안이 염려되는 이 시기
우리는 두려움을 넘어 희망을 기대하는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 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