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갈마동의 한 자그마한 루터 교회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거의 1년이 지나 다시 주일 예배에 참석했는데 목사님이 저를 기억해주시고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다행히 중고 서적 중에 루터교 예배 예문과 설명을 덧붙인 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루터 교회는 국내 일반 개신교 교단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전례(Liturgy)의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는 교회입니다. 다만 그 전통적 전례를 개신교적 입장에서 해석하고 계승해왔다는 것이 특징이지요. 우선 루터 교회 예배와 성공회 감사성찬례는 큰 틀에 있어서 아주 유사합니다만, 몇 가지 측면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우선 루터 교회의 목사님도 절기에 따라 예복의 색깔을 맞추어 입습니다. 제단 양편에 초를 켜두는 것 역시 비슷합니다. 다만 제가 갔던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흰 예복(alb)에 색깔이 있는 영대(stole)만을 두르시더군요. 제가 알기로는 이것이 한국 루터교회의 일반적인 관행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예배당 제대는 일반 개신교회에서 쓰는 고상이 없는 십자가를 쓰고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영상으로 보았던 한국 루터 교회 예배에서도 십자고상이 아닌 일반 십자가가 배치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회로서는 특이하게도(미국 개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 개신교의 맥락에서는 특히), 서방 그리스도교(로마 가톨릭과 성공회)의 전통적인 교회력에 따라 몇몇 성인들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가령 대한성공회에서 주요 축일로 지키는 8월 15일 성모안식축일의 경우, 한국 루터 교회 달력에서는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표기되어 있는 식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1월 18일은 ‘사도 베드로의 고백’, 6월 24일은 ‘세례 요한의 탄생’으로 각각 표기되어 있습니다.
(목사님한테 받은 달력입니다)
물론 루터 교회 달력에서 기념하는 분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성인’이라기보다는 교회 역사의 위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한국 루터 교회가 기념하는 위인들은 성서 속 인물입니다. 루터 교회 달력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나 성공회에서처럼 성 니콜라나 성 베네딕트 같은 분들은 따로 표기해 두지는 않습니다.
설교 이전에 신앙 고백(사도신경 혹은 니케아 신경)을 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복음서 낭독 시간에도 향을 피우지 않고 일반 개신교처럼 낭독을 합니다.(일부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이 복음서 낭독을 예배 중에 빼는 경우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리 바람직해보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예배 도중 가장 눈에 들어왔던 부분은 예배 초반 기도와 봉헌 이후 기도에 성직자가 제대 쪽을 향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예전에 갔을 때는 영광송을 부를 때도 목사님이 제대 쪽을 향해서 영광송을 불렀습니다.
나중에 조사해보니까 성직자가 예배 중 제대 쪽을 향하는 것은 기도와 찬양에 있어 제사적인 의미(하느님께 청원하고 드린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예배 중에 성직자가 제대 쪽을 향해 있는 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도 사라진 전통으로 알고 있습니다.(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고 있는 현대 천주교 미사 전례는 시대에 걸쳐 여러 차례 공의회와 신학적인 논의를 거쳐 변화를 거친 것입니다)
대한성공회의 전례와 차이가 두드러지는 점은 성찬 기도 부분이었습니다. 대한성공회의 성찬기도에서처럼 성체 거양을 하지 않고 축성기도 이후 주의 기도와 하느님의 어린양을 부릅니다.
성찬기도문은 대한성공회가 훨씬 다양하고 포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성공회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1양식 1형식 외에도, 동방 그리스도교(동방 정교회, 콥트 정교회 등)의 성찬 예배 예문을 참고한 3,4형식 등 특정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교회의 입장을 배려하면서 우리의 예배 가운데 현존하시는 주님(Real Presence)을 강조하기 위한 흔적이 대한성공회 기도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한편, 한국 루터교회의 문답과 성찬기도문에서는 루터의 전통적인 성만찬에 대한 교리적 이해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 듯합니다.
제가 부족하게나마 이해한 바를 결론적으로 표현하자면, 루터교회의 전례는 성공회에 비해서 더 간소하면서도 전통에 대한 비판적 해석 및 계승이 돋보입니다. 성공회의 감사성찬례는 루터교회의 전례에 비해 더 포괄적인 면모가 돋보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종교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전례가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Liturgy’의 원래 어원을 살펴보면 ‘일하다, 작동하다’는 의미에서 왔다고 합니다. 이 의미는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 신앙에 있어 본질적인 것을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믿음과 신앙은 언제까지나 현재진행형이니까요. 성공회 전례의 포괄성은 어찌 보면 모험일 수도 있습니다. 삶 가운데 마주하게 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통해 신앙이 깊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전례가 Liturgy로서가 아닌 그저 형식(Formality)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믿음과 신앙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은 미래에 있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제가 가진 이 믿음, 신앙을 통해 계속 일하고 작동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길을 잃고 신앙과 믿음을 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저는 솔직히 이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강한 것도 아니고 신앙이 아주 깊은 것도 아니어서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구원받았습니까’라는 질문 자체가 좀 넌센스라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에는 믿음의 지속성이 빠져있고 일회성만 강조되어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지상에서 여러 그리스도교 교단이 지키고 있는 ‘전례’는 아주 뜻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이해와 방향이 조금 다르다고 해도요. 루터 교회의 예배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 의미에 대해 고찰해보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루터교는 국내에서 성공회의 교세에 10분의 1도 못미칩니다. 목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꽤나 열악한 상황인 것 같더군요. 이 교회만 해도 당일 예배 참석자는 목사님 외에 열 명도 못미쳤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은 교회가 한국 개신교계에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서 성공회와 루터교회가 앞으로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교회로 ‘작동’할 수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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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심안토니오 작성시간 16.01.06 안타까운 것은 루터교는 전례의 역사도 깊고 독일신학의 신학적 깊이도 상당하지만 국내 루터교는 용어나 형식에 있어서 장로교적 색채가 강한 측면이 있습니다. 정통 루터교의 모습보다는 다분히 개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반증이기도 한데 이는 성공회가 형식적인 면에서 구교의 틀을 유지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대조적인 길을 걸어왔다고 할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개신교가 처한 위기적 상황에서 이러한 포지션이 향후 각 교단에 어떤 장단점으로 다가올지는 지켜 볼 일이기도 합니다. 여튼 좋은 경험하고 왔군요. 저 역시 한국 루터교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더욱 성장하기를 바래봅니다. '컨콜디아사' 참 오랫만에 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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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다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1.08 목사님 얘기로는 일반교회예배당으로 알고 들어갔는데 복장이나 예식같은 외적요인들을 보고 도로 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루터교 예배의 외형적 요소를 보고 천주교예배와 같지 않냐는 질문을 예로 들더랍니다. 제 기준에서는 영락없는 개신교 예배당이었는데 말이죠. 사실 이런 시각의 차이는 결국 신자들 개개인의 통념과 일반적인 경험에서 기인한바가 큰것같습니다. 앞서 언급하신 그런 방어적 자세는 열악한상황과 좌절의 경험에서 기인한바가 크다고 봅니다. 개신교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해 일반개신교인들에게 스스로를 변호(?)해야하는 상황, 게다가 물적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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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다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1.08 에서 일반개신교회에 절대적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아무리 선교계획을 야심차게 잡아도 제대로 실질적 효과를 맺지못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 대한 한탄을 들었습니다. 제가 구체적인 정황은 모르지만, 저는 언급하신 그분들의 태도를 어느정도는 이해할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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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월둔 작성시간 16.01.19 한국루터교회에 대한 정확하고 깔끔한 정리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루터교회는 성공회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던 1970년대에 이미 루터란아워, 컨콜디아 출판사를 비롯해 한국개신교에서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독일교회의 연계를 잘 해내오던 튼실한 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한국상황에서 서양의 기독교적 전통이 한국교회에서 교단별로 꽃을 피울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없었습니다. 한편으로 순복음으로 대표되는 오순절파의 풍요의 신학, 번영신학이 한국기독교회를 잠식해 갔고,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화의 요구에 숨가쁘게 대처하느라 교회목회, 교단의 개혁은 뒤로 미루어 둔채 발전해왔던 사회참여의 신학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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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월둔 작성시간 16.01.19 한국기독교는 교단적 정체성-이것은 서구기독교회가 발전시킨 전통이다-은 사라지고 두가지로 분화한 다음 후자는 사멸해 갔습니다. 그런데 성공회는 유독 후자의 사회참여신학으로 그 명맥을 유지했고 덜 퇴락했습니다. 한국성공회는 이상하리만치 사회참여신학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혁을 겪어냈습니다. 그 결과 루터교회와 성공회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70년대 루터교회는 성공회보다 훨씬 큰 교단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된 것이지요. 왜 그렇게 되었을까?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성찰해 보지 않으면 우리도 곧 루터교회와 같은 운명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