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5일 성령강림주일 : 요한 14:8-17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니 무슨 말이냐?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제 아버지께 가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주겠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내가 이루어주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 오늘의 말씀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 오늘의 묵상 : 교회정원 가꾸기
“세상은 성령님을 몰라서 받아들일 수 없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진리를 찾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바로 이것인 걸까요? ‘아는 것’ 말입니다. ‘알아채는 것’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갖은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를 바가 없어요. 아니, 어쩌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해. 세상 사람들은 적당히 양보도 하고 타협도 하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 보면 누구 흉을 왜 그렇게 보는지 몰라요. 경로당에 앉아 있으면 교회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이 남 흉을 제일 많이 봐.” 세례교리교육을 받으시던 한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시골이라서 교회 정원이 좀 넓은 편입니다. 그런데 교회 정원 가꾸는 일로 가끔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 일을 도맡아 봉사하는 교우는 심사숙고하여 가지치기도 하며 정원수들을 가꿉니다. 그런데 다른 교우들이 너무 짧게 잘랐다거나 나무가 너무 웃자랐다거나 한마디씩 거들다 다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봄이 되면 누군가는 정성들여 씨앗을 뿌리고, 누군가는 잡초를 뽑는다며 새싹을 뽑아버립니다. 중재가 난감한 것이, 모두가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너희 안에”라는 말씀이 들어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안에’가 아니라 공동체인 ‘너희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여 정원 가꾸기에 일치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 안목과 내 깨달음이 공동체의 안목과 깨달음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 안에 선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