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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매일 묵상]요한 1:1-18 (26. 6. 8. 월)

작성자stephano|작성시간26.06.08|조회수40 목록 댓글 0

요한복음 묵상

생명을 사는 삶

 

202668()

 

요한 1:1-18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

1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2 말씀은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4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증언을 듣고 믿게 하려고 온 것이다.

8 그는 빛이 아니라 다만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말씀이 곧 참 빛이었다. 그 빛이 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10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주지 않았다.

12 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3 그들은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치기를 "그분은 내 뒤에 오시지만 사실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 때문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분을 두고 한 말이다." 하였다.

16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 또 받았다.

17 모세에게서는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

18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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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을 한 단어로 설명하라고 하면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4) 이 담대한 선언이 요한복음을 꿰뚫는 정수와 다름없습니다.

그 생명은 그분의 살을 먹고,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서로 얽혀있는 관계로서의 생명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굳센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요청하시는 신념을 통한 생명입니다. 그분의 희생으로,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착한 목자로서의 생명이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심입니다.

우리도 그분의 생명을 사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묵상을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서문에 해당하는 오늘 본문을 이른바 로고스 찬가라고 부릅니다. 한 처음부터 존재했던 말씀으로 번역된 헬라어 로고스(λόγος)는 정신, 이성, 우주의 원리, 진리, 말씀 등의 의미를 품고 있는 대단한 단어입니다. 요한복음이 말씀이라고 선포한 로고스 찬가야말로 그리스도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같은 분이라는 사실만큼은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성육신의 고백인거죠. 요한복음 서문 전체에서 주일 성찬례에서 고백하는 니케아 신경이 생각나실 겁니다. 그만큼 우리 신앙의 핵심 요소들과 고백이 들어있는 복음입니다.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0) 요한복음에서 세상은 두 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하느님이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는 대상으로서의 긍정적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적대적인 세력으로서의 부정적 의미도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려 생명을 주신 분을 세상이 알지 못하고 적대시한다는 말입니다.

 

자주 등장하겠지만 요한복음에서 영광이라 함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14)는 말은 그분의 능력은 물론 십자가의 수난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수난과 죽음으로써 영광을 이루신다는 의미를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한 번도 눈으로 뵌 적이 없는 하느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천천히 따라 읽으며 무한히 넓고 깊은 하느님의 뜻,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깊은 본질을 찾아가도록 합니다.

 

서삼독(書三讀)이라 했습니다. 책은 세 번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먼저 본문을 읽고 다음으로 필자를 읽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복음을 쓴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함은 결국 자기 자신을 보는 일이 분명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말씀을 통해 깊은 묵상으로 이끄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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