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지으신 만물을 극진히 사랑하시며, 죄를 통회하는 모든 이를 용서하시나이다.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진심으로 죄를 통회하고 탐욕과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온전한 구원을 바라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이사 58:1-9상
1 “목청껏 소리질러라. 네 소리, 나팔처럼 높여라.
내 백성의 죄상을 밝혀주어라.
야곱 가문의 잘못을 드러내어라.
2 그들은 나를 날마다 찾으며,
나의 뜻을 몹시도 알고 싶다면서,
마치 옳은 일을 해 온 백성이기나 하듯이,
자기 신의 법을 어기지 않은 백성이기나 하듯이,
무엇이 옳은 법인지 나에게 묻고
하느님께 가까이 나가고 싶다면서
3 한다는 소리는,
‘당신께서 보아주시지 않는데
단식은 무엇 때문에 해야 합니까?
당신께서 알아주시지 않는데
고행은 무엇 때문에 해야 합니까?’
그러면서 단식일만 되면 돈벌이에 눈을 밝히고
일꾼들에게 마구 일을 시키는구나.
4 그렇다,
식한다는 것들이 시비나 하고 싸움이나 하고
가지지 못한 자를 주먹으로 치다니, 될 말이냐?
오늘 이 따위 단식은 집어치워라.
너희 호소가 하늘에 들릴 리 없다.
5 이 따위 단식을 내가 반길 줄 아느냐?
고행의 날에 하는 짓이 고작 이것이냐?
머리를 갈대같이 구푸리기나 하고
굵은 베를 두르고, 재를 깔고 눕기나
하면 그것으로 다 될 듯싶으냐?
그게 이른바 단식이라는 것이냐?
그러고도 야훼가 이 날 너희를 반길 듯싶으냐?
6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주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주고
멍에를 풀어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버리는 것이다.
7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8 그렇게만 하면 너희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
너희 상처는 금시 아물어
떳떳한 발걸음으로 전진하는데
야훼의 영광이 너희 뒤를 받쳐주리라.
9 그제야, 네가 부르짖으면, 야훼가 대답해 주리라.
살려달라고 외치면, ‘내가 살려주마.’ 하리라. …”
시편 51:1-4, 16-18
1 하느님, 선한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어지신 분이여, 내 죄를 없애 주소서.
2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3 내 죄 내가 알고 있으며
◯ 내 잘못 항상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
4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만 죄를 지은 몸,
◯ 당신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한 이 몸입니다.
¶ 벌을 내리신들 할 말이 있으리이까?
◯ 당신께서 내리신 선고, 천번 만번 옳습니다.
16 당신은 제물을 즐기지 아니하시며
◯ 번제를 드려도 받지 아니하십니다.
17 하느님, 내 제물은 찢어진 마음뿐,
찢어지고 터진 마음을
◯ 당신께서 얕보지 아니하시니,
18 어지신 마음으로 시온을 돌보시어
◯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게 하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마태 9:14-15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우리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주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자 15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잔치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곧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오늘의 묵상: 단식의 역설
사순절의 초입을 지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시기를 단식과 자선과 기도의 계절로 지켜왔지요.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은 뜻밖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습니까?” 이 단식의 계절에 ‘단식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묵상하게 하는 전례독서의 인도는 하나의 역설처럼 다가옵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질문이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나란히 놓고, 예수님의 제자들과는 구분 짓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정작 바로 눈앞에 현존해 계신 예수님,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느냐?” 이 말씀 앞에서 단식의 본령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 안에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는 신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단식은 단순한 신앙의 의무나 형식만 남은 경건의 표지가 아니라, 신랑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영혼의 갈망을 고양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먹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구원의 은총 또한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으로 드러나지요. 우리는 단식을 통해 ‘먹는 것’을 끊어 냄으로써 우리의 유한함과 나약함, 주님을 향한 전적인 의존을 고백합니다. 동시에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으로 우리를 풍성히 먹이시는 주님의 은총에 참여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단식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며, 오늘 나는 정말 신랑과 함께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신랑 되시는 그리스도여,
우리의 ‘먹는 것’을 변화시키소서.
당신과 함께하며 날마다 베푸시는 은총의 잔치에 기쁨으로 참여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