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2022.07.31] 연중 18주일

작성자청봉|작성시간22.08.04|조회수45 목록 댓글 0

겸손과 사랑 그리고 기쁨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아멘.

고사성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년수곡, 십년수목, 백년수인’이란 말이 있습니다. 1년을 번성하려면 곡식을 심고, 10년을 번성하려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번영하려면 사람을 키우라는 뜻의 고사성어입니다. 참으로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어느덧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들어 와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외국인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온 노동자인데,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한국은 필리핀에 비해 매우 작은 나라이고, 자원도 필리핀에 비해 적은데, 어찌하여 오늘날 한국은 세계 경제대국 10위에 이르게 되었는가?’하고 질문합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오늘의 고사성어를 떠올리며 대답했지요.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한국은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키웠습니다.’하고 대답했지요.

이 땅의 역사는 어떠합니까? 20세기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에 국권을 빼앗기고 40년 가까이 식민지 통치를 받습니다. 그리고 해방을 맞이하나 남과 북으로 분단되고 얼마 후 참혹한 민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합니다. 온 국토가 전쟁으로 초토화되었습니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지요. 그랬던 이 나라가 지금은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어찌 이것이 가능했겠습니까? 곡식을 심어 당장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좀 굶더라도 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었지요. 그 덕에 온 산천이 숲으로 둘러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키웠지요. 우리의 부모님들이 그랬습니다. 당신은 굶는 한이 있어도 자식들 공부에는 적극적으로 투자를 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이러한 고사성어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합니다. ‘일년수곡, 십년수목, 백년수인 그리고 천년수학’ 1년을 번성하려면 곡식을 심고, 10년을 번성하려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번영하려면 사람을 키우고, 1000년의 생명을 이어가려면 ‘학문’을 세우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학문이란 ‘깊은 생각’을 말합니다. 깊은 생각이란 목숨과도 맞바꿀 수 있는 생각을 말합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러한 깊은 생각을 가리켜 ‘철학’ 또는 ‘사상’이라 말합니다. 저는 그 깊은 생각을 가리켜 ‘종교적 가르침’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더 쉽게 말해서 ‘진리’를 말합니다. 진리는 변함이 없지요. 그래서 진리를 바로 세울 때 우리의 생명은 천년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떻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습니까?

이러한 저의 생각은 우리가 따르는 그리스도교를 통해 증명됩니다. 오늘 우리는 서기 2022년을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 2천 년의 시간이 흘렀지요. 이러한 두 번의 천년이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인류에게 전해진 복음, 즉 참다운 진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없었고 그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존재들이 없었다면 인류의 지난 두 천년이 가능했을까? 저는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어리석은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화를 들어 설명합니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얻게 되어 ‘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하며 혼자 궁리하다가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 창고를 헐고 더 큰 것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 두어야지.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리라.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하고 말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고 하셨다.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여러분은 ‘부자삼대’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부자가 잘 돼야 삼대까지밖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삼대를 계산해 보면, 90년이 되겠네요. 100년에 이르지 못합니다. 잘 해야 90년인데, 어찌 천년을 내다볼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영원히 부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몇 년이 아닌, 잘 해야 90년이 아닌, 천 년 이상을 갈 수 있는 길을 일깨워 줍니다. 그 길이란 무엇입니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그 길을 발견합니다. 즉 하느님께 인색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하느님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길이 천 년 이상을 가는 길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길은 진리이지요. 앞서 말씀드린 깊은 생각입니다. 큰 학문을 의미하지요. 자기 자신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고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의 복음말씀 다음 구절에 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를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살아갈까, 또 몸에다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더 귀하고 몸이 옷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란 하느님의 뜻을 말하겠지요. 그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아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복음말씀은 재물을 하늘에 쌓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해어지지 않는 돈지갑을 만들고 축나지 않는 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하여라.” 하늘에 쌓는다는 의미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재물을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재물이 필요한 존재들과 나누라는 말씀이지요.

“너희는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라는 말씀을 따라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 신앙의 선조가 있습니다. 바로 프란시스 성인입니다. 프란시스 성인은 1181년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는 깊은 생각을 품었지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깊은 생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1226년 10월 3일에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육신은 땅에 묻혔지만, 그의 영혼은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인께서 돌아가신 후 800년이란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의 삶과 가르침은 오늘까지 꿋꿋하게 이어져 오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서신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어서 이렇게 권고를 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죽이십시오. 음행과 더러운 행위와 욕정과 못된 욕심과 우상숭배나 다름없는 탐욕 따위의 욕망은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진노를 살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천상의 것들이 무엇인지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세속적인 욕망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바로 천상의 가치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 저는 천상의 가치들 가운데, 앞서 언급한 프란시스 성인께서 강조한 세 가지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프란시스 성인께서 생각하신 천상의 것이란 자신의 재능을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하느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은총 세 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과 사랑 그리고 기쁨’입니다. 프란시스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겸손, 사랑, 기쁨은 모두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다. 이것들은 성령의 선물이다. 그리스도의 목적은 기꺼이 자신을 비우고 그분에게 굴복할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기적을 행하는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가 강력한 사역을 완수하시는 은총의 통로가 된다.”

저는 이 세 가지를 분별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모든 행위 속에서 겸손과 사랑 그리고 기쁨이 경험되지 못한다면 멈추어라. 그리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라. 그것은 필시 내 자신의 욕망을 위한 것이리라. 또한 이 세 가지 가치들을 향해 기도정진 하다 보면 내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제 영혼의 생명은 깊어지고 후대로 이어집니다.

‘일년수곡, 십년수목, 백년수인 그리고 천년수학’을 말씀드렸습니다. 깊은 생각, 참된 진리를 품어야 천년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땅에 고려라는 나라가 탄생할 때 불교의 가르침을 참된 진리로 품었습니다. 그 덕에 500년의 역사가 이어졌지요. 그 이후 조선이라는 나라는 유교의 가르침을 깊은 생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또한 500년의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그 이후 이 땅의 사람들은 모진 고통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 속에서 값진 피를 흘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조선 말기의 끔찍한 정치, 경제적 상황 속에서도, 일제 식민지와 전쟁의 와중에서도,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신 값진 가르침을 붙들고 의지했습니다. 그것이 참된 진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덕에 오늘의 물질적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진리가 천 년 이상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 소망합니다. 우리의 각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지금은 다소 위태롭게 보이고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선조들이 피를 흘리면서 받아들이고 세워왔던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회개하며 거듭 처음의 마음과 뜻을 회복하는데 정성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혼의 생명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멘.

[출처] 겸손과 사랑 그리고 기쁨|작성자 호빵맨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