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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성당들

[서울교구] 성공회 인천 내동 성 미가엘교회

작성자성천|작성시간09.11.02|조회수980 목록 댓글 0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인천 내동 성 미가엘 성당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영국 성공회의 한국 선교의 시작은 1890년 9월부터이다.

조선 개척선교사로 1889년 11월 1일 Westminster대성당에서 선출된 Charles John Corfe주교(한국명 고요한)는 1890년 9월 29일 제물포항에 도착해서 인천에 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인 성미가엘교회를 설립하고 선교활동에 들어갔다.

이것이 성공회 인천내동교회이다.

 

내동교회는 이듬해 10월 교회 이웃에 인천 최초의 서구식 병원인 성(聖) 누가 병원을 세웠다.

당초 교회 건물은 1891년 9월 30일 준공하였으나 한국전쟁 때에 소실되었고 현재 건물은 1955년 8월 28일 정초를 놓고 H-Beam을 기초로 사용하여 1956년 6월 23일 완공하였다.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51호이다.

 

코프 주교와 랜디스 선교사로 시작된 조선 사랑과 지역 봉사의 열매는 인천내동교회를 시작으로 풍성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1965년에는 ‘성 미카엘(St. Michael)’ 유치원을 설립하였다.

부모들이 직장 때문에 돌보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을 교회가 대신 돌보고 가르치는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또한 1989년 6월에는 ‘송림동 나눔의 집’을 설립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지역사회를 섬기고 봉사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성 미카엘 종합사회복지관’을 건축하여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동, 청소년은 물론 장애인 복지, 노인복지, 상담실을 운영하여 인천 시민의 삶을 향상 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다.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성 미가엘 교회)

 

 

          1892년 모습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당초 교회 건물은 1891년 9월 30일 준공하였으나 한국전쟁 때에 소실되었고 현재 건물은 1955년 8월 28일 정초를 놓고 H-Beam을 기초로 사용하여 1956년 6월 23일 완공하였다.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외벽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종탑

 

 

        교회 마당의 유적물

 

 

         교회 마당의 유적물

 

 

                      내동교회 약사 및 영국병원석

 

 

         내동교회 약사 및 영국병원석 (성 누가병원)

 

영국병원 돌비는 교회 옆  ‘성 미카엘 종합사회복지관’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땅속에 묻혀있던 것을 발견하였다.

영국병원으로 명했던것은 당시 미국인 의사뿐 아니라 영국인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동교회 약사 (한국 최초의 성공회)

 

 

         내동교회 안내판

 

 

                     내동교회 약사

 

 

                     성 누가병원 기념비,  ‘약선시직원(藥善施直院)

 

코프 주교와 한국 선교를 위해 같이 입국한 미국인 출신 선교사가 있었다.

그 이름은 엘리 바 랜디스(Eli Barr Landis, 한국명 남득시) 선교사이다.

그는 미국 펜실베니아 출신으로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의료 선교사였다.

그리고 이들과 같이 영국 퇴역 의무관 출신인 와일스(Wiles)와 간호교육을 받은 2명의 수녀도 동행하여 조선에 들어왔다. 

1891년 4월 20일, 250달러를 주고 인천내동교회 옆에 작은 진료소를 설치하여 랜디스 선교사를 중심으로 의료 선교를 시작하였다.

‘성 누가 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진료소는 인천 최초의 서구식 병원이다.

진료를 시작하고 3개월 동안 34명의 입원환자와 76명의 외래환자를 진료하게 되었고, 왕진진료 25명이라는 성과도 올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성 누가 병원’은 치료비를 받지 않아 아픈 조선인들이 부담 없이 찾아오도록 하였다.

‘온돌 입원방’, ‘가마 앰블런스’는 인천 제물포에서도 화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성 누가 병원’의 또 다른 이름은 ‘약선시직원(藥善施直院)’-선행을 베풀면서 기쁨을 주는 병원이란 뜻이다.

‘성 누가 병원’을 운영하던 랜디스 선교사는 작은 질병에도 고통스러워하는 조선인 환자를 돌보다가 결국 과로로 쓰러지게 되었다.

조선 선교를 향한 그의 열정은 1898년 4월 14일, 32세라는 짧은 나이에 멈추게 되었다. 

 

 

         성 누가병원 창설자 Eli Barr Landis 미국인 선교사 기념비

 

 

                      예수 그리스도 상

 

 

내동교회 사제관

 

 

         내동교회 사제관

 

 

                      2004.2.11 에 설치한 러시아 감사 현판 (사제관 벽에 부착)

 

사제관 동쪽입면에는 "1904년 이 자리에 진료를 받았던 순양함 '바랴그'호와 포함 '코레에츠'호 러시아 선원들을 추념하며. 감사드리는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2004년 2월 11일"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하나 붙어 있다.

이 현판은 이 교회가 있던 자리에 Charles John Corfe주교와 Eli Barr Landis라는 미국인 선교사가 설립했던 인천 최초의 서구식 병원 '성 누가병원'과의 역사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교회 내부 입구, 교회 내부는 좌측문으로 들어간다.

 

 

교회 내부 제대

 

 

                    십자고상과 제대

 

 

                   제대

 

 

                    제대

 

 

                    제대 스테인드글라스와 촛대

 

 

제대 강단

 

 

         강단의자

 

 

                     제대 옆 감실

 

 

         내부 회중석

 

 

         내부 십자가 14처

 

 

글,사진: 성화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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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성공회 병원(성누가병원)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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