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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동번역 성서>는 선종완 신부와 문익환 목사가 중심이 되어 구약편을 번역했다. |
내가 참말로 애석하게 생각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이 뭣인가 하니, 한국 기독교와 천주교가 <공동번역 성서>를 폐기처분하다시피 한 일이다.
(성공회에서는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한다.)
내가 6년 동안 서울 가톨릭 대신학교에 다닐 적에 성서, 히브리어, 그리스어를 가르치던 꼬마 교수 선종완 신부가 있었는데, 천재요 성인이라고 불리던 그분이 성서를 각권으로 다 번역해 놓고도 개신교 성서학 박사 민영진 목사, 문익환 목사, 작가 이현주 목사 등과 함께 성경을 히브리어, 그리스어 원문에서 다시 번역하면서 강의 시간마다 우리더러 정말 우리말다운 성서가, 읽어가노라면 막힘없이 술술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세계에 없는 성서가 나오니 기대하라고 역설하곤 했다.
그렇게 하여 공동번역성서가 만들어졌다. 내가 보기에 <공동번역 성서>는 독자들이 읽어가는 대로 술술 막힘없이 알아들을 수 있게 번역한 대단한 문학작품이었다.
그런 <공동번역 성서>를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표기했다는 등 트집을 잡아서 내팽개치고서 알아듣기가 영판 어려운 오역 투성이 개역성경으로 돌아가 버렸고(<공동번역성서>가 영 싫을 양이면, 거의 오역 없이 번역한 <새번역 성경>이라도 사용하든지), 천주교에서도 <공동번역 성서>를 오래 사용하다가 성서를 다시 번역해서 사용함으로써 <공동번역 성서>가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내 판단으로는, 개신교에서도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하고, 천주교에서도 <공동번역 성서>를 전례용으로 사용하고, <새번역 성경>은 학문용으로 사용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민영진 박사와 이현주 목사가 한없이 애석해 할 일이고, 돌아가신 선종완 신부와 문익환 목사가 눈물 흘릴 일이다. 그리고 선종완 신부가 그렇게 열렬히 바라던 대로 한국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공히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했더라면 교회일치운동에 커다란 기여를 했을 것이다.
성서를 번역할 때, 하나님, 하느님 대신 '천지신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천지를 지어내고 모든 존재를 지어내고 만물 안에 아니 계신 데 없이 계시다는 존재의 근원, 존재 자체라는 존재를 가리키는 데 '천지신명'이라는 우리 낱말보다 더 딱 들어맞게 표현하는 낱말이 달리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우주만물을 아끼고 존중하고 신령하게 여겨 찬탄하고, 내심 영계(靈界)를 인정하는 그런 인간 본래 심성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지 싶다.
천지신명이라는 표현 하나면, 천주교신자, 개신교신자, 마호메트교신자, 불교신자, 비신자 모두 한 마음, 한 뜻, 한 몸이 될 수 있지 않나 싶다. 모든 사람이 천지신명이 낳은 똑같이 귀중한 자녀라니까, 모든 사람이 한 마음, 한 뜻, 한 몸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참고: <공동번역 성서>는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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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 합본 <공동번역 성서>는 천주교와 개신교 성서학자들이 힘을 합쳐 1969년 1월 6일에 번역에 들어간 지 8년 만인 1977년 4월 10일 대한성서를 통해 번역출간되었다. 이를 두고 당시 “한국 성경 번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라는 말이 나왔다.
<공동번역 성서>는 한국교회사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계승한 일대 사건이었다. 공의회는 성서가 “각국어로 적합하고 정확하게, 특별히 성경 원문에서 번역 출간되기를” 권하고 잇으며, 나아가 “갈라진 형제들과 공동 협력으로” 이뤄지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교회는 1965년 2월 성서위원회를 설립하고, 1968년 2월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공동 작성한 성경 번역 원칙을 기본으로 대한성서공회와 ‘신ㆍ구약 성서번역 공동위원회’를 구성했다. 그 결과 1971년에 신약성서, 1977년에 구약성서를 번역해 합본 발간할 수 있었다.
<공동번역 성서>는 신약공동번역위원회에 천주교에서 백민관 신부와 허창덕 신부, 김창렬 주교가 번역작업에 참여하고, 개신교에서는 박창환 목사, 정용섭 목사, 김진만 고려대 교수, 이근섭 이화여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구약공동번역위원회에는 천주교에서 선종완 신부, 개신교에서는 문익환와 김정준 목사 등이 참여했다. 번역 후 윤문은 이현주 목사와 문학평론가 김우규, 시인 양성우 등이 참여했다.
당시 선종완 신부는 성서를 공동번역하면서 <제1편 창세기> 머리말에서 “번역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그 참뜻에 충실할 뿐 아니라 우리말 어법이 허락하는 한 글자에까지도 충실하려고 힘쓰는 한편 모든 이들이 성경을 읽고 영적 이익을 얻도록 하기 위해 되도록 쉬운 말로 옮기려고 애썼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동번역 성서>는 천주교회와 성공회, 일부 감리교 및 기독교장로회, 정교회 등에서 사용해 왔는데, 대한성서공회에서 1993년에 <새 번역 성경>을 내고, 천주교에서 독자적으로 새로 번역한 <성경>을 전례용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사장되었다. 현재 <공동번역 성서>는 성공회와 정교회, 일부 개신교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교회일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시도’가 무산되었다고 아쉬워하고 있으며, 천주교의 경우에 <성경>이 직역이라서 ‘성경 읽기’가 어려워졌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반대로 <공동번역 성서>가 의역이 심해 성서 원문을 온전히 드러내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어 왔다. 그러나 <공동번역 성서>가 성서읽기의 대중화를 가져온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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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도서출판 '일과놀이' 대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2년 02월 13일 (월) 12:2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