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다석 일지(2021년 12월 30일, 목요일, 흐림 / 24378일째)
무소유 비문화의 길
나는 도시의 화려함이나 환하게 불이 켜진 고층 빌딩이 눈에 불편하다.
탐욕과 성장 중독증에 빠진 바벨탑을 쌓아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불편하고 거칠지만 땅을 딛고 사는 숲 속이 편안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다.
코로나 돌림병으로 성장과 개발 중심의 자본주의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무소유 비문화의 길이
바벨탑을 쌓고 있는 자본주의의 탐욕과 기계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생각되는데 가혹한 요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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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하중조 장로님의 댓글>
몇몇 <글로벌기업들>의 자본주의 중독증상 때문에,
온세계가 경제성장병 아닌 <성장경제 중독증>을 앓고 있는 지구는 결국 <역병 팬데믹>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약한 <성장 중독증>은 지구환경을 재앙으로 이끌고 있다,
지금! 사방에서 대안들을 제시하지만 시원찮다! 근본적이지 못하니까!
브레이크 풀린 <탐욕> 때문에 결국 <지구행성>은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
어느 한 구석이라도 <제정신인 곳>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어서속히, 이 역병팬데믹 종식 되고 풍요화 과소비의 옛날로 돌아가길 희망>하지만,
절대로 <허구>일 뿐, 그렇게 될 가능성이라곤 내 눈엔 전혀 보이지않는다!
왜냐하면 지금의 <장망성>은 타인(약자)의 고통 위에 세워진 <낙원>이기 때문에, 하늘이 용납치 않는다!
생각해보라! <7만 원짜리 청바지> 가격 중, <생산공장 노동자의 임금>이 겨우 <321원>인 경제체제에선
<사람 살만한 세상 바라는 일은 고목나무에서 꽃 피길 바라는 격> 아닐까?
그런 <청바지 장사꾼들>이 예배당 안의 <장로>요, <집사>, <목사>들인 세상이
어떻게 <하늘의 도움> 바랄 수 있을까?
심뽀를 바로 써야 <구원>이고, 1원 더 보태 <십원의 꿈> 이뤄지는 것 아닐까,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