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5:2-5, 성모 마리아송가, 히브 10:5-10, 루가 1:39-45 / 2009.12.20(대림 4주, 다해)
격려와 지지, 환대의 말의 힘
대림 4주입니다. 대림초 네 개가 모두 켜졌습니다. 이번 주는 오락, 유흥을 삼가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예수 그리스도를 받을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미가서 5장 2절에 어느 누구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한 여인의 아들로 표현합니다. 왜 누구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한 여인의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을까요? 이름 없는 필부인 아버지이든지, 아비를 모르는 아이이거나, 하느님에 의해 잉태된 아이이기에 한 여인의 아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닮은 데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 야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 두시리라. 그런 다음 남은 겨레들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돌아오면, 그가 백성의 목자로 나서리라. 야훼의 힘을 입고 그 하느님 야훼의 드높은 이름으로 목자 노릇을 하리니, 그의 힘이 땅 끝까지 미쳐 모두 그가 이룩한 평화를 누리며 살리라”(미가 5:2-4).
바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구약의 속죄양으로 해석합니다. 바울로는 예수님을 만난일도 없고 따라다닌 일도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배워 알고 있는 지식과 율법이해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설명하였습니다. 그가 이해한 유대교의 전통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건을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제 2독서가 바울로가 이해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율법의 희생제물과 봉헌물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참 제물로 받으시려고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번제물과 속죄의 제물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처음에는 ‘당신은 희생제물과 봉헌물과 번제물과 속죄제물을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셨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율법을 따라 바쳐지는 것인데도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음에는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나중 것을 세우기 위해서 먼저 것을 폐기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단 한 번 몸을 바치셨고 그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히브 10:5-10).
오늘 복음말씀에서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 가서 섣달 가량 머무릅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 나자렛에서 이렇게 먼 곳, 지내기 불편한 곳, 유다 산골에서 마리아는 왜 3개월이나 머물러야 했을까요?
편한 집에서 애기날 준비를 하지 않고, 진척집에 가서 있어야 했을까요?
그것도 가난한 제사장의 집, 벙어리가 된 즈가리야의 집에 가서 있어야 했을까요?
아마도 나자렛이라는 마을에서 16-7세의 소녀가 임신하였다는 것은 지내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본인은 성령에 의해 임신했다고 말하지만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서를 보면 약혼자 요셉마저도 조용히 파혼하려고 마음먹었을 정도입니다. 모두가 손가락질하고 멸시합니다. 동네에 있을 수가 없어 나자렛에서 먼 유다 산골에 사는 제사장 집에 3개월 동안 머물렀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는 이러한 모습으로 오실 수 있습니다.
상식적이지 않기에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습니다. 있는 사실을 거의 모두가 믿어주지 않습니다. 멸시와 조소, 비웃음이 있을 뿐입니다.
왜 그러고 있어? 집에 가서 어머니의 도움으로 아기를 잘 나야지?
주위의 눈길에 힘듭니다. 죽고만 싶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요사이도 이러한 사람이 있냐고요?
갈 곳이 없는 사람, 막다른 골목에 있는 이방인들, 아슬아슬한 절벽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농촌에 시집와서 문화와 언어차이로 갈등을 겪는 외국여성들, 관습과 기후 환경, 멸시와 차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중의 특히 여성이 겪는 고통은 더 심각합니다. 거리의 집나온 청소년들, 가출하여 겪는 미혼모의 삶과 현실은 주위의 시선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사이외는 누구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미혼모에 대한 멸시와 냉대, 모멸감으로 가득 차 있는 주위의 시선은 예리한 송곳과 같습니다. 성문화와 가족개념 등이 많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이 지난 오늘날도 미혼모에 대한 시선은 따갑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나의 아픔을 알아주고 이해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연로하여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가진 엘리사벳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나자렛에서 먼 길 유다 산골을 찾아 제사장 즈가리아의 아내 엘리사벳을 문안 했을 때, 마리아는 놀라운 말을 듣습니다. 천군, 만군의 지원군을 얻은 것보다도 더 큰 힘을 주는 가슴 벅찬 격려와 환대의 말씀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가 1:41-45).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고 고통을 함께 해주는 위로의 말, 격려와 지지, 그리고 환대는 절망에 빠진 사람으로 하여금 희망을 보게 만듭니다. 동정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컴페션’(compassion)의 ‘컴’(com)은 영어로 ‘함께’(with)라는 뜻이고, ‘패션’(passion)은 ‘고통’, ‘고난’ 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컴패션은 고통을 함께하는 것, 아픔을 공감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은 따뜻하게 환대하고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환대를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이와 같이 공감을 하고, 고통을 함께 하는 일은 사람에게 힘을 줍니다. 격려와 지지, 환대의 말은 절망에 빠진 사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격려와 지지 그리고 환대를 통하여 성모 마리아가 담대히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교회에 나오는 몽골인 언나가 출입국 관리사무소 조사관의해 연행돼 강제출국 되었습니다. 그 이후 우리교회에 나오는 몽골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초조해 하고 있습니다. 몽골에서 한국에 와서 비자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한국에 나올 때, 몽골인들은 큰 돈을 밑돈으로 주고 나옵니다. 빚을 지고 우리나라에 오는 거지요.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험한 일, 힘든 일이나 청소하는 일들입니다. 2년 정도 열심히 일해야 빚을 값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강제 출국되면 빚은 빚대로 지고, 다시 한국에 나오는 것이 어렵게 됩니다.
돌아가지 왜 불법으로 여기에 남아 있어 하고 말들을 합니다. 법 이전에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과 딸, 인간으로서 사랑해야 합니다. 위법을 했다 해도 역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해도 인간은 인간입니다. 죄를 미워해야지 인간까지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공기, 바람, 구름, 두루미, 나비, 기러기, 노루, 멧돼지 등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듭니다. 유독 만물의 영장이라는 진보된 생명인 사람만이 금을 긋고, 철조망을 치고 내 나라, 네 나라, 네 땅, 내 땅하고 서로 경계하고 오고가는 것을 막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든 자연을 인간 마음대로 나누고 분배합니다.
우리교회에 찾아온 몽골인 줄리아 툭서자르갈와 팅그르 미카엘 졸보의 혼배성사를 지난 11월 27일 우리교회에서 하였습니다. 교인들의 지지와 격려, 그리고 환대 속에 1월 중순이면 아기를 낳을 예정입니다. 줄리아 툭서자르갈ㄴ은 아기를 기다리면서 이렇게 노래할 것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도우십니다. 모든 백성과 나라의 장벽을 넘어 사는 세상을 주시고, 하느님께서 지으신 세상을 자유롭게 넘어 다닐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루가 1: 48-5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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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청 산 작성시간 10.01.10 공기, 바람, 구름, 두루미, 나비, 기러기, 노루, 멧돼지 등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듭니다. 유독 만물의 영장이라는 진보된 생명인 사람만이 금을 긋고, 철조망을 치고 내 나라, 네 나라, 네 땅, 내 땅하고 서로 경계하고 오고가는 것을 막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든 자연을 인간 마음대로 나누고 분배합니다. - 묵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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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그러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11.19 하늘과 소통하고 하나가 되는 삶을 위해 묵상하는 삶이기를 두 손 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