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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8(월)] 사순 제29일

작성자청봉|작성시간19.04.07|조회수73 목록 댓글 0

나에게 보이지 않는 곳

†오늘의 말씀 요한8:1-11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 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요한8:4-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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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카인과 아벨 얘기가 나옵니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하느님한테 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하느님은 어째서 카인에게 표를 찍어주시어 사람들이 그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느님은 죄인마저도 보호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만, 좀더 중요한 의미는 엉겁결에 카인의 일로 분개하여 사람을 심판할지도 모르는 의인들을, 죄의 유혹으로부터 지키기 위함이셨습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절제라고 하는 항목이 있습니다. 절제는 넘치는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아무리 옳고 좋은 일이라도 선을 넘게 되면 죄가 되기 싶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아왔다 하더라도, 자신이 아무리 정의의 사도처럼 바른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불의와 다툼, 시시비비를 가리는 정도를 넘어서, 본인이 하느님처럼 사람을 심판하려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죄를 낳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정의와 신앙의 이름으로 스스로 하느님이 되어, “카인 같은 놈들을 심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유혹이 있습니다만, 하느님은 우리들이 그 유혹에 빠져, 더 큰 죄를 짓지 않도록 카인에게 표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도 간음 현장에서 잡혀와, 돌에 맞아 죽을뻔한 여자를 구해주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 여인이 무죄이기 때문도 아니고, 불쌍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즉, 예수님이 그 여인을 감싸주신 것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함부로 죄를 짓지 않도록, 그 여인에게 표를 찍어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세상의 악과 불의에 맞서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런 자신을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며, 자신이 하느님이 되어 사람을 심판하려 하면 안됩니다. 세상에는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올바른 사람은 없다. 단 한 사람도 없다.」(로마3:10)이기 때문이지요. 세상에는 그렇게 의로운 것도, 그렇게 불의한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심판하시는 분은 언제나 하느님이십니다.

†묵상: 나의 신체에는 후두부, 정수리, 등처럼 스스로 볼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보이는 곳만을 반복해서 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말씀 묵상을 통하여 우리들은 비로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곳, 또 보고 싶지 않은 곳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보이지 않는 곳을 묵상해 봅시다.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당신은「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마태오7: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죄는 타인을 쉽게 판단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법. 부디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우선 자신의 보이지 않는 곳을 먼저 깨달을 수 있도록 겸손한 마음을 허락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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