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에게!
길을 걷노라면 벌레소리는 구슬처럼 쑥부쟁이 덤불 속에서 또르르 굴러와 발끝에 걸리는 계절, 가을은 상강(霜降)을 지나왔네. 이즈음에 들국화는 일찍 찾아온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건하게 자신을 지키며 즐겁게 모여 피어 있었네. 가을 하늘 빛 꽃잎의 들국화 꽃이 구절판을 닮았다하여 구절초라고도 하고, 잎이 이른 봄부터 나와 여름 내내 부옇게 쑥처럼 더부룩하게 지낸다하여 쑥부쟁이라고도 하더군. 미풍에도 흔들리는 구절초 가는 줄기는 군더더기 없이 오로지 꽃만을 받치고 있었고, 연약하여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제 가닥을 지키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네. 봄부터 자랑스럽게 피었던 다른 꽃들이 찬 서리에 져버린 지금, 들국화는 소박한 색깔과 코끝이 싸한 향으로 오롯이 피어 있더군. 즐겁게, 최선을 다해, 자유롭게 피는 가을 들국화는 글쓰기를 사랑하는 예술가의 멋스런 모습 그대로였지.
요즘 이런 들국화를 닮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한 권의 책을 읽었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멋진 책이지. 좋은 글쓰기는 새롭게 감각하고, 깊이 있게 사유하고, 자유롭게 상상하며, 새로운 각도로 삶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전인적인 과정이라고 하더군. 불완전한 나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고 진솔하게 표현하면서, 참신하고 독특한 비유, 심오한 인식이나 사유로 쓰되, 고루하고 모법적인 과장된 표현은 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네. 화려한 봄의 복사꽃, 윤기 나는 오월의 장미, 여름날 넓은 오동나무 잎의 무성함을 부러워하지 않고, 묵묵히 보잘것없는 쑥부쟁이라도 내 방식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이 들국화의 모습이 아닐까. 그러다가 때가 오면 한 줄기 생각 깊은 향기를 지닌 진솔하고 소박한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겠지. 글쓰기는 치열한 내면 싸움이고 훈련이며, 노력하는 사람, 시인과 같은 감성, 자기 에너지를 치열하게 만끽하는 상태에 놓일 수 있다면, 행복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는군. 우리가 성인(聖人)이 아니라면 자신이 의식하는 그대로, 욕망하는 그대로 순일하게 정직할 순 없지 않을까. 정직하게 글을 쓰려면 명상을 통해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껍질을 벗기고 또 벗겨야 하겠지. 살아있는 글쓰기는 실질적 정직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통념과 다른 이질적 느낌을 감지하여 실질적으로 정직해야 한다더군. 개인의 일상에서 느끼고 살아가는 내용과 맞물려 있어야 바람직하다는 말로 들리는군. 글쓰기, 인생, 정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경계가 없다는 말이겠지. 진정한 글쓰기를 익혀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보다 못하지도 낫지 않다는 해방감을 느끼는 경지에 이른다면, 인간 본성인 열등감과 시기심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루게 해 줄 것 같지 않은가? 글쓰기에 아주 중요한 독서는 혼자 걷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네. 혼자 걸으면 가을에 풀 익는 냄새 같은 낡은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들국화 향에 이끌려 고독과 추억에 파묻히면 진솔하게 자신을 점검하는 기회를 주기도 하겠지. 기쁨보다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말이 있지. 최근에는 자네도 짐작하는 내 가슴속의 상처가 나를 좌지우지하려 할 때도 있다네. 글쓰기를 통해 내 가슴 속에 맺힌 것을 써내면 내면의 고통을 잊을 수 있고,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게 해준 말에 진정 감사하네. 글쓰기는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외롭지만 이 세상을 나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네. 누구도 내 속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고, 어쩌면 나 자신도 나를 다 모르겠지.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는 상처의 원인은 내가 내 인생에 대하여 진실하지 못하여 엉터리였다는 것이었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거나 과시하고 싶었던 어쭙잖은 과욕이 도리어 상처가 된 것이었네.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쓴다고 쓴 글도 냉정하게 보면 진실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네. 세상은 구조적으로 부조리하고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네. 누구나 편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고 싶겠지만 태어난 환경이나 숙명이라는 것도 있는 것 같다네. 이런 부조리한 것들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 자신이 내 인생의 주인이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네. 벌거벗은 자만이 진실을 쓸 수 있다는데, 겁이 나서 인지 나는 여태까지 벗기는커녕 나 자신을 다 열어보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이네.
이제부터라도 부지런히 글을 쓰고 싶네. 성장하면서 동경한 문학세계에 대한 순수한 향수는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글쓰기를 제대로 잘 하면 더없이 인생의 가치 있는 일일 것이고, 행복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네. 사람이 남의 눈에 성공해야 행복한 것은 아니겠지. 자유로운 글쓰기란 자신만의 솔직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인생의 진실을 발견해 내는 것이더군. 자신도 진실하지 않으면서 시비를 걸고 강요하고 외면하고 항변하며 살아왔었지. 나 자신의 내면 아주 깊은 곳까지 내려가 마음의 본질을 적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네. 내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남다른 시각이 있다면, 부조리한 세상을 글로 풀어내어 들국화 한 송이에서 나는 작은 향기라도 풍겨보고 싶다네. 나 자신을 그런 이름으로도 불러보고 싶다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권용진 작성시간 09.12.04 역시 신박사시구먼... 축하하네, 그나저나 도대체 X도 아니고 Y가 누고? ...
-
답댓글 작성자신종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12.04 영자도 모르나? ㅎㅎㅎ . 참 자네 이니셜이 Y가 아닌가?
-
답댓글 작성자초록꽃 작성시간 09.12.04 you,,,,,,,,,초록이를 포함한 모든사람이 아닐까요. ㅎㅎ
-
작성자피재만 작성시간 09.12.17 언제 시상받으시나,축하 차(Tea)라도 선물해드려서 글 쓰실 때 마시면서 글이 술술 나오도록 해야 할텐데..
-
답댓글 작성자신종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12.11 내가 사야지. 패와 상장만 보내주고 나중에 등단이 수속이 끝니면 뭔가 있다고 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