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
코로나19를 4개월 겪으면서 사람들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구상에서 코로나19가 완전히 박멸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만이라도 C19가 사라지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설사 국내에서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감염자에 대한 치료가 모두 끝났다 해도 해외에서 유입될 요인을 차단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상황이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이상주의적인 사고를 접고 현실을 냉철하게 접근해야겠다. 코로나 때문에 겪는 불편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외출할 때마다 마스크를 꼭 챙기고 건물이나 집회장소에 들어갈 때는 손 소독제를 바르며, 틈날 때마다 비누로 손을 씻는 것, 이것이 개인방역의 기본이다. 거기에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한다면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
당분간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말아야겠다. 비즈니스 상 어쩔 수 없는 경우야 예외겠지만, 가급적 수년 동안은 국내여행으로 대신해야 할 것이다. 사실 해외여행 붐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웬만한 곳은 다녀본 경험이 있으며, 세계 구석구석을 다 헤치고 다닐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써야할 시간과 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잖은가?
더구나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선진국들의 민낯을 보아왔고 특별히 배울 것을 찾지 못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어찌 보면 내겐 잘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아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나는 학생 시절 수줍음을 잘 타고 남들과 썩 잘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내향적인 기질이라고 생각했는데, 남들은 머릿속에 영감이 들어있다고 놀렸다.
지금은 실제로 노인인데다, 비대면이 강조되는 시기라 어느 모임에 불참하는 핑계거리로도 안성맞춤이다. 그렇다고 답답하거나 짜증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런 때를 대비하여 혼자 노는 것을 익혀온 게 아닌가 놀라곤 한다.
며칠 전 스마트 폰을 바꿨다. 단골가게에서 통신사 약정기간이 지났다며, 다른 곳으로 옮기고 새 폰으로 갈아주었다. 더 가볍고 크기가 작아졌으나 풀 화면이라 좋았다. 이른 아침 공원을 산책하며 몇 커트씩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스마트 폰에 찍어둔다.
공원에 핀 작은 꽃을 찍어 갤러리에 남기며 자연에 다가간다. 사람과의 접촉이 제한되면 그만큼 자연과 가까워지게 되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공허해지는 대신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날씨가 무더워지면 아내를 차에 태우고 고향 동진강 상류에 가련다. 강물에 발을 담그고 다슬기나 주울까 싶은데, 아내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그 사람은 아직도 코로나 환경에 나만큼 적응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외향적인 성격에 친구들과의 대면 수다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함흥냉면 집에 들러 냉면을 주문했다. 손님이 폭주하여 반시간이나 기다렸다. 옆 좌석의 젊은이 넷이서 냉면 그릇을 비우고도 자리에 그대로 앉아 열띤 토론을 했다. 나와 대각선 쪽으로 1미터쯤 떨어진 자리에 앉은 청년이 비말을 튕기며 떠들었다. 나는 불쾌한 눈치를 보이며, 벗어두었던 마스크를 썼다. 아내도 이내 그리 했다. 그 때서야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옆 좌석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불쾌함을 표하는 게 나았다.
요즘 쓰는 글은 팔 할이 코로나19와 관련이 있다. 그것을 떠나서 생각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코로나에 대한 상념을 적고 있다. 지금까지 30여 편에 이른다. 코로나 시대가 지나면 서애 선생이 《징비록》을 남겨놓았듯이 나도 글을 묶어 <코로나의 교훈>을 내놓을 생각이다.
그 정도면 코로나19 시대에 잘 적응한 사람으로 손색이 없지 않을까 싶다.
(2020.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