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담을까
박광안
매일 마주하는 식탁에서 여러 종류의 그릇을 본다.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만, 자기가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다. 밥, 국, 반찬들이 담겨있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땅에서 나온 채소, 바다에서 여행 온 생선, 닭이 선물로 준 달걀, 소고기미역국으로 나의 생일상이 푸짐하였다. 언제나 변함없는 다정한 친구들로 나의 건강을 위해 헌신 봉사하고 있다.
우리 고장 전주는 맛과 멋이 어울려진 예향의 도시이다. 계절별로 생산된 산골, 농촌 ,어촌의 특산물이 어우러져 비빔밥이 만들어진다. 시민의 날 행사 때는 5천 명이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을 준비하여 맛을 보며 즐기는 시간도 있었다. 콩나물국밥은 전주의 특산물인 콩나물과 여러 재료를 넣어 끓인 육수는 우리의 입맛을 돋운다. 아침 해장국은 속을 편안하게 해주어 주객이 즐겨 찾는다.
한옥마을은 전국적으로 알려져 찾아오는 손님을 반가이 맞아주고 있다. 남부시장에 있는 순대 국밥도 알려져 있다. 전주에 오면 유명한 맛집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서로 보면서 군침을 돌게 한다. 질그릇과 유기그릇에 담긴 그윽한 향기를 느끼며 즐거운 시간 만끽하고 있었다.
지난주 어버이날에 아들이 찾아와 콩나물국밥을 먹고 싶다고 하여서 어디로 갈까, 생각 끝에 이름이 나 있는 집이 생각났다. 가본지가 오래되어서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여 찾아갔다. 욕쟁이 할머니 혼자서 시작한 집인데, 점차 알려져 전주의 맛집으로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다섯이 자리를 잡는데 한참 동안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살펴보니 지난날과 탈바꿈되었다. 곱게 단장하여 단체 손님도 받을 수 있게 마련되었다. 한참 후 자리에 앉아 먹게 되었다. 특이한 국물 맛이 내 입맛에 꼭 맞았다. 이 감칠맛 때문에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과연 ‘명불허전’이로구나!
계절의 여왕 5월은 우리를 부른다. 전주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1층부터 차례로 조상님들의 발자취를 보며 그 시대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임은 갔어도 국가를 위한 장인정신으로 빚어낸 국보로, 고려 상감청자와 조선백자 달항아리는 지금도 빛나는 향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조상님의 도자기 만드는 기술은 세계적으로 자랑거리다.
넓은 지구상에 80억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지만,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릇처럼 색깔과 모습이 모두 다르다. 일란성 쌍둥이도 똑같아 보이지만 생각과 행동은 다르다. 남녀노소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맞게 사는 것이, 마치 여러 그릇과 같아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그릇일까?’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라고 마음속에 질문하였다. 팔순을 바라보며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았다. 자기의 위치에서 주어진 사명의 일을 했다면. 지나간 시간 후회하면 안 되겠지, 항상 오늘이 중요하므로 촌음을 아껴써야겠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므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국그릇에 밥을 푸고 밥그롯에 국을 담는다면 어떻게 될까? 자기를 버리고 남의 것이 좋다면서 따라가는 일은 빨리 제자리도 돌아와야 한다. 굼벵이도 둥그는 재주가 있다고 하듯이 모든 생물체는 이 세상에 나올 때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조화를 이루어 완성한다. 누구나 높고 낮고, 좋고 나쁜 것이 없다. 자신과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 주어진 사명 감당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각자 일생의 가장 좋은 시간이다. 깨끗한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릇에 남아있는 묵은 찌꺼기는 비워내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야 한다. 오래 남아있으면 썩어서 모두 버리게 되므로, 항상 새로운 것을 흘러넘치게 하여야 한다. 화수분처럼 계속 솟아오를 수 있도록.
나는 비록 볼품없는 질그릇이지만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존귀한 보배가 되는 것이다. 오늘부터 깨끗한 마음의 그릇에 지금까지 담아보지 못한 아름다운 것을 가득 담아보자. 모두가 반기는 빛나는 향기를 날리면서.
(2025.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