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종지도
정남숙
"어머니, 어디 계세요? 저 시내 들어왔거든요?" 직장 관계로 광주에 내려온 지 10개월 만에, 다시 서울 본사로 올라가는 길에 큰 아들이 엄마와 함께 하룻밤 자고 가겠단다. 아들의 전화를 받고 기다리는 동안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언제나 내 품 안에 있을 줄만 알았던 내 아들이다. 어느새 성장하여 사회에서 제 할 일을 인정받는 중견 간부이고, 천상배필을 만나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니 이 모두가 내 복인 것만 같다. 이제는 아버지의 빈자리까지 메우고, 이 엄마의 든든한 보호자로 마음을 쓰고 있으니 무얼 더 바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생활 40여 년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장을 일궈가며 귀농하기를 참 잘했다며 좋아하던 몇년 후, 갑자기 남편에게 변고가 생겼다. 날벼락 같은 췌장암 판정를 받은 4개월 후 홀연히 하늘나라로 떠난 것이다. 아들 들은 홀로 있는 엄마가 마음에 쓰이는지 서울로 다시 올라와 살자 한다. 아직도 섬기던 교회와 친구들도 많으며 젊음을 바친 고향과 다를 바 없는 서울살이긴 하다. 그러나 다시 서울에 올라가고 싶지 않다는 엄마의 뜻을 존중해 주며 더는 조르지 않고 있었다.
자식들의 뜻을 따르지 않고 내 고집만 피우며 고향에서 생활하고 있는, 엄마에게 조석으로 안부를 묻고, 두 아들 내외가 번갈아 찾아온다. "내 걱정은 말고" 내 대답은 한결같다. 갑자기 남편을 잃은 좌절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두문 불출하면서도,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하는 대답이다. 시시콜콜 묻는 말에 일절만 하라 한다. 그래도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온 집안 식구들이 돌아가며 하루의 일과를 통보해 주고 있다.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옆에 있는 분위기다. 이렇게 마음 써주는 효심 지극한 자식들이 있어 외로움을 이겨내며 든든한 마음으로 버티며 살고 있다.
"어머님은 행복한 여인의 삶을 사신 거예요," 어느 추석날 아침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이 빙 둘어앉아 가정예배를 드리고, 각자 한 마디씩 주고받는 덕담중 큰 며느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여자들은 무엇보다 남편에게 인정받는 삶이 제일 행복하거든요, 그런데 아버님은 어머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인정해 주셨잖아요, 두 아들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어머님같이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며 자기 남편을 슬쩍 바라본다. 며느리 말이 맞는 말이다. 내 지난 삶을 돌아봤다. 인자하고 자상했던 내 남편을 떠올려 봤다. 가정의 안녕을 위해 힘 있고 강하면서도, 약한 척 져 주는 것이 이기는 것임을 알고 있는 남편이었다. 성품이 온유하고 겸손한 남편의 전폭적인 외조로 인해, 나는 하고 싶은 일은 마음껏 하며 풍요로운 삶을 살아왔다.
"그래 이제는 자식을 따라야지," 지금껏 내가 고집 피우며 주관하던 집안일을, 아들에게 맡기고 있어 문득 삼종지도를 생각해 봤다. 삼종지도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자식을 따른다는 말이다.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남녀의 차별을 강조한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여성들은 글공부 대신 육아와 바느질, 수 놓은 것이 여자들의 일이라 하여 집안일에만 전념했던 시대의 말이다. 차별받던 시절의 여인들이 지켜야 할 예중 하나인 말이다. 지금 세대엔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큰일 날 말이다. 아니 잊힌 옛말이다. 세상 모든 것을 개인 중심으로 판단하는 오늘날 이 사회와는 상관 없는 말이다. 배려, 이해는 간곳 없는 현대가정, 남녀 공존을 넘어 여성 상위의 시대인 요즈음, 예는 지켜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목소리 크고 능력 있는 자가 우위인 현실과는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의지하고 걸어온 나만의 삼종지도를 떠올려 본다.
"왜 잘한 일이 더 많은데, 꼭 잘못한 일만 야단치세요?"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신 우리 아버지는 일찍 기독교를 받아들여 10남매의 자녀들을 전통적 신앙으로 교육시키셨다. 남녀구별 없이 가르치셨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를 갖도록 남다른 사랑으로 키우셨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매를 드시는 일이 없으셨다. 그러나 잘못은 그냥 넘기지 않으셨다. 어느 날 아버지께 여쭤본 말이었다. 아버지의 대답은, "잘한 일은 세 번 후에 칭찬해도 늦지 않지만, 잘못한 것은 바로바로 고쳐야 하기 때문" 이라 말씀하셨다. 장성한 내 두 아들은 지금까지 부모에게 대들거나 말대답 한 번 하지 않았던 반듯하고 착한 아들들이다. 가정, 직장생활도 모범적이다. 이젠 나 자신도 아들에게 맡기고 있다. 내가 하는 자식들 걱정은 기우에 불과함을 알고 있다.
아들을 기다리며 내 할 일은, 자식들이 내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들어오는 아들을 바라보니 더욱 듬직하다. 아니 편안하다. 삼종지도는 남녀의 유별을 강조한 빛바랜 말이 아니었다. 나에겐 삼종지복으로 끝말만 하나 바꾸면 안성맞춤인 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 속에서 모자람 없이 풍성한 사랑으로 길러주신 부모님이 계셨고, 나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알면서도 언제나 '당신이 최고'라며 신뢰하고 인정해 주던 속 깊은 남편이었다. 이제는 잘 자라서 태산 같은 언덕과 그늘을 만들어 준 아들들이 있지 않은가, 이렇듯 사랑과 신뢰, 배려와 섬김 속에서 한평생 살아온 나의 삶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사랑으로 용서하고 불평 없이 믿고 받아준 생전의 부모님과 인자한 남편에게, 넘치는 사랑 속에서 감사를 표하지 못하고 철없이 받기만 한 것 같다. 모든 것 다 알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 번 제대로 전하지 못한 나였다. 이제는 노후를 염려하는 자식들이 있으니, 딸 같은 큰며느리 말대로 나는 삼종지복을 타고난 '행복한 여인'이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