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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악한 영으로부터의 자유

작성자샬롬|작성시간09.05.15|조회수349 목록 댓글 1

죄와 악한 영으로부터의 자유

 

                                                                              고린도후서 3:17-18

 

 

  사형수가 아닌 이상 단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사람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이 사형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말 행복할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새장에 갇혀 있는 새와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 다람쥐 장에 갇혀 쳇바퀴만 돌리고 있는 다람쥐와 산의 나무와 숲과 바위 사이를 마음껏 뛰어다니는 다람쥐, 어느 쪽이 행복할까요? 물론 자유가 있는 쪽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북에서 남으로 넘어오는 사람은 많습니다. 북한 동포들은 북에서 탈출하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그러나 남에서 북으로 넘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운동권의 학생들조차 “너 그렇게 좋으면 북한에 가서 살아라”고 하면 북한에 가고 싶어하는 학생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에는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남한에 사는 사람은 행복할까요?

  물론 상대적으로 우위의 행복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진정으로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람쥐나 새와는 달리 인간은 몸과 혼만 가지고 있지 않고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몸은 자유롭습니다. 그런데 영이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괴로워합니다.

 

  행복하려면 영에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 행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참 자유 즉 영혼의 자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참된 자유는 어떤 것인가?

 

  과거에는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노비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매여 있는 종들이 있습니다.

  히 2:14-15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많은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지만 영적으로는 종노릇합니다. 그래서 불행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오셨습니다.

  요 8:34-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그럼 자유란 무엇일까요? 고린도후서 3장에 근거하여 우리는 영적 자유를 다음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1) 자유란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집어넣은 것처럼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마귀가 집어 넣어준 생각이 또아리를 틀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자유를 빼앗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속박입니다. 반대로 성령의 역사로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면 그것은 자유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우리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로만 들어가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는 아는데 그렇게 살 수가 없어서 고통만 더 심해집니다. 자기가 얼마나 심한 속박 가운데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되며 그 결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부르짖는 비참한 상태가 되게 됩니다.

 

  고후 3:2-3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새겨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는데, 참 자유란 욕심이 이끄는 대로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이것은 방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참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2) 자유란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문 17-18절의 문맥에 잘 나타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절에서 바울은 “주의 영으로 자유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8절에서 “주의 영으로 주의 형상으로 화한다”고 했습니다. 이로 보건대 자유란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 자유의 모델은 하나님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 자유의지를 가졌으나 죄를 범함으로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탄도 범죄하여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죄에 속박됨이 없이 온전히 자유 하십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시험은 받았지만 죄를 짓지는 않았습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은 온전히 자유로우십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주님을 닮는 것입니다.  

 

  자유란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주님을 닮는 만큼만 자유롭습니다. 정확하게 그만큼의 영적 자유를 소유하고 누리게 됩니다. 주님을 닮지 않은 부분은 매여있는 것입니다. 자유가 없는 부분입니다. 주님을 닮지 않은 만큼 우리는 종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진심으로 주님 닮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2. 누가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있는가?

 

  먼저, 귀신은 아닙니다. 귀신은 우리들에게 항상 우리 마음대로 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귀신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그것은 참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속박입니다. 귀신은 사람을 속박하는 일을 합니다. 귀신은 사람을 사로잡아 종을 삼으려고 합니다.

 

  반면에 성령님은 진정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는 일을 합니다. 앞에서 저는 자유를 두 가지로 정의했습니다.

 

  첫째로, 참 자유는 하나님의 법이 우리 마음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3:3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이처럼 참 자유는 하나님의 법이 우리 마음에 기록되는 것인데 이 일은 오직 성령님 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곧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입니다.

 

  둘째로, 참 자유는 우리의 속 사람이 예수님의 형상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3:18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와 같이 참 자유는 주님을 닮는 것인데, 이것도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성령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입니다.

  인간은 성령이 아니면 절대로 자유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본래 자유의지를 가진 자유행위자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타락했습니다. 그후 내적 부패로 인해 바울이 지적한 것처럼 아무리 노력을 해도 원하는 바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지 않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자유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의 종이 되어 버린 인간을 자유케 할 수 있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성경에는 성령님의 이런 능력을 암시하거나 직접 드러낸 말씀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사 10:27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고후 3:17-18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여러분, 혹시 죄와 싸우다가 지치셨습니까? 죄에서 자유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성령을 의지하십시오. 썬다 싱이 간증집 “영계의 묵시”라는 책에 보면 예수를 잘 믿던 사람이 죽으면 생기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해놓았습니다.

  “사람의 영혼이 영의 세계에 오자마자 선과 악은 곧 분리됩니다. 지상의 생활에서는 모든 것이 혼합되어 있으나 영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선한 영 즉 빛의 아들들이 영의 세계에 들어오면 먼저 생명수 강물에 목욕하여 거기서 튼튼하게 되고 원기를 얻고 새로워집니다. 이 물에서 그들의 죄의 소지가 씻기어 신기하게도 깨끗하여지고 신선하게 되고 순수하게 되어, 영광과 빛의 세계로 들어가서 주와 성도들 그리고 천사들과 함께 교제하며,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런데 생수의 강은 무엇을 뜻합니까? 바로 성령입니다. 그렇다면 생수의 강에 목욕하여 우리가 새로워지고 죄의 소지가 씻기어 깨끗하고 순수하게 된다면 성령이 이 세상에서도 같은 류의 일을 우리에게 행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성령님은 이 땅에서도 신자에게 같은 종류의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을 좇아 행하십시오. 그러면 능히 죄를 이길 수 있고, 그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3.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로 사용한다.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주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 날에는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라는 말씀대로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 속에 자유함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7)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요한복음 8:32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여기서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하셨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예수님 자신이 진리시기 때문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 자신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보혜사이신 성령님과 마찬가지로 첫 번째 보혜사이신 예수님도 사람을 자유케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요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그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2) 성령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 진리를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즉 말씀은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우리의 결박을 끊고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말씀은 그저 하나의 개념이나 지식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고 성령께서 말씀을 사용하시면 그것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심령을 찌릅니다. 이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람이 진실로 회개하면 죄 사함만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합니다.

 

그리고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임합니다. 그래서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사도행전 2장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행 2:37-40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자유케 하시는 통상적인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은사와 능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의 종들이 전하는 말씀이 좌우에 날선 검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말씀을 들을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말씀에 찔림을 받았을 때 회개했으나, 스테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말씀에 찔림을 받고 스테반을 돌로 쳤기 때문입니다. 설교자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고 그 입의 말이 성령의 검이 되면 회중은 홍해가 가라지듯 둘로 갈라지게 됩니다. 자기의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변화되는 사람과, 설교자를 돌로 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하여 말씀을 듣고 즉각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이 임하고 죄에 매인 것에서 자유케 되어 참 행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4.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가 안 되는 사람에게는 축사 사역이 큰 도움이 됩니다.

 

  복음을 제대로 전하면 많은 사람들이 도망갑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빛이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오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어두움 가운데 행한 일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복음을 제대로 전하면 괴로워하다가 많은 사람이 떠나갑니다. 이들 가운데는 죄의 유혹으로 마음이 강퍅하게 된 완악한 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본인이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한 소망이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결국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 삶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려고 하지 않고 고치고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회개가 되지를 않습니다. 자백은 되는 데 회개는 안됩니다. 즉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죄를 끊어버릴 수가 없어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절망은 목회자인 저의 절망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이 절망할 때, 저도 목회자로서 그들을 도울 수 없어서 절망감을 느끼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도울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해 보았는데 요즘 그런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길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 속에 있는 귀신을 내쫓아주는 것입니다.

 

  지난 주 월요일 제 책을 서점에서 사본 한 형제가 분당에서 강한용사훈련학교에 참석했습니다. 그 형제에게는 자기의 힘으로 끊을 수 없는 죄 된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망적인 상태로 참석을 했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에 그 형제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가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는 오열하면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서 심한 구역질을 계속하며 악취를 풍기면서 귀신들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화요일 타 교회에 다니는 어떤 집사님이 밤 기도회에 참석을 했는데 말씀을 전한 후 갑자기 축사 사역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몇몇 사람에게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사님 차례가 되었는데 안수하고 기도하자 뜨겁다고 몸을 움직이며 계속 아 뜨거, 앗 뜨거 합니다. 그래서 제가 성령의 불이 더 강하게 임하도록 기도하자 갑자기 예상치 못한 말들을 했습니다.

  “나갈게. 나갈게.”

  “무서워서 나간다.”

  “뜨거워서 나간다... 갈게. 갈게. 갈게”

  그러더니 귀신이 나갔습니다. 축사 사역을 하면 구역질을 하면서 나가는 경우는 있었어도 이렇게 귀신이 자기 정체를 드러내면서 말하고 나가는 것은 저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귀신이 나간 후 그 집사님은 “그런데 목사님 아까 왜 목에서 거품이 올라와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에도 보면 귀신이 나갈 때 거품을 물고 나갔다는 말이 나옵니다.”라고 대답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날 기도회 때 최근 저에게 축사 사역을 받은 9명에게 축사를 받은 후 전에 끊지 못했던 죄가 끊어지거나 혹은 전보다 상태가 좋아진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4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축사 사역을 받는 사람에게서 다 실제적으로 귀신이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정도면 괜찮은 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저는 성도들을 돕기 위해 축사 사역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축사 사역에 대한 기본적인 몇 가지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축사 사역에 대한 수치심을 버리십시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제가 신학생 때 여의도순복음교회 구역장 조장 세미나에 참석을 했는데, 조 목사님이 사도행전 10:38절에 입각해서 질병은 사단의 눌림이라고 정의하면서 마귀가 눈을 누르면 눈에 병이 생기고, 위를 누르면 위에 병이 생기고, 장을 누르면 장에 병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신학생 때부터 귀신들을 눈으로 보곤 했는데, 아픈 사람들을 보면 귀신들이 아픈 부위를 누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떼어내면 병이 치료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에 관한 간증을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만사가 다 귀찮고 괜히 기분이 울적하고 짜증이 나더라는 것입니다. 사모님을 보니 못 생겨 보이고 ‘내가 왜 저런 사람하고 결혼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고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 기도를 해야겠다’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처음에는 기도도 안되고 아무렇지도 안 터니 인내하고 계속 기도하여 1시간 이상이 지나자 갑자기 “꽥!” 하는 소리를 내며 귀신이 떠나가는데 유리창이 흔들거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떠나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시 모든 것이 밝게 보이고 마음에 기쁨이 오고 사모님이 그렇게 예쁘게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조 목사님 같은 분도 귀신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한번은 전주에 내적 치유와 축사에 강하다는 목사님이 계셔서 몇몇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기도를 받으러 갔는데 귀신이 없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축사 사역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축사 사역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치료를 받는 것처럼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축사 사역을 기피하지 말고 자원하여 축사 사역을 받아 모든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자유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어떤 사람에게 축사 사역이 필요한가?

 

  우리는 눈에 뜨일 정도로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만 축사 사역이 필요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찰스 크래프트 박사는 “나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사람들의 약 삼분의 일 정도가 귀신의 괴롭힘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너무 작게 잡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축사사역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주 드물기 때문입니다.

 

  벌써 15년 내지 20년 전의 일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는데 조 목사님이 “모든 비정상적인 욕구는 다 귀신의 역사다” 라고 설교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이 때로 화가 나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러나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하게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귀신의 역사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분노, 통제할 수 없는 정욕, 통제할 수 없는 증오심,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좋지 않은 습관 ... 이런 것들은 모두 귀신의 역사입니다.

 

  피터 와그너 박사님의 사모님 도리스 와그너가 지은 “어떻게 귀신을 밖으로 내쫓을 수 있는가?”라는 책에 보면 “귀신이 들어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단서”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첫 머리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누가 관리하고 있는가? 그 사람이 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나는 기도해 왔고 또 고백했고 외쳤으나 이 고질적인 죄에서 승리를 거둘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는 그 사람이 스스로 어떤 특정한 문제를 관리할 수 없고 도리어 문제가 그 사람을 지배하는 경우이다.

 

  -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서 전적으로 속수무책의 느낌.

  위의 경우와 비슷하지만, 속수무책이라는 느낌과 또한 소망이 없다는 느낌이 자리잡고 있는 경우이다. 여러분에게 잘못을 저질렀던 사람에게 향한 증오감과 같은 경우이며 또 언제나 그와 같은 생각이 마음에 떠오르거나 혹은 그 사람의 사진을 보게될 때마다, 감정이 또다시 한 번씩 끌어 오르게 된다.”

 

  어느 책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축사에 관한 책에서 술 중독, 마약 중독, 성 중독, 도벽, 노름, 게임 등 모든 중독성의 배후에는 귀신이 있다고 말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도 귀신과 관련이 있습니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에게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은 단지 의지력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귀신의 영향일 수 있습니다.

 

  일 예로, 맥스웰 휘트가 쓴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라!”라는 책에 보면 날 때부터 천식을 앓고 있던 애연가가 있었습니다. 맥스웰 휘트는 그를 고치기 위해 기름을 바르고 기도도 해보고, 성령세례를 받게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후로 천식귀신과 흡연귀신을 내쫓는 축사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자 재채기와 구토를 일으키며 귀신들이 쫓겨나갔습니다. 그 후 천식이 치유되고 담배를 피우는 습관에서 자유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중독은 매여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귀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자유케 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축사입니다. 회개하기를 원하는데 회개가 안 되는 것, 이것은 귀신에게 잡혀 있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축사사역을 함으로써 그런 사람들을 자유케 하고 회개가 가능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여기에 축사 사역의 또 다른 가치와 필요성이 있습니다.


  (3) 축사 사역을 할 때에는 회개가 큰 도움이 됩니다.

 

  성령은 구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주님이 직접 그렇게 약속하셨고(하물며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오순절 날 120 문도가 모여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며 성령강림을 기다렸을 때 성령이 임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개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행 2:38-3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그런데 회개는 성령을 받는 데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귀신을 추방하는 데에도 유용합니다. 맥스웰 휘트가 쓴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라”라는 책에 보면 이런 간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영국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캑스턴 홀에서 어떤 미친 소녀가 기도를 요청하러 왔다. 그녀를 데려온 내 친구는 그녀가 그날 아침에 나를 찾아오기 위해 정신병원에서 빠져 나왔다고 설명했다.

  나는 어떤 정신 이상인지 묻지 않고 그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귀신들을 꾸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을 주목했다. 하나님의 영이 그녀의 고통은 일종의 피해 망상에서 초래되었음을 나에게 보여주셨다. 이 소녀는 누군가 자신을 적대하고 있으며 자신에 대해서 험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에게 이러한 사실을 밝혔을 때 그녀는 옳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피해 망상이 하나님께 고백해야 할 죄이며 죄를 고백한 후에 귀신 축출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무척 놀란 표정이었으나 내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녀는 회중들 앞에서 나와 함께 기도했는데, 그 기도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그녀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사 하는 기도였다.

  내가 그녀의 머리에 안수하고 기도했을 때 즉시 귀신이 떠나갔다. 그녀의 얼굴은 깨달음과 기쁨으로 인한 해맑은 웃음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뒤돌아 서서 회중들을 바라보라고 말했다. 그녀가 회중들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자신을 치유하신 것을 기뻐하며 주님을 찬양했을 때 회중들도 크게 기뻐했다.

 

  나는 그때 중요한 원리를 배웠다. 속박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귀신 축출을 위해 기도하기(기도 받기) 이전에 그들 자신의 죄 사함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죄의 고백은 구원에 선행한다. 우리가 우리의 범죄를 슬퍼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한 예수님은 용서하실 수도 귀신을 축출하실 수도 없다.”

 

  같은 책의 다른 곳에서 맥스웰 휘트는 이렇게 썼습니다.

  “참된 성령의 은사는 죄의 고백과 자기 부인을 대신하지 않는다. 만일 고통받고 있는 어떤 사람이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나에게로 온다면, 그는 자신의 특별한 필요를 표현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를 격려하여 되도록 가장 간단한 말로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보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죄의 고백이 영혼에 유익하다고 항상 상기시킨다.

 

  사소한 죄들뿐만 아니라 동성연애 행위와 간통, 우상 숭배와 같은 죄악들도 고백해야 한다. 이 죄악들은 기도로써 사함을 받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것은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만일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지적 받았을 때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귀신 축출하는 일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려고 하지 않게 된다. 고백은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관계된 죄인 경우 꼭 공개적으로 고백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고백해도 무방합니다.

 

  죄의 고백은 축사에 꼭 필요하고 그리고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자기의 축사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십시오. 그 시간을 무료하게 기다리지 말고 기억나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특히 자기가 쫓아내기 원하는 귀신들의 통로가 되었음직한 죄들을 집중적으로 회개하는 시간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축사가 더 쉽게 그리고 깊게 일어날 것입니다.


  (4) 귀신이 나갈 때는 대개 다음과 같은 증상이 일어납니다.

 

  귀신은 주로 인간의 호흡기를 통해서 나갑니다. 프랭크 해먼드는 “안 방 속의 돼지 떼”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귀신은 주로 입 또는 코를 통해서 쫓겨나간다. 영혼은 호흡과 관련이 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에서는 '영혼'과 '호흡'이라는 뜻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 헬라어로 그 단어는 'pneuma'이다. 성령도 호흡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pneuma)을 받으라'(요 20:22)고 하셨다. 많은 영어 찬송가에는 '성령이여, 저에게 숨을 내어 쉬소서'란 구절이 담겨 있다. 이 사실은, 우리들이 성령을 들이쉬어야 하며 악한 영들을 내쉬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귀신들이 나갈 때, 우리는 입과 코를 통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현상은 기침이다. 보통은 마른기침이지만 때로는 점액(가래)을 동반한 기침이었다. 점액의 양은 상당히 많을 수도 있다. 비슷한 물질이 구토, 침, 콧물, 거품 등으로 나올 경우도 있다. 음식을 많이 먹은 직후 사역을 받는 사람은 구역질을 심하게 하고 숨이 막히고 토해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토해낸 물질에는 이상하게 그가 먹은 음식의 흔적을 거의 볼 수 없고, 굉장히 많은 점액질의 분비뿐이다. 위장에서 넘어온 물질은 거의 없다.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피가 넘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점액질의 분비가 한 시간 이상씩 계속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입을 통해 나타나는 다른 현상 중에는 울음, 비명, 한숨, 으르렁거림, 트림, 하품 등이 있다. 마치 심한 콧물감기에 걸린 것처럼 계속 코를 푸는 경우도 있다. 이런 다양한 현상들은 정도의 차이가 매우 커서 아주 경미한 것부터 몹시 심한 경우까지 있다. 이런 현상도 정도가 사역의 성공 정도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하품이나 하고 한숨이나 쉰 사람도 격렬한 현상을 보인 사람과 똑같이 사역을 받는다.”

 

  한편, 찰스 크래프트 박사는 “사악한 영을 대적하라”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귀신들이 떠나가는 것을 사역 받는 사람이 알 수 있다. 사역 받는 사람은 귀신들이 떠나갈 때 마치 큰짐이 벗겨지는 듯, 편안한 느낌을 갖는다. 때로는 그러한 자유가 익숙하지 않아서 이상한 듯 여겨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귀신들이 나갈 때 구멍을 통해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말은 즉 귀신들이 입(트림, 하품, 소리지름 등을 통해), 코, 눈, 귀, 항문, 여성의 질 등을 통해 나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귀신이 항문이나 그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확실시되면, 항문을 통해 나가라고 명령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귀신들은 사역 받는 사람이 하품을 하거나, 트림을 하거나 소리치게 만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떠나갔다고 생각하도록 속이려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때는 귀신으로부터 놓임을 받은 후 바로 몸을 떠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만일 귀신이 사람 몸의 특정 부분에 붙어 있었다면(예를 들어, 머리나 목 같은 곳에), 귀신이 떠날 때 그 사람은 그 부분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런 느낌도 정말 귀신이 떠났기 때문에 오는 시원함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귀신이 속임수를 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귀신들에게 다시 말하라고 명령함으로써 조심스럽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역하는 사람이나 사역 받는 사람 모두의 생각에 귀신이 정말 떠났다고 확신할 때까지는 몇 번이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귀신이 떠나갈 때 어떤 신체적인 현상을 자주 동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귀신이 우리를 기만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은 자각 증상들이 귀신이 전부 혹은 일부가 떠나간 확실한 증거라고 봅니다. 즉 뭔가 해방되고 날아가는 듯한 느낌, 머리가 개운하고 맑고 깨끗하게 느껴짐, 마음속에 평화가 깃들고 기쁨이 솟아남, 절망감이 사라지고 자유로움과 함께 희망과 용기와 의욕이 생기는 것 등입니다. 그러므로 신체적인 특별한 현상들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축사를 받은 후 이런 느낌이 들면 귀신들이 전부, 혹은 일부가 나갔다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5) 귀신이 나간 후 반드시 성령으로 그 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사람은 성전, 즉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을 쫓는데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주제넘게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과 마음에 들어와 있는 귀신을 쫓아내고 그후엔 성령 충만으로 그 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릭 조이너의 신간인 “횃불과 검”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어리석게도 나무를 자르고는 그 자리에 횃불을 심지 않았습니다. 마귀나 그의 견고한 진을 물리칠 때는 항상 그가 다시 돌아오려고 할 것이고, 그가 돌아올 수 있다면 몇 배나 강하여져서 돌아오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맡겨진 무기는 아주 강력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일을 파괴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일로 대치시켜야 합니다. 마귀가 심어놓은 것을 파괴하면 그 자리에 하나님의 것으로 심고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찰스 크래프트 박사는 “사악한 영을 대적하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귀신이 나가고 난 후의 빈 공간을 축복으로 채우라. 내적 치유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보통 귀신들이 자리잡고 있던 부분들이 자유함으로 가득 차도록 축복한다. 예를 들어, 공포의 귀신들이 있다가 나갔다면 평화와 희망으로 축복하고, 분노의 귀신들이 있다가 나갔다면 인내와 용서로 축복하고, 자기 거부의 귀신들이 있다가 나갔다면 자기 용납과 사랑으로 축복한다.”

 

  그러므로 축사 사역을 한 후에는 반드시 주님을 그 안에 초청하여 모셔들이고 그리고 기름부음 사역을 해야 합니다. 즉 성령으로 가득 채워 빈 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초기 교회의 몇몇 교부들, 가령 이레니우스, 폴리갑, 저스틴 마터, 클레멘트의 저술들은 새로운 회심자들이 세례 받기 전 개종 시에 대부분 귀신 축출을 체험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 교회들은 이 사역을 외면해왔습니다. 사실은 지금 이 시대야말로 귀신들릴 가능성이 백 배는 더 높아졌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을 대상으로 축사 사역을 제대로 해오는 교회가 한 교회 있습니다. 그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성도 50만 명이 넘는 MCI교회입니다. 조엘 코미스키는 “지투웰브 이야기”라는 책에서 이 교회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MCI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많은 사람들은 흑암의 권세에 통제를 받는 생활에서 비롯된, 상처와 역기능적 행동과 사악한 생활 습관들로 가득 차 있다. 과거에는 MCI교회도 단지 손을 들고 ‘나는 예수님을 영접합니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그 회심자가 변화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첫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들은 새 신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할 필요성이 있음을 인정했다. 현재 MCI교회는 새 신자가 3일 간 평신도 훈련을 받는 것이 1년 간 예배에 참석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MCI교회에서는 평신도 훈련 때

  1) 구원에 대하여 가르치고,

  2) 참석자들의 해방과 내적 치유를 위해 기도하며,

  3) 성령 충만을 경험하게 하며,

  4) 교회의 비전에 대하여 교육합니다. 

 

  즉 새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3일간의 평신도 훈련 안에 축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MCI교회처럼 이제는 다른 교회들도 단순히 성경공부 위주의 새 신자 교육이나 평신도 훈련에서 벗어나서 축사의 현실적인 필요성에 대해 눈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잡고 있는 악한 영들로부터 새 신자와 교인들을 자유케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절망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리고 죄의 습관과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큰믿음교회/변승우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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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공의와사랑 | 작성시간 10.07.07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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