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
아름다운 이별 1
수년째 건강이 나빠지면서 이제는 지팡이에 의지해서도 걸을 수가 없어 전동휠체어로만 보행이 가능하신 86세 김 할아버지가 그날은 아침부터 가까이 사는 아들 내외를 불렀다. 경주에 가고 싶다는 말씀에 아들 내외는 노부모님 두 분을 모시고 경주엘 갔다. 보문단지를 거쳐 불국사를 구경하신 할아버지는 평소 좋아하던 회가 먹고 싶다고 하신다. 경주를 떠나 감포에 도착하여 가끔씩 들르던 회집에 갔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몇 점 맛만 보시고는 더이상 먹지 않으셨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신 후 당신 방에서 쉬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저녁미사를 가자고 하니 피곤하다며 그냥 쉬시겠다고 한다. 일년 365일 늘 함께 가던 미사를 혼자 가신 할머니는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공연히 마음이 불안하였다. 미사를 마치고 서둘러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계신 방의 문을 열면서, '영감, 나 왔어요' 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대답이 없어서 방에 들어가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흔들면서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러나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영원한 단잠을 자고 계신 것이었다.
아름다운 이별 2
교중미사 중 진동으로 전환된 핸드폰이 길게 울린다. 받지 않았지만 심상치 않은 전화임을 직감할 수 있다. 미사가 끝나갈 무렵 다시 전화가 오는데 받지 않으니 계속 울린다. 전화기를 꺼집어 내어 고개를 숙이고 받으니 장모님이 위독하시다고 한다. 막 마침성가가 시작되고 있었으므로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성당 사무실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고 미사가 없는 보좌신부님은 병자성사 줄 준비물을 챙겨서 기다리고 계셨다. 병원에 도착하니 집중치료실로 병실이 바뀌었고 의식은 없으며 얼굴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바이탈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병자성사를 주고 신부님이 가신 후 보니, 의식은 없지만 혈압, 맥박, 조금 거칠지만 호흡수 등이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2년6개월 전 급성복통으로 검사를 하니 S자결장암이 인접 장간막으로 침범하여 원발암과 전이암이 각각 5cm 직경의 종괴를 형성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수술 후 3기말이라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집에서 지내는데 8개월 만에 수술한 부위에 재발이 되었다. 처음 수술 후에는 항암치료를 거부했지만 다시 수술을 하기도 힘들어 주치의와 의논 끝에 항암치료를 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2번의 항암치료로 종괴가 사라지고 다시 1년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지냈다. 1년 후 또다시 재발이 되었고 같은 치료약으로 항암치료를 하였지만 4번의 치료에도 반응이 없고 CT에서 간에 전이가 발견되면서 모든 치료를 중단하였다. 다행히 통증이 없어서 매일 오전에만 오는 간병사의 도움을 받으며 집에서 혼자 잘 지내셨다. 월요일 아침 출근 준비 중인데 간병사가 어제까지 실내에서 비교적 잘 움직였는데 일어나지 못하신다고 전화가 왔다. 출근길에 모시고 시내 요양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링거를 맞고 기력이 회복되고 식사도 조금 하시더니, 3일째 부터 복통이 생긴다. 아픈 곳이라며 만져보라고 해서 만지니 암이 전이된 간이 많이 커져서 배곱까지 내려오고 표면은 울퉁불퉁하였다. 다행히 진통제 패치로 통증이 조절되었다. 5일째, 통증이 심해져서 모르핀 주사를 맞았지만 의식은 명료하고 말씀을 많이 하신다. 이렇게 토요일 오후에 헤어졌다. 하지만 주일날 아침부터 눈은 뜨고 있는데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마침 꿈자리가 시끄럽다고 일찍 병원에 오신 같은 아파트 508호 아주머니가 간호사들의 설명을 듣고 환자를 살펴본 후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이모가 돌아가시지 전에 뵙겠다고 아침 일찍 서울서 내려오는 사촌여동생을 마중가던 아내는 여동생과 함께 급히 병원으로 왔다. 이렇게 모인 우리는 말없이 지켜보면서 각자 나름의 기도를 소리없이 드렸다. 오후 2시경, 비교적 안정을 보이던 혈압 (70/40)과 맥박 (35) 이 동시에 급격히 나빠지고 거칠던 호흡이 오히려 잦아들었다. 임종이 가까움을 직감하고 아내와 함께 환자의 머리 양 옆에 앉아 소리 내어 성모송을 시작했다. 5분이나 지났을까 나빠지던 혈압 (100/70), 맥박 (70-80)이 갑자기 좋아지고 조금 시간이 지나니 입을 움직이기 시작하신다. 소리 내어 기도하면서 자세히 살피니 무언가 말씀을 하시는 것처럼 입을 오물거리신다. 무엇인가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더 열심히 기도하면서 반응을 보다가 아내가 대화를 시작했다. 편안히 잘 가세요. 섭섭한 감정 있다면 가져가지 말고 다 풀고 용서하세요. 먼저 가신 아버님 만나 하늘나라에서 잘 사세요. 등등. 계속은 아니지만 쉬다가 입을 오물거리기를 반복하는데 우리들 말에 대답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하는 기도를 따라 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 길게 1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입을 다시 닫으시는데 그때부터 모든 바이탈이 급격히 나빠지더니 호흡이 멈추고 혈압이 잡히지 않고 맥박만 약하게 있다가 10여분 후 완전한 심정지가 된다. 오후 3시35분. 신부님을 모시고 온지 3시간이며 소리 내어 기도한지 1시간30분 경과한 시점이다. 얼굴을 살피니 처음 도착했을 때의 조금은 찡그린 얼굴에서 너무나 편안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동안 3분의 부모님을 먼저 보냈지만 이렇게 기도에 반응을 보인 경우는 없었다.
죽음은 태어나면서부터 다가오는 삶의 마지막 지향점이다. 종교는 죽음을 의식한 인간들이 만들었으며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누구나 고귀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 고승들의 행적 가운데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내일 새벽 몇 시에 절 앞마당의 무슨 나무 아래로 와 보아라.’ 하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상좌스님이 그 시간에 가보니 스승님께서 지팡이를 짚고 서서 먼 동녘 하늘을 보고 계신다. ‘스승님, 제가 왔습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인사를 하는데 대답이 없다. 여러번 불러보다가 이상해서 살펴보니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니셨다. 이와같이 서서 돌아가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물구나무 서서 돌아가신 분도 있었다고 한다. 고승들은 자신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죽는 방식까지 스스로 선택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경험한 김할아버지의 죽음에서 고승전이 떠 올랐다. 이 분은 아마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시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면서 이 세상과 이별을 하신 것은 아닐까. 장모님의 죽음에서 나는 의식이 없는 분도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를 다 듣고 계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처음 체험하였다. 옛 어른들이나 신부님들의 말씀이 사람은 심장과 호흡이 멈추어도 수 시간 동안 귀는 열려있어서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들으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우리는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 위해서 돌아가시는 분과 덕담으로 이별을 해야 하며, 남아있는 자식들도 재산문제 등으로 싸우지 말고 좋은 말로 서로 위로하고 용서하면서 이별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흙탕물 속에서는 한치 앞을 볼 수 없고 소음이 가득한 곳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마음 바다에 풍랑이 몰아치면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욕망의 편린들이 올라와서 가득한데 먼 곳이 보일 리 없다. 모든 것을 깊은 심연에 내려놓을 때 물이 맑아져서 멀리 볼 수 있듯이,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고요할 때 비로소 미래가 눈에 들어오고 신께서 우리에게 속삭이는 말씀이 들리지 않겠는가. 고승들이나 신앙심 깊은 김할아버지 같으신 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까.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일생 동안 마음 닦은 것과 남에게 대가없이 베푼 것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