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delion (민들레)/ 29회 김진대
Nostalgia(향수)는 타향에서 고향 또는 지난날을 그리워함을 뜻한다. 이 말의 근원은 1688년 Dr. Johannes Hofer가 스위스의 용병들이 저 지역의 유럽에서 싸우며 고지에 있는 고향집을 너무 그리워하여 발생한 의학적 증상을 Nostalgia라고 하였다. 깊은 슬픔어로 인한 통곡, 졸도, 복통, 소화 불량, 빠른 심장 박동, 자살 의도 등의 증후군이 였다.
Lucerne, Swiss에 있는 용맹한 병사들의 상징인 “Lion Monument, 변사의 사자상 ”에서 Nostalgia근원의 일면을 볼 수 있다. 1792년 프랑스 혁명당시 Luis 16 과 Marie Antoinette 가 거처하는 궁전을 사수하다 전멸한 786명의 용병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작가 Mark Twain은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서 Nostalgia는 육체적인 질환이라 기 보다 불안장애 와 우울증에 인한 정신적 질환으로 간주되어 부정적 인식을 받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Nostalgia는 건실치 못하고, 현실 도피로, 현 삶에 충실치 않고, 장래의 삶에 장애가 된다고 했다. 나도 한동안 그와 비슷한 생각 이 였다. 학창시절에 쓴 일기장과 연애 편지를 결혼 후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매 이사 때 마다 함께 옮겨 은퇴 후 읽어 보기로 했다. 은퇴 후, 지난날의 사진첩을 자식들에게 분배하고, 일기장과 편지는 몇 주 간의 숙고 후 Shredder에 처리해 버렸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학자들은 Nostalgia에 대한 견해가 밝은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Nostalgia가 정신적 어려움의 원인이 아니고, 정신적 어려움이 Nostalgia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의 연구 결론은, Nostalgia는 우리 주변에 흔하고 건강한 경험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내일에 대한 영감과 확신을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주위의 자연과 인위적인 요소들이 향수를 자아 낸다. 한 여름의 폭우나 겨울의 함박 눈, 먼 철교의 기적 소리가 향수의 자연적 요소라면, 지난날의 음악과 사진은 인위적 요소이다.
내가 국민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의 금수강산이고, 아침의 나라이고, 백의 민족이라며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 어린 나이에 도 발가벗은 산과 황폐한 어촌의 모습에 동감이 가지 않았다. 한복의 흰옷은 모양세도 그렇고 더러움을 잘 타고 빨래하기도 힘드는데 비해, 서구인의 화려한 색깔 옷차림이 오히려 보기 좋았다.
이곳 California의 KBS저녁 정규 뉴스 시간 사이에 3-5분 간의 “숨 터”라는 Program이 있다. TV Narrator의 차근한 목소리에 펼 처지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나는 심취 되 버린다. 푸르고 진한 숲으로 싸인 산과 산 봉우리 사이의 계곡을 따라 흐르는 차고 맑은 물결, 푸른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섬들, 다양한 색깔의 지붕으로 장식된 어촌의 모습은 정연 금수강산이다. 어느 날 저녁, ‘숨 터”에 한 민들레가 TV화면에 크게 접근한 모습이 보였다. 꽃은 가고 그 자리에 줄기를 타고 수많은 씨앗이 하늘을 나르기 바로 직전의 모습이다. 어린시절 친구들과 집 주변의 강 건너 앞산 중턱에 넘어진 나무가지로 지은 움막을 모임의 본거지로 삼고, 벼 밭에서 메뚜기를 잡다가 배가 고프면 벼 이삭으로 배를 채웠다. 잡은 메뚜기를 벼 줄기에 줄줄 끼고 긴 강 뚝 을 걸었다. 뚝 변에 우뚝 솟은 민들레를 보면 줄기를 꺾어 손에 들고 친구들과 달리기를 하면, 민들레 꽃 씨앗들이 하늘로 날라 멀리 사라 젓다. 달리기를 마치고 하늘을 처다 보며, 사라지는 꽃씨는 어디로 가는지 상상하기가 일수였다.
‘숨 터’의 민들레가 동심을 되살려 주었다. 강변에서 뛰고 놀던 동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는 생각에 밤 잠을 스쳤다. 은퇴 후 우리 부부는 매 2년 마다 한국을 방문한다. 지난 방문 때, 국민학교 한 친구를 수소면 끝에 만나게 되었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때 집안 사정으로 고향인 김천에서 대구로 이사를 하고, 친구는 김천서 자라고 서울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정착했다. 친구는 내가 반에서 갑자기 없어져 어디로 갔나? 고 가끔 궁금해했다고 하였다. ‘민들레 꽃씨를 타고 사라 졌다’고 답 했으면?
내가 은퇴한 이곳 LA 집 주위는 땅이 금값이라, 손바닥 만한 집 정원과 인도 변의 땅은 화단이 되어 잔디 나 꽃밭으로 가꾸어 젓다. 우리 부부는 오후에 집 주변을 30여 분간 산책한다.
인도변에서 잔디의 틈을 타고 목을 내어 민 민들레 꽃과 씨앗을 대하게 된다. “숨 터” 에서의 우아한 모습에 비해, 민들레는 안스럽고 처량해 보인다. 민망 해하는 모습이, 자신이 불청 객임을 아는 듯하다. 금수강산에 머물었더라면, “숨 터”의 사랑과 회상을 송두리체 받을 텐데.
민들레는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 주로 봄과 가을에 피고, 꽃은 노랑색이고 때로 흰색도 있다. 그 모습에서 ‘앉은 뱅이’이라는 별명에, 강한 생명력을 칭송해 ‘민초’로 비유된다.
꽃이 진후 맺는 열매에 흰털이 있어 씨앗을 멀리 운반한다. 이 부분이 시와 음악과 영상이 되어 우리의 회상이 되어 준다.
민들레는 한방에서 소화제나 해열제로 사용하고, 봄철에 어린 잎은 나물로 이용하고 김치로 만들기도 한다. 요즘에는 민들레의 꽃과 뿌리를 말려서 민들레차로 마시기도 한다.
바람을 타고 날라 다니는 민들레의 하얀 홀씨(꽃씨)가 문학이나 예술의 주제가 된다. 홀씨는 이별의 상징으로 애처럼 과 그리움이 있고 바람이 동행한다. 시인 이상화 의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 에 맨드라미(방언) 가 있다. 민들레는 이해인을 비롯해 많은 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민들레 시 :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그날
당신이 높은 산을
오르던 도중
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민들레 꽃 씨들은 어디로 갔을 까요
하염없이
무너지는 내 마음이
파, 하고 바람에 나려 보낸
그 많은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 까요
(곽재구 시인 1954)
위의 시가 헤어짐의 아픔과 그리움을 잘 표현해 준다.
민들레는 나의 고향, 유년시절 그리고 지난날의 회상이다.
영화 “기생충”을 이어, 최근의 영화 “미나리”가 아카데미 여 조연상을 수상하고 세계 영화계의 각광을 받고 있다.
YouTube에서 영화 ”미나리”를 보았다. 습지의 구석에서 자라는 미나리에서,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역경의 고뇌와 아픔, 그 고통을 딛고 보람과 결실을 이루는 민들레의 모습이 보였다.
정착 후 첫 시골 교회에 참석한 어색하고 주춤한 미나리 가족의 모습은 지난날 우리 가족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New York을 뒤로 하고 의료개업 차 Ohio의 소 도시의 중심가를 가족과 함께 자동차로 서서히 진입하는데, 인도를 지나가는 30대의 젊은이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Welcome Doc.”이라고 반겨 주었다.
내 자동차 차량번호판의 MD 표시 와 지방신문에 난 나의 기사를 본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 의사에 대한 사회의 인심이 좋아 뉴욕주에서는 차량번호판 숫자 옆에 MD라는 표시를 해주고, 급한 환자가 있으면 순경차가 MD 차를 병원까지 Escort 해 주었다. MD번호 판의 차는 길 변의 주차 위반에 사정을 봐 주기도 하였다.
새로 작만 한 집에서 바쁜 이삿짐 정리 와중에 40대의 백인 목사님이 자신을 소개하고 이삿짐 운반을 도와주었다. 다음 주일 그 목사님의 장로교 교회에 참석하였다. 그후 목사님과는 여생의 목회 및 사회적 친구가 되었다.
Ohio에서 30 여년 간의 삶은 지역사회에 봉사한 의료인으로 그리고 가장으로 가장 보람된 시기였다. 세 딸들이 성장하고, 교육을 마치고, 결혼하고, 사회인으로 성장한 기틀이 되어준 고향이다. 가끔 그 고향의 길변에서 “Welcome Doc.” 하며 환영해 준 젊은 이가 생각 난다. 내 인생의 1/3은 모국에서, 1/3은 오하이오에서, 남은 1/3은 은퇴 생활로 꾸려 질것이다.
첫 1/3 삶의 아름다운 회상이, 나에게 영감과 확신을 주어, 중과 후반의 보람된 결실을 맺게 해 주었다.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에 답한다.
나는 어린시절 부모 와 형제 와 친구를 뒤로 하고, 고향의 방천 뚝에서 홀로 “후” 하고 부러 하늘로 나르는 민들레 꽃씨를 타고 바람에 날라 태평양을 건너 미국이라는 큰 나라에 왔네. 높고 긴 하늘을 나르는 사이 나는 자라서 성인이 되어 짝을 맞았고, 첫 땅에 내린 곳은 동부에 위치한 뉴욕이라는 곳이 였네. 후일 다시 꽃씨를 타고 바람에 나라 방방 곳곳을 들리고, 지금은 대륙을 횡단해 상하의 California에 정착해 행복하게 살고 있네.
김진대 (29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