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22 높이13 너비22의 산수진경입니다.
늦은 가을 낙엽이 물들고 이제 다 떨어진 악산의 모습입니다.
멋진 풍경이지만 나는 가끔씩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실제 고개만 들면 앞산과 팔공산이 저멀리 보입니다.
오밀조밀하지는 않지만 듬직한 산수경이 사방에 펼쳐져 있습니다.
빌딩숲에 갇혀 있지는 않으므로 언제든지 산을 볼 수 있는데 구태여 이렇게 작은 돌덩이에 환성을 지를 필요가 없습니다.
계곡과 강물을 따라 탐석할때 우리는 풍경의 주인공입니다.
시간과 장소에 참여합니다.
실시간으로 무대와 객석이, 주인공과 관객이 하나로 펼쳐집니다.
소유당한, 어디에 속해진 이 상황이 나쁘지는 않아보입니다.
서있는 이곳이 최선입니다.
그런데 나는 수석을 왜 찾을까요.
구태여 기이한 산수경석을 찾고 형상석과 인상석과 문양석을 왜 찾을까요.
저렇게 풍경은 펼쳐져 있고
실시간으로 수많은 형상과 사유와 무늬 속에 살면서 말입니다.
사실 저는 이 단순한 물음을 설명하기 위해 에고와 소유욕, 예술적 접근자세 등을 여러번 불러들였지만 다 만족되지 않았습니다.
해석되지도 않으면서 한 카테고리에 있는 척하는 게 싫었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또한 서로 독립적인 관계임을 설명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어느날...
나는 클럽에서 파트너와 함께 즐겁게 춤을 춥니다.
상대방은 나와 너무나 잘 어우러져 동작을 합니다.
나는 이 사람과 자연스럽게 교감을 하거나 진척된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녀와 이렇게 어울리는 것은 들려오는 음악에 서로가 팔과 다리와 얼굴 표정과 몸동작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녀를 이끄는 것도 아니고 그녀에게 내가 동작을 내맡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이 장소 이 시간에 같은 노래의 박자와 곡조를 듣고 거기에 맞추어 각자의 동작을 하는 것 뿐입니다.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는 투명유리 바깥에서 보자면 우리가 어떻게 저렇도록 동작을 딱딱 잘 맞출수 있을까 의심스럽겠지요.
마찬가지로 그녀와 동작이 어긋나는 것은
그녀가 나를 공격하거나 실망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귀에 다른 음악의 박자가 울리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갑자기 폭발하는 불안이나 적대감이 나와 그녀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런 반응에 분노나 상처받은 자존심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렇듯이 내가 주변과 소통하는 것이 나의 의도와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고
그저 우리를 둘러싼 끌개장같은 힘 속에서 확률로 이루어진 사건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설명되는 존재가 아닌 상태로도 공존할 수 있습니다.
산과 강과 돌과 산경이 나와 각자의 동작으로 어울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구태여 관계와 인과를 찾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오히려 세상으로 부터 사랑받고 세상을 전적으로 믿고 사랑한다는 것임을 인정해봅니다.
그래서 내 사랑과 믿음이 세상과 호환되는 어떤 것이라는 것에 감사해봅니다.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사랑의 몰입이 나를 이루어 왔음을 감사해봅니다.
사건이 아니라 감각기억으로 세상을 느껴왔음에도 설명되고 공존할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세상이라는 근육 속에서 trigger point를 하나 찾아낸 행운도 감사합니다.
나를 지독히 편드는 내가 세상이라는 근육을 움직이는 굳건한 관절임에도 감사합니다.
풍경과 산수경이, 표상과 인상석이,
개체와 형상석이, 개념과 문양석이 상호관계로 공존할 수도 있고 어긋날 수도 있으며 서로 무심하게 존재하면서
이 또한 설명되지 않아도 이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아 왔음에 감사합니다.
행복감이 죄스러움으로 바래지지 않음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