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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성 놀이/ 바위경, 산수경석

작성자조팝 조현열|작성시간25.04.22|조회수47 목록 댓글 3

바위경, 혹은 경석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절벽 위 바위로 보입니다.
거친 풍화의 세월을 견딘 이 모습 위로, 어쩌면 고즈넉한 암자가 하나 올라앉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선 도를 닦는 이가 조용히 세상의 무상을 관조하고 있겠지요.
실재하는 장소는 아니나, 중국 어느 산자락에서 스친 적 있을 법한, 그런 기억의 환영입니다.

바위는 단단합니다.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이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눈을 조금만 옆으로 돌려 보면, 이 높고도 단정한 형상이 흙으로 빚은 모래성을 닮아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모래로는 이처럼 견고한 구조를 만들 수 없을지라도, 그 위에 성을 쌓는 인간의 손길은 언제나 가능성 너머를 꿈꾸고 있습니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덧없고 허물어질 모래성 같지만, 그 안에 기대와 믿음, 어쩌면 소망이란 이름의 돌기둥이 숨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이 세상을 경험하러 왔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는 삶에 거창한 의미 따위는 없으며, 그저 우연히 던져진 존재일 뿐이라고도 하지요.
두 목소리는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진실은 늘 둘 이상의 언어로 존재하니까요.

그러니 삶을 향한 물음은, 끝내 이 한 가지에 닿습니다.
우리는 여기와서 무엇을 남기는가?

지혜도, 깨달음도, 결국은 죽음과 함께 사라질 터입니다.
다만, 한순간 스쳐간 그 무게 없는 체험 속에서도 우리는 눈물 흘렸고, 웃었고, 사랑했고, 두려워했습니다.
그것이 모래성 위의 환영이라 하더라도, 그때의 마음은 진짜였습니다.
그토록 허망한 꿈속에서조차 우리는 진심으로 몰입합니다.
그러니 기억이 사라진다 해도, 그 순간 우리는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설령 그것이 영원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진실한 경험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지 않을까요.


삶을 하나의 학교로 보고 성장과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모든 배움이 다음 생으로 이어질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삶은 학습의 과정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체험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지도 모릅니다.
마치 꿈을 꾸듯 한때는 간절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희미해지고 끝내 손에서 빠져나갑니다.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면 굳이 애쓰며 무언가를 이루려는 노력도 허망하게 느껴질 법하지요.

그런데 가만 보면 사람들은 이 환상을 대하는 방식이 제각각입니다.
누군가는 모래 위에 성을 쌓듯 한시적인 것이라도 열심히 만들고, 누군가는 어차피 무너질 성이라며 처음부터 손을 놓습니다.
어떤 이는 허상을 꿰뚫어 봤다며 모든 것에 초연한 듯 행동하지만, 그러면서도 일상의 자잘한 고민에 빠져 허둥대기도 하지요.

놀이동산을 생각해 봅니다.
롤러코스터가 곧 끝난다고 해서 출발할 때부터 팔짱 끼고 시큰둥하게 앉아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출발한 이상, 비명 지르고 웃고, 눈 감고 두근거리는 그 경험 자체가 전부니까요.
그저 몸을 맡기고 즐기는 것이 최선입니다.
어차피 마지막에는 내릴 것이고 무서운 놀이기구를 피한다고 해서 놀이동산에 오지 않은 것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환상이라 해서 경험을 멀리할 필요는 없죠.
아니 오히려 환상이기에 더욱 몰입할 가치가 있습니다.
꿈속에서도 울고 웃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라면 현실이 하나의 긴 꿈이라 해도 다를 게 있겠습니까.
기억이 사라질 거라 해도 그 순간만큼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이 삶에 충실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와 권력, 성취 같은 것들은 언젠가 사라집니다.
그것을 얻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도 잠시뿐 결국 만족은 오래 머물지 않지요.
하지만 경험은 다릅니다.
겪은 일들은 사라질지라도 그 순간에 흘렸던 눈물과 웃음은 진짜입니다.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유한하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어차피 무너질 모래성이라면, 기꺼이 성을 쌓는 것이 우리 몫입니다.
어차피 사라질 기억이라면, 그 안에 더 깊이 몰입하는 것이 우리의 태도일 것 같습니다.

결국 삶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무상함을 이유로 모든 것을 부정할 수도 있고 허망함을 알면서도 기꺼이 몰입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주어진 체험이라면 한 번뿐인 장면에서 자신의 연기를 제대로 펼쳐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을 향한 가장 용기 있는 대답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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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촌사람(이동민) | 작성시간 25.04.23 결국, 예술작품이란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많이 주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수석도 그렇다느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따라가면서 ---. 니더 이런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 작성자마린보이 정명희 | 작성시간 25.04.23 동일한 수석 -산수경석 맞을까요? 배경에 따라 다른 지 , 조팝님 글을 읽고나서 봐서 그런지 느낌이 확연하게 달라보여요. 보면 볼수록 반질반질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빛이 납니다. 덕분에 좋은 글과 수석 감상하고가슴으로 느낍니다~카페가 북적거려 너무 좋심더~.
  • 작성자李 相 | 작성시간 25.05.22 선생님의 수석과의 이야기를 늘 의미심장하게 읽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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