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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음이 새겨놓은 삶의 맥박/ 변화석

작성자조팝 조현열|작성시간26.06.06|조회수29 목록 댓글 1

수석 한 점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가로 21센티미터, 높이 10센티미터 남짓한 아담한 크기이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산맥의 시간이 접혀 들어 있습니다. 이 돌을 눕혀 보면 낮은 산자락을 따라 흘러가는 하얀 물줄기처럼 보이고, 다시 세워 보면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떨어지는 폭포가 됩니다.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풍경을 내어주는 이 돌을 보고 있자니, 사물의 본질이란 얼마나 쉽게 달라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검은 몸체가 아니라 그 위를 가로지르는 하얀 무늬입니다. 지질학적으로는 암석의 틈을 따라 스며든 광물이 굳어진 ‘맥’에 불과하겠지만, 사람의 시선이 닿는 순간 그 선은 더 이상 무기질의 흔적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억겁의 세월 동안 돌이 참고 견뎌온 어떤 비명처럼 보이기도 하고, 끝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노래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돌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선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산이 되고 강이 되며, 웅크린 짐승의 등이 됩니다. 돌은 여전히 돌이지만, 그 무늬 하나로 ‘그냥 돌’에서 벗어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살아가며 우리는 수없이 많은 감정의 파도를 겪습니다. 불같이 화를 내고, 바닥 없는 우물처럼 가라앉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대부분은 참으로 사소하고 부질없는 일들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가슴을 쳤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질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들을 통과해왔다는 사실만은 몸 어딘가에 남아 삶의 결을 만듭니다.

감정이란 본래 덧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없애야 할 잡음처럼 취급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부질없는 감정을 기꺼이 겪어내는 일이야말로 삶에 충실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화내고 슬퍼하는 순간들은 지나고 나면 허망하지만, 그 치열한 분출이 없었다면 인간은 그저 매끄럽게 마모된 무채색의 조약돌처럼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감정은 나를 설명하는 가장 원초적인 언어이고, 그것이 사라진 삶은 지나치게 정제되어 오히려 생기를 잃습니다.


요즘 들어 모든 것이 재미없다고 느끼며 일부러 놀이를 만들고 시간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자각이 오히려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기도 합니다. 병이 들었음을 아는 것이 병이라는 말처럼, 이런 상태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다시 곱씹어 보면, 정말로 병든 상태라면 이렇게까지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재미없음을 느끼고,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음을 자각한다는 것은 여전히 삶에 대한 기준점이 내 안에 살아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어쩌면 이 상태는 썩어가는 징후라기보다 더 깊은 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겪는 성장통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병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삶에 새겨진 하나의 무늬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저 수석의 하얀 줄기처럼 말입니다. 돌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몸을 가르고 들어온 상처의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상처가 굳어 하나의 결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부릅니다.


아무런 이득도 없는 놀이에 일부러 몰두하는 시간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봅니다. 생산성과 효율이 모든 가치를 재단하는 세상에서,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시간을 쓰는 행위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고유한 특권입니다. 그것은 시간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내 삶으로 되돌려오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돌을 세워 보고 눕혀 보며 하얀 무늬의 흐름을 따라가는 동안, 나는 이미 그 돌과 함께 삶의 허무를 견디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돌을 바라보며 나는 ‘견고한 허무 위에 핀 꽃’을 떠올립니다. 검고 묵직한 몸체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와 닮아 있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하얀 무늬는 그 허무를 뚫고 나오는 사소한 기쁨과 슬픔, 분노와 놀이의 흔적처럼 보입니다. 김빠진 맥주같아서, 헛되고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끝내 감정을 내어놓고, 일부러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가장 솔직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병이 낫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병조차 삶의 무늬로 굳어간다면, 그 삶은 결코 텅 빈 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흘려보낸 그 부질없는 시간들이야말로, 실은 내 삶을 가장 생생하게 지탱하고 있던 맥박이었음을, 이 돌 앞에서 조용히 다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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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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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李 相 | 작성시간 26.06.06 선생님의 변화석에서 시지프스를 보는 듯 합니다

    치유의 글쓰기 깉아서 몇자 외람된 저의 이야기를적어 봅니다
    저는 여태 고혈압약등등 생활약? 먹지 않았지만
    며칠전 검사 통지를 아직 받지않았는데
    나이가 나이인만큼
    걱정이 됩니다 ㅎ

    잘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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