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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형(墨刑)을 견딘 뼈, 내 책상 위의 만폭동/ 바위경

작성자조팝 조현열|작성시간26.06.11|조회수20 목록 댓글 0


기억은 가끔 사물의 형상을 빌려 돌아옵니다. 내 앞에 놓인 가로 21센티미터의 이 돌은 단순한 수석이라기보다, 겸재(謙齋)가 휘두른 붓 끝에서 튕겨 나간 마른 먹 한 점이 지상의 시간을 견디며 굳어버린 결정체에 가깝습니다. 나는 오늘 이 돌의 안부 대신, 이 돌이 품고 있는 수직의 서늘한 문장들을 읽어내려 합니다.

정선(鄭敾)을 닮았다는 말은 이 돌에게 다소 가혹한 정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돌이 정선을 닮은 것이 아니라, 정선이 평생을 걸어 도달하고자 했던 바위의 ‘안쪽’을 이미 제 몸속에 완성해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의 표면을 타고 흐르는 거친 질감은 겸재의 파벽준(披劈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도끼로 찍어낸 듯한 날 선 면들은 세속의 풍파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의 살을 깎아낸 선비의 자존심처럼 단단합니다.

돌의 정면을 응시합니다. 이곳에는 비백(飛白)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이 돌은 젖은 채로 말라 있습니다. 먹의 농담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다 멈춘 자리마다 짙은 음영의 골짜기가 생겼습니다. 붓질은 빠르고 단호하여 머뭇거림이 없습니다. 돌의 옆구리에 박힌 깊은 균열은 겸재가 한밤중 벼루를 갈다 떨어뜨린 마른 눈물 자국처럼 보입니다. 찰필(擦筆)로 비벼낸 거친 살갗 아래에서는 아직 식지 않은 산맥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는 붓에 먹을 아껴 쓴 흔적이 아니라, 시간이 바람을 아껴 쓰며 훑고 지나간 자국들입니다. 고작 9센티미터의 두께 안에서 나는 만폭동의 물소리를 듣습니다. 겸재가 인왕산 치마바위를 그릴 때 남긴 그 수직의 획들이 이 돌의 옆구리에 흉터처럼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상처라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끝내 곧추세운 시간의 자세에 가깝습니다.


바위의 윗부분은 오랜 시간 비바람에 씻겨 내려간 듯 매끄러우면서도 완강합니다. 마치 누군가 매일 밤 손바닥으로 문질러낸 적막의 흔적 같습니다. 나는 여기서도 찰필의 미학을 봅니다. 붓을 눕혀 비비듯 칠한 음영들이 돌의 근육을 이루고 있습니다. 색채 또한 그렇습니다. 청회색의 차가운 기운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짙은 갈색의 온기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이 조화는, 수묵화에서 가장 다루기 어렵다는 ‘젖어 있으면서도 마른’ 상태, 곧 습윤과 고갈의 동시성을 보여줍니다.

정선의 진경산수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풍경을 닮게 그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풍경 속에 깃든 골기(骨氣)를 발라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돌 또한 그렇습니다. 이 바위는 산의 모양을 흉내 내지 않습니다. 대신 산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고독의 총량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돌의 뒷면은 누군가 읽다 덮어버린 경전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보입니다. 형상은 단순해지고 힘은 더욱 응축됩니다. 아랫부분에 선명하게 그어진 짙은 띠는 이 바위가 겪었을 지질학적 고통의 기록입니다. 깎아지른 절벽처럼 층을 이룬 단면들은 시간이 수평으로 흐르지 않고 수직으로 쌓였다는 증거입니다. 9센티미터의 두께 안에 억겁의 산맥을 우겨넣은 이 양감은 작지만 거대한 우주입니다. 그것은 겸재가 한밤중 벼루를 갈며 얻어냈을 가장 깊은 농묵의 빛깔에 가깝습니다. 정선은 붓으로 산을 옮겼지만, 이 돌은 스스로 산이 되어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좌대 위에 놓인 이 돌은 이제 단순한 관상용 수석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책상 위에서 매일 새롭게 피어나는 수묵화이며, 내가 끝내 도달하지 못한 문장의 끝단입니다. 정선이 붓으로 쳤던 강렬한 획들이 이 돌의 표면에서는 질감으로 숨 쉬고 있습니다. 나는 이 돌을 보며 붓을 듭니다. 아니, 붓 대신 돌의 살결을 손가락으로 짚어봅니다. 손끝에 닿는 거친 준법(皴法)들은 조용히 말합니다.

진정으로 단단해지려면, 먼저 속이 까맣게 타버려야 한다고.


다시 돌의 정면을 바라봅니다. 빛의 각도에 따라 돌은 때로 거대한 절벽이 되었다가, 때로는 이름 없는 산길의 고요한 상석이 됩니다. 정선의 진경이 그러했듯, 이 돌 또한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산을 끌어냅니다. 이 글로 다 담지 못한 돌의 무게는, 결국 내 행간 어딘가에서 끝내 지워지지 않는 눌림 자국으로 남을 것입니다.

저녁 노을이 방 안으로 스며들면 돌의 음영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아침 햇살 아래서는 인왕제색도의 긴박한 생동을, 해 질 녘 전등 불빛 아래서는 금강전도의 아득한 정적을 보여주겠지요. 그때 나는 다시 정선의 붓질을 떠올리며, 이 돌이 내뿜는 서늘한 묵향에 취해 잠시 산천을 유람하듯 눈을 감으려 합니다.
이 돌은 내게 온 가장 작은, 그러나 가장 무거운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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