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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透) / 변화석

작성자조팝 조현열|작성시간26.06.20|조회수25 목록 댓글 0

세상에는 제 몸을 깎아 길을 만드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여기, 수만 년의 세월 동안 강물과 바람을 벗 삼아 제 가슴에 굵직한 구멍을 낸 붉은 돌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수석을 하는 이들은 이를 ‘투(透)’라 부르지만, 또다른 눈으로 보면 그것은 돌이 세상을 향해 내어준 귀요, 눈이며, 고단한 생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마련한 숨구멍처럼 보입니다. 돌에도 눈물자국 같은 창이 있는 셈입니다.

처음부터 돌에게 구멍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비워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고독의 흔적이었을 것입니다. 돌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릅니다. 나도 저 흐르는 강물처럼 소리를 듣고 싶다고, 나도 저 가지 끝에 앉은 새의 노래를 온몸으로 통과시키고 싶다고 말입니다.


돌은 제 몸을 단단히 닫아거는 대신, 스스로를 허물어 창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받아들여야 할 바람의 힘과 막아내야 할 물살의 무게를 가늠하며, 돌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제 속을 파냈습니다. 구멍의 언저리가 유난히 옹골지게 맺혀 있는 것은, 아마도 그 구멍을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조이고 버텨온 시간의 결과일 것입니다. 마치 삶의 괄약근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거기에 남아 있습니다.

그 구멍을 통해 세상의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돌은 온몸으로 떨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이라기보다, 비로소 세상과 이어졌다는 전율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창이 된 돌은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닙니다. 바람이 불면 피리처럼 소리를 내고, 비가 오면 제 가슴에 빗물을 받아 잠시 고요한 호수를 만듭니다.


이 돌이 유독 붉은 빛을 띠는 이유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수만 년 동안 이 구멍이라는 창을 통해 들려온 세상의 소식들이 켜켜이 스며든 결과일 것입니다. 꽃이 피었다는 소식, 누군가 사랑을 시작했다는 소식, 먼 곳에서 새순이 돋았다는 소식이 바람을 타고 지나갈 때마다 돌의 가슴은 은근히 달아올랐을 것입니다. 그 설렘의 흔적이 씻기지 않고 돌의 살결에 배어들어, 오늘 우리 앞에서 저토록 따뜻한 노을빛으로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이 구멍이 어린 생명들의 안식처가 되었을 가능성도 떠올려봅니다. 호기심 많은 치어들이 제 집처럼 드나들고, 거친 물살을 피해 작은 생명들이 잠시 숨을 고르던 자리였을지도 모릅니다. 돌은 제 몸을 비워 타인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법을, 그 텅 빈 구멍으로 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돌은 왜 제 속을 깎아내며 자꾸만 구멍을 키워갔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가벼워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무거우면 바닥에 가라앉아 정체될 수밖에 없지만, 속을 비워내면 물살을 타고 더 먼 곳으로,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돌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 돌과 크게 다르지 않을겁니다. 마음의 벽을 높이 쌓고 문을 걸어 잠그면 안전할 것 같지만, 실은 그 안에서 고여 썩어가기 쉽습니다. 돌처럼 가슴에 큼지막한 구멍 몇 개쯤은 내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미움도 지나가고, 슬픔도 통과하고, 사랑이라는 맑은 바람이 내 안을 한 바퀴 돌고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붉은 투석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구멍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돌의 영혼이 내뿜는 빛처럼 보입니다. 돌은 말없이 이렇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내 몸에 구멍을 내어 너의 소리를 듣는 일이라고, 나를 비워 너를 품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제 몸을 깎아 세상과 만난 이 돌처럼, 우리도 마음의 창을 조금 더 열고 서로의 숨결을 통과시키는 하루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붉게 물든 돌의 가슴이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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