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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민의 촌정필담

235. 인도(135) - 무굴 제국

작성자촌사람(이동민)|작성시간26.06.15|조회수10 목록 댓글 0

    무굴제국

 중앙 아시아와 아프카니스탄까지 차지하여 왕국을 세운 이슬람이 드디어 인도에 들어와서 무굴제국을 세웠다.

 무굴제국의 초대 왕 아부르가 수도를 델리 부근과 아그라 성으로 정하였다. 아그라는 무굴제국의 문화 유적 자체이고, 델리 부근에 무굴제국의 유적이 많다. 즉 이슬람 문화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무굴제국이 인도 대륙에 이슬람 문화를 전파한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인도에 외래 문화가 들어오면 거의 모두가 인도 문화에 동화되어서 없어졌다. 그러나 이슬람은 그렇지 않았다. 무굴제국이 가지고 온 페르시아 풍의 문학은 인도 문학에 영향을 주어서 인도의 후기 문학에는 페르시아 풍이 많이 나타난다.

그들이 정착한 델리 부근에는 많은 이슬람 유적이 남아 있다. 모스코보다는 무덤이 많다.

 

 그들이 수도로 삼고, 왕이 거처하였던 아그라 성은 무굴제국의 역사와 문화 유산의 보고이다. 성채며, 왕궁이며 --- 앞으로 우리가 찾아가 보려고 하는 아그라 성과 타지마할은 바로 이들이 남긴 문화 유산이다.

 무굴제국을 번창하게 하고, 문화 유산을 남긴 것은 무굴제국의 초기 왕들이었다. 이들 왕의 이름이 많이 언급됨으로 잠시 왕위 표를 보자.

1대 바부르(1526-30(재위기간)) - 나라를 거의 세운 왕이다.

 2대 후마윤(1530-44(15년간 해외로 쫓겨다녔다.) 1554-55(다시 왕위에)

   후마윤 무덤이 유명하다.

3대 악바르 대제(1556-1605) -대제로 불릴 만큼 --- 업적이 많다.

4대 새한 기르(1605 – 1627)

5대 샤자 한(1628 – 1658) - 부인이 죽자 유명한 무덤 타지마할을 축조하였다

6대 아무랑게브(1658 – 1707) 아버지 사쟈 한이 정치를 잘 하다가 왕비가 죽자 타지마하를

   짓고, 왕정을 소홀히 했다, 아버지를 페하고 왕위에 오른다.

   이때가 무굴 왕국의 최전성기라고 하며, 이후로 나라가 쇠퇴한다

 

 우리가 무굴의 예술로 다루는 것은 거의가 위의 왕들 시대의 작품으로 보면 된다.

 (*참고로 사크리는 성채라는 말이고

 마할은 페르시아와 아랍계통의 말로서 원래는 궁전, 어마어마한 자택이리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큰 건물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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