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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별―보이지 않는 길

작성자구름치기 김병준|작성시간25.04.25|조회수26 목록 댓글 1

보이지 않는 길

 

 

방사선 학회에서의 일이다. 강의가 끝나고 좌장을 맡으신 선생님이 여담을 하신다. "태양은 앞으로 50억 년이 지나면 식을 것이다. 태양은 식기 전에 거대하게 팽창하면서 혹성들을 집어삼킬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물론 이 태양계 안의 어떤 생명체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인간도 원래는 별에서 왔으니 별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조용히 묵상하는 기분이 된다. 종말. 그러나 그 종말이란 단어는 두렵기보다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진다. 은하계의 별들은 끊임없이 태어나고 죽어간다. 초신성과 블랙홀은 현재까지의 천문학이 밝혀낸 무수한 순환구조 속의 일과성의 결과물일 뿐이다. 거대하고 무한한 우주의 순환 구조 속의 티끌보다 더욱 작디작은 인간이란 존재의 소중함은 어느 만큼인가? 그런 인간의 초라함이 가엾다.

 

그러나 재미있는 시각도 있다. 인간과 자연과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은 상호 연결되어 있어서 자타가 없고 안팎이 없다는 시각이다. ‘홀로그램 우주론’을 주장하는 일단의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모두는 허상이다.”라고 말한다. 실상은 그보다 너무도 커서 우리는 그것을 다만 볼 수 없을 뿐이다 라고. 불교의 반야심경과 닮았다. 아니 반야심경을 물리학적으로 재해석했을 뿐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示空 空卽示色. 물상이 있는 것은 곧 공한 것이고 공한 것은 곧 물상物像과 다르지 않다. 우주는 이미 모든 것을 내포한 무한하고 무한한 ‘의지’일 뿐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현상계에 펼쳐지고 어떤 것은 현상계에서 접혀 들어갈 뿐이다. 과거는 곧 미래이고 미래는 곧 과거이다. 죽음은 한 존재양식이 또 다른 존재양식으로 변환되어 가는 과정일 뿐이다. 사물도 의식이 있고 이 우주는 거대한 의식체이다.

도가와 불교와 유대의 카발라 신비주의와 인도의 베다까지, 아니 어쩌면 고대의 모든 종교적 우주관들은 그와 상통하고 있는 듯하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별기에도 그런 말은 수없이 반복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존재론조차 그러한 우주관과 맞닿아 있다. 데카르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생각하는 내'가 그 만큼 중요한 존재임을 선포하고자 함이 아니라, 존재와 생각이 얽힌 그 오묘한 중첩 또는 그 일치를 알리고자 했을 뿐이다. 석가무니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우리들은 이 세상이 내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오독하기도 한다.

생각은 모든 것의 출발이고 끝이다. 아니 이 우주의 출발이고 끝이다. 우리의 한 생각은 우주의 허리케인을 몰고 올지 모른다. 혼돈과학 이론도 그렇게 출발한다. 북경의 나비 날개 짓이 샌프란시스코에 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고 말이다.

 

방사선학회는 마침 자기공명장치에 관한 주제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양자의 스핀이 발하는 전자기장을 잡아 우리는 신체의 구조를 가시적인 영상으로 바꾸고 있다. 나아가 그 전자기장을 이용한 신체의 생화학적 분석과 기능 분석도 가능하다. 인간의 상상 곧 생각은 현실이 되고 있고 그것은 곧 상상이 현실임을 반증한다. 상상은 현실이다! 흥분되고 두려운 엄청난 말이다. 상상이 현실계에서 현실적 현상으로 나타나기까지에는 몇 가지의 다양하다면 다양한 변수들만 갖추어지면 된다. 그 변수들조차 우리들의 상상 곧 생각 속에 있다. “네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을 바다에 빠지라 하면 빠질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이렇게 추적해보면 결코 허황한 말이 아니다. 우리가 만상의 으뜸이라 의심 없이 믿고 있는 자기공명장치를 포함한 모든 과학적인 방법론이란 것도 사실은 그 가장 작은 한 귀퉁이의 방법론일 뿐인지도 모른다.

 

자, 그럼 우리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겨자씨를 들여다보면서 산을 움직이고자 하겠는가? 많은 고대경전들과 오늘날의 순수과학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들은 존재들의 근저에는 그들을 사랑하는 밝고 온화하고 거대한 의지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은 선의 적대적 상반요소가 아니라 다만 선의 부족분으로 인한 상대요소라는 말은 또 또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럼에도 세상은 오늘도 부와 명예와 권력을 목숨 걸고 추구하면서 불만과 갈등 속에 앉아 있다.

 

반 고호가 그린 "별이 있는 밤"이란 그림은 별 하나 하나가 밝고 거대한 찬란한 눈이 되어 우리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 별들이란 우리와 무슨 관계일까? 별들은 좌장을 맡으신 그 선생님이 말씀하시듯이 '자식인 우리'들을 내려다보면서 "아이야 내 작은 아이야"라고 안타깝게 무언가를 일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고호의 별들이 지닌 그 찬란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은 우리가 이미 오래 전부터 간직해왔지만 영혼의 골방에 팽개쳐버렸던 가장 고귀한 길을 제시해주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써보고 싶었다. “별들이란 찬란히 내다보이는 보이지 않는 길이다”라고. 그것은 정신과 의사 스캇펙이 말하는 “아직도 가야할 길” 중의 가장 소중한 길일지 모른다. 박 모라는 시를 쓰다가 만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별과 이야기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산 것이 아니다”라고. 그 말의 울림이 아름답게 가슴에 와 담긴다.

 

우리가 우여곡절 속에 살아가는 이 하루하루의 뒷면에는 모르고 지나치는 지극히 보배로운 것들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이 우여곡절의 세상을 떠나기가 그렇게 싫은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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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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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팝 조현열 | 작성시간 25.04.26 별과 태양, 물리학과 불교, 그리고 상상과 현실이 하나의 우주 안에서 서로를 비추는 모습이 경이롭고도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별들이란 찬란히 내다보이는 보이지 않는 길이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가슴 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빛 하나가 다시 깨어나는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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