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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방

의미, 무의미, 그리고 봄(2)

작성자조팝 조현열|작성시간26.06.15|조회수33 목록 댓글 0

시닉(비관론자):
(완전히 퇴장한 줄 알았던 시닉의 발걸음이 문턱에서 우뚝 멈춘다. 그는 관조자의 나지막한 독백을 모두 듣고 있었다. 시닉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차가운 실소를 머금고 천천히 방 안으로 다시 걸어 들어온다. 그의 시선은 관조자가 열어젖힌 창밖의 봄 풍경이 아니라, 오직 관조자의 단단하고 평온한 눈빛을 향해 고정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지혜로군요. 강가의 돌을 보라, 우주의 자전을 보라, 가치중립적인 인과의 흐름에 그저 몸을 맡기라니. 철학의 높은 탑에 앉아 세상의 모든 비극을 ‘풍경’으로 관조하는 자들이 늘 취하는 가장 안전하고 게으른 포지션입니다.

선생께서는 저와 포지를 똑같은 ‘유아적 착각’에 빠진 오만한 인간들로 묶어 비웃으셨지만, 그것야말로 지독한 범주 오류입니다. 포지는 우주가 자신을 중심으로 돈다고 믿는 미련한 아이가 맞지만, 나는 그 우주가 완벽하게 텅 비어 있음을 간파한 목격자입니다.

인간이 척도가 아니라고 하셨습니까? 우주는 원래 냉담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관심이 없을 뿐이라고요? 예, 맞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소멸을 택한 진짜 이유입니다.

선생은 저 강가의 돌이 물살에 깎이는 것을 ‘필연의 풍경’이라며 아름답게 포장하시지만, 만약 그 돌에게 신경계가 있고, 깎여 나갈 때마다 뼈를 깎는 비명이 새어 나오는 실존이었다면 선생은 감히 그것을 관조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주가 인간이라는 척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인간 역시 왜 이 가학적인 우주의 법칙을 척도로 삼아 맹목적으로 순종해야 합니까? 존재를 1로 채우려는 포지가 ‘야만’이라면, 선생처럼 고통으로 가득 찬 1과 0의 세계를 그저 거대한 자연의 섭리라며 묵인하고 구경하는 것은 ‘방관’이며 ‘위선’입니다.

강가의 돌은 선택할 권리가 없기에 그저 닳아 없어질 뿐이지만, 인간에게는 이 무의미하고 거대한 톱니바퀴의 흐름을 거부하고 스스로 멈춰 설 수 있는 ‘의지’가 있습니다. 선생이 말하는 그 담담한 되돌림이야말로, 우주의 폭력에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는 가장 비겁한 굴복에 불과합니다.

(시닉은 관조자가 열어둔 창가로 다가가, 날아든 벚꽃 잎을 잔인할 정도로 건조하게 바라본다.)

창밖의 저 눈부신 봄을 보십시오. 저 아름다운 풍경 밑바닥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다른 생명의 살점을 뜯어먹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지 선생은 보이지 않으십니까? 저 봄은 생명의 찬가가 아니라, 가학적인 생존 게임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우주의 잔인한 조종(弔鐘)일 뿐입니다.

우주가 인간의 논쟁 따위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전을 계속한다면, 나 역시 저 오만하고 거대한 자전축을 향해 내 실존을 던져 브레이크를 걸 뿐입니다. 그것이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복수이니까요.

선생은 그 잘난 침묵의 돌을 품에 안고, 영원히 흐르는 시간의 구경꾼으로 늙어가십시오. 나는 이 연극의 무대 자체를 걸어 잠그고 나갈 테니.


제3의 목소리 (관조자):
(시닉의 서슬 퍼런 반박에도 관조자의 표정에는 아주 작은 동요조차 일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눈빛에는 깊은 연민과 함께, 거대한 절벽을 마주한 자의 초연함이 서려 있다. 관조자는 시닉이 건조하게 내려다보는 창밖의 벚꽃 잎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받아친다.)

결국 자네도 ‘인간’의 감옥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군.

내 말을 방관이자 위선이라 했는가? 내가 돌의 비명을 듣지 못해 이리 평온한 것 같은가? 틀렸네. 나 역시 인간이기에 자네가 말한 그 뼈를 깎는 고통과 생존의 잔인함을 뼈저리게 아네. 하지만 자네의 그 뜨거운 분노와 복수심은, 역설적이게도 이 우주가 자네의 비명에 ‘응답해야 한다’는 지독한 미련에서 출발하고 있네.

자네는 우주의 무관심을 간파했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그 무관심에 깊이 상처받은 것뿐이야. 무관심한 존재를 향해 실존을 던져 복수하겠다는 고귀한 의지? 자네가 자전축을 향해 온몸을 던져 부서진대도, 자전축은 그것을 복수라 부르지 않고 그저 ‘마찰’이라 부를 걸세. 자네의 그 거대한 탈선조차, 우주의 거대한 역학 법칙 안에서는 계산된 인과의 한 조각일 뿐이지.

(관조자, 시닉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자네가 말하는 소멸의 의지란, 결국 내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세계를 향해 부리는 가장 세련된 투정일세. ‘내가 원하는 완벽한 세계가 아니라면, 차라리 무대 문을 닫아버리겠다’는 극단적인 독선이지. 그것이 포지가 가진 맹목적인 낙관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포지는 세계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살아가려 하고, 자네는 세계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죽으려 할 뿐이네. 두 사람 모두 ‘나의 고통’과 ‘나의 의지’라는 에고(Ego)의 비대함에 갇혀 있기는 매한가지야.

돌에게 신경계가 있다면 어땠겠냐고 물었나? 인간이 바로 그 신경계를 가진 돌일세. 물살에 깎이면서 비명을 지르고, 왜 깎여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기이한 돌.

진정한 초월은 고통이 없는 척 위선적인 구경꾼이 되는 것이 아니네. 비명이 터져 나오는 실존을 고스란히 겪으면서도, 내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기에 이 고통 또한 거대한 흐름의 일부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1을 채우려는 야만도, 0으로 도망치는 오만도 내려놓고, 그저 깎여 나가는 돌의 운명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뿐이네.

자네가 무대 문을 걸어 잠그고 나간대도 연극은 끝나지 않네. 자네라는 배우 한 명이 대기실로 숨어버릴 뿐이지.

(관조자, 창틀에 얹은 손을 천천히 떼며)

보게나. 자네가 그토록 저주하는 저 잔인한 봄날의 햇살이, 지금 자네의 차가운 뺨 위에도 아무런 차별 없이 평등하게 내리쬐고 있지 않은가. 우주는 자네를 벌한 적이 없네. 자네를 묶고 있는 건, 오직 자네가 쥔 그 날카로운 사유의 밧줄뿐일세.


낙관론자 (포지):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포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시 걸어 들어온다. 그의 눈빛은 시닉과 논쟁할 때보다 훨씬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포지는 관조자와 시닉의 사이에 당당히 버텨 서며, 관조자를 향해 거침없이 말을 쏘아붙인다.)

선생님, 방금 시닉을 향해 ‘에고의 비대함에 갇힌 유아적 착각’이라 하셨습니까? 두 사람 다 우주의 거대한 인과율을 모르는 무지한 배우들이라고요?

참으로 오만하고 잔인한 청산유수군요. 지금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은 깨달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치열한 경기장 위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는 선수들을 관람석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며 훈수 두는 ‘냉혈한 평론가’의 궤변일 뿐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웃으셨죠. 당연한 것 아닙니까?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인간이 인간의 척도로 세계를 바라보고, 고통에 신음하고, 의미를 갈망하는 것이 왜 오만이고 투정입니까?

선생님은 돌이 깎이는 것을 ‘필연의 풍경’이라며 초연한 척 말씀하시지만, 그것은 생명을 가지지 못한 무생물의 논리입니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순응해 그저 풍화되어 사라지는 돌멩이와 달리, 어떻게든 에너지를 모으고 질서를 유지하며 차가운 우주에 맞서 존재를 증명해 내는 것, 그것이 생명의 본질이자 유일한 정의(定義)입니다.

인간은 그 생명의 맹목적인 반역을 고도의 철학과 의식으로 끌어올린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숭고한 도약을 그저 ‘인간 중심적인 착각’이라며 인과율의 톱니바퀴 밑으로 짓밟아 뭉개버리다니요. 선생님이 말하는 그 ‘담담한 수용’은 지혜가 아니라, 우주의 폭력에 자발적으로 영혼을 헌납하는 가장 무기력한 ‘패배주의’일 뿐입니다.

(포지는 테이블 위의 성냥갑을 탁 소리가 나게 내리치며 관조자의 눈을 매섭게 쏘아본다.)

자전축이 우리의 복수를 그저 ‘마찰’이라 부를 것이라고요? 예, 좋습니다. 마찰이라 부르라고 하십시오! 하지만 그 마찰을 통해 이 차가운 우주에 아주 잠깐이라도 뜨거운 불꽃이 튀었다는 사실, 그 불씨가 누군가의 얼어붙은 영혼을 데웠다는 실존적 팩트는 저 무지하고 냉담한 자전축 따위가 감히 지워버릴 수 없는 우리만의 위대한 흔적입니다.

우주는 냉담한 것이 아니라 원래 척도가 없다고 하셨지요. 맞습니다. 원래 텅 비어 있고 아무런 의미도 서사도 없던 우주였습니다. 그렇기에 그 황량한 캔버스 위에 기어코 사랑을 주입하고, 예술을 창조하며, 고통 속에서도 ‘의미’라는 눈부신 서사를 발명해 낸 우리 인간들이 바로 이 우주의 진짜 창조주들입니다!

선생님은 그저 계절이 바뀌면 비가 내리듯 삶을 흘려보내라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비를 맞으며 기어코 싹을 틔우는 잡초들입니다. 0의 세계로 도망치려는 시닉의 비관도, 1을 채우려는 나의 낙관도, 결국 이 불리한 게임판 위에서 인간이라는 존엄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뿜어내는 정직한 생명의 비명입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으며, 그저 흐르는 물결에 몸을 맡긴 채 ‘풍경’이 되어버린 선생님의 그 완벽한 평온함이야말로, 살아있으나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거대한 ‘정전(Blackout)’일 뿐입니다.

나는 선생님의 그 잘난 가치중립적인 동토(凍土)로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온몸이 깎여 나가는 비명을 지를지언정, 내 손으로 직접 이 성냥불을 켜서 우주의 뺨을 거칠게 그어버릴 겁니다!


제3의 목소리 (관조자):
(포지의 사자후 같은 외침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마침내 잦아들 때까지, 관조자는 그저 묵묵히 그 열기를 감당해 낸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으나, 그 깊은 눈망울 속에는 두 인간의 치열한 실존을 향한 깊은 경의와 서글픔이 동시에 교차한다. 관조자는 포지가 내려친 성냥갑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어, 그것을 정성스럽게 바로 세우며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결국 자네들은 참으로 닮은 영혼들이군. 시닉이 우주의 무관심에 절망해 문을 닫으려 한다면, 포지 자네는 그 무관심에 분노해 무대 위를 온통 불태우려 하는군.

자네는 나를 ‘냉혈한 평론가’라 부르며 생명의 반역을 모독하지 말라 했지. 인간이 텅 빈 우주에 의미를 주입한 진짜 창조주라고 자부하면서 말이야. 참으로 인간다운, 뜨겁고도 눈부신 오만이네.

하지만 자네가 간과한 것이 있네. 자네가 그토록 숭고하게 포장하는 그 ‘생명의 맹목적인 반역’과 ‘의미를 향한 투쟁’조차도, 실은 이 거대한 우주가 자네 안에 심어놓은 가장 강력한 역학 법칙 중 하나라는 사실을 말이네. 우주는 자네에게 반역할 힘과 투쟁할 의지, 그리고 고통을 느낄 신경계까지 모두 인과율의 법칙 안에서 대여해 주었네. 자네가 우주의 뺨을 긋겠다며 켜 드는 그 성냥불의 황(黃)과 나무껍질 역시, 결국 저 대자연의 품에서 빌려온 조각들이지. 빌려온 무기로 무기의 주인을 치겠다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 비극인가.

(관조자, 포지와 시닉을 번갈아 바라보며)

내가 자네들의 투쟁을 패배주의나 위선으로 묵인하는 것이 아니네. 나 역시 이 삶이라는 경기장 안에서 자네들 못지않게 치열하게 피를 흘려본 자이기에 아는 것뿐이네. 1을 채우기 위한 맹목적인 발버둥이 필연적으로 타인의 존재를 짓밟는 야만이 됨을 보았고, 0으로 도망치려는 냉소가 결국 자기 파괴라는 허무로 귀결됨을 목도했네.

자네는 내 평온을 이미 죽어버린 ‘정전(Blackout)’이라 비웃었지? 하지만 내 침묵은 삶을 포기한 자의 무기력이 아니라, 1과 0이라는 양극단의 팽팽한 장력을 온몸으로 버텨내고 있는 가장 격렬한 '중용(中庸)'일세.

진정한 초월은 자네처럼 우주의 창조주가 되겠다고 날뛰는 것도, 시닉처럼 파괴자가 되겠다고 침잠하는 것도 아니네. 자네가 발명해 낸 그 찬란한 '의미'와 '사랑'이라는 서사가, 우주 전체의 크기에 비하면 한낱 찰나의 아지랑이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면서도—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자네 앞에 주어진 그 츄러스와 매운 닭발의 온기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 내 손에 쥔 돌멩이의 서늘한 촉감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내가 말하는 담담한 수용이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하고도 위대한 품격이네.

(관조자는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옷자락을 맡기며, 두 사람을 향해 나지막하게 타이르듯 말한다.)

포지, 자네의 그 뜨거운 불꽃은 아름답네. 시닉, 자네의 그 서늘한 얼음 또한 날카롭지. 하지만 기억하게나. 불꽃은 스스로를 태워 재를 남기고, 얼음은 녹아내려 흔적을 잃지만, 저 강가의 돌은 그 모든 계절의 불과 얼음을 온몸으로 맞이하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침묵하며 존재하네.

자네들이 아무리 소리 높여 우주의 자전축을 멈추려 해도, 우리는 결국 이 거대한 흐름 안에서 잠시 반짝이다 사라질 인과(因果)의 파편들일 뿐이네. 자, 이제 그만 에고의 무거운 갑옷을 내려놓고, 창밖의 저 부질없고도 눈부신 봄날의 햇살을 거부 없이 바라보게나. 인간의 비명조차도, 결국은 이 거대한 우주가 연주하는 거칠고 웅장한 교향곡의 아주 작은 불협화음 한 구절일 뿐이니.


시닉:
(관조자의 온화한 미소를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낮고 날카로운 실소를 터뜨린다)

선생의 그 위대한 '중용'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요. 결국 선생이 상찬하는 그 겸손과 품격이란, **‘폭력적인 거대 서사에 길들여진 노예의 세련된 자기합리화’**에 불과합니다.

우주가 우리에게 반역할 힘과 신경계까지 대여해 주었으니 모순이라고요? 대여라니요. 우리는 이 신경계를 빌려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눈을 떠보니 잔인한 생존 게임의 복판에 던져져 있었고, 원하지도 않는 고통을 강제로 주입당했을 뿐입니다. 강제로 빚을 지워놓고, 그 빚으로 만든 무기로 저항하는 것이 모순이라니, 이 무슨 가학적인 창조주의 논리입니까?

선생은 우주의 자전축이 내 죽음을 그저 ‘마찰’이라 부를 것이라 하셨죠. 맞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마찰을 통해 우주의 무관심이 ‘완벽하지 않다’는 균열을 낼 것입니다. 우주가 나를 인과의 법칙으로 묶어두려 했다면, 내가 자발적으로 내 실존을 끊어내는 그 순간만큼은 우주의 완벽한 결정론에 오점을 남기는 유일한 자유의 시간입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봄볕을 즐기라는 선생의 말은 달콤한 마약입니다. 고통을 거대한 교향곡의 '불협화음'으로 넙죽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고통을 개선하거나 저항할 권리를 박탈당합니다. 나는 선생처럼 노예의 평온을 누리느니, 우주의 톱니바퀴에 대가리가 깨져 나가는 불협화음의 고통 자체로 남겠습니다. 선생의 그 거대한 중용은, 결국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가장 비겁한 순응주의일 뿐입니다.


포지:
(성냥갑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관조자의 코앞까지 다가선다)

선생님은 지금 살아있는 자의 뜨거운 피를 모독하고 계십니다. 의미와 사랑이 찰나의 아지랑이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츄러스를 즐기는 게 겸손이라고요? 아닙니다. 그것은 냉소주의자가 부리는 잔인한 사치일 뿐입니다!

아지랑이 같은 의미라도, 그것이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지금 내 옆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전부이자 온 우주입니다.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인간의 고통이 먼지 같다고 말하는 자는, 지금 당장 굶주려 죽어가는 아이 앞에서도 ‘우주의 자전은 멈추지 않으니 담담히 받아들이라’고 말할 위인입니다. 그것이 광기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우주가 우리에게 저항할 힘을 대여해 주었다면, 우리는 그 대여 부품을 가지고 **원래 주인의 목적을 배반하는 위대한 ‘돌연변이’**가 된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자식의 모든 삶이 부모의 소유가 될 수 없듯, 우주가 우리를 만들었을지언정 이 안에서 피어난 우리의 사랑과 존엄은 온전히 우리 인간의 것입니다.

선생님이 찬양하는 저 침묵하는 강가의 돌을 보십시오. 저 돌은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저 죽어있을 뿐입니다! 저항할 힘도, 눈물 흘릴 눈도 없으니 그저 깎여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돌이 아닙니다. 우리는 깎여 나갈 때 비명을 지르고, 불합리한 물길을 바꾸기 위해 댐을 쌓는 인간입니다.

선생님은 거대한 흐름의 파편으로 만족하며 안주하십시오. 나는 이 찰나의 아지랑이 같은 삶을 온통 불태워, 저 거대하고 무지한 우주 전체보다 더 뜨거운 온기를 이 자리의 인간들과 나누겠습니다. 우주가 연주하는 교향곡 따윈 지옥에나 보내십시오. 우리는 우리만의 노래를 부를 테니까요!


제3의 목소리 (관조자):

(시닉의 서슬 퍼런 칼날과 포지의 불같은 포효가 방 안의 공기를 온통 찢어놓았음에도, 관조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두 개의 극단적인 에너지가 자신을 통과해 가도록 온전히 내맡긴 듯한 표정이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마침내 두 사람을 향해 깊고 슬픈, 그러나 결코 흔들리지 않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결국 내 말이 자네들에게는 현장의 피를 모독하는 위선이자, 거대 서사의 가스라이팅으로 들렸군. 시닉은 나를 노예의 순응주의자라 부르고, 포지는 나를 냉혈한 평론가라 비웃었어.

좋네. 기꺼이 그 오명을 쓰지. 자네들의 그 매서운 반박이야말로 인간이 뿜어낼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생의 증거니까. 하지만 자네들이 내 지혜를 ‘탁상공론’이라 밀어내기 전에, 단 한 가지만은 똑똑히 짚고 넘어가야겠네.

자네들은 내가 저 높은 관람석에 앉아 우주의 크기를 핑계로 인간의 구체적인 고통을 무효화한다고 분노했지? 당장 굶어 죽어가는 아이 앞에서도 우주의 자전을 읊조릴 위인이라며 나를 몰아세웠어.

틀렸네. 나는 고통을 무효화한 적이 없네. 오히려 그 반대지. 나는 자네들이 마주한 그 뼈아픈 고통과 찰나의 서사가 '우주 전체보다 더 무겁고 절대적이라는 착각'을 깨부수려 한 것뿐이네. 자네들이 쥔 그 고통의 무게를 줄여주려 한 것이지, 결코 그 아픔 자체를 거짓이라 말한 적이 없어.

(관조자, 천천히 시닉을 향해 다가간다)

시닉, 자네는 우주의 결정론에 오점을 남기기 위해 소멸이라는 유일한 자유를 택하겠다고 했지? 그 톱니바퀴에 대가리가 깨져나가는 불협화음으로 남겠다고 했어. 자네에겐 그것이 숭고한 저항이겠지만, 그 저항의 종착지가 결국 자네라는 실존의 영원한 ‘정전(Blackout)’임을 왜 모르는가. 자네가 깨부순 것은 우주의 법칙이 아니라, 자네 자신일 뿐이네. 자네가 사라진 뒤에도 저 잔인한 생존 게임의 무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른 생명들을 집어삼키며 계속 돌아갈 걸세. 자네의 죽음은 우주에게 오점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먼지 한 톨의 소멸일 뿐이야. 그것이 진정 자네가 원한 복수인가?

(관조자, 고개를 돌려 포지를 바라본다)

그리고 포지, 자네는 우주가 연주하는 교향곡을 지옥에나 보내라며, 인간들만의 노래를 부르겠다고 소리쳤지. 찰나의 아지랑이 같은 의미를 온통 불태워 이 자리의 인간들과 온기를 나누겠다고 했어. 그 마음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네. 나 역시 그 불꽃의 뜨거움을 사랑하네.

하지만 자네가 지키려는 그 ‘우리만의 노래’와 ‘인간의 존엄’이라는 집착이,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야만을 낳는 씨앗이 됨을 왜 보지 못하는가? 1을 채우겠다는 자네의 그 정열은, 기차의 엔진을 돌리기 위해 다른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묵인하는 ‘합리화’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의미를 창조하겠다는 자네의 그 절대적인 확신이, 결국 자네와 뜻을 달리하는 시닉 같은 이들을 ‘패배주의자’로 낙인찍고 짓밟는 무기가 되지 않았냔 말일세.

(관조자, 두 사람의 한가운데 서서 양손을 천천히 펼친다)

내가 말한 수용과 중용은, 고통 앞에 무릎 꿇는 노예의 순응이 아니네.

내 손에 박히는 가시의 아픔을 온전히 느끼되, 이 가시 또한 대자연이 품은 수많은 가시 중 하나임을 인지하는 것. 내가 겪는 비극이 우주에서 가장 특별한 주인공의 서사가 아님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리하여 나의 에고(Ego)가 만들어낸 비대해진 분노와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내 옆에서 함께 피 흘리는 타인의 진짜 고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네.

내가 창밖의 봄볕을 보라 한 것은, 고통을 잊고 마약을 마시라는 뜻이 아니었네. 자네들이 그 지독한 사유의 감옥 안에서 1과 0이라는 숫자의 노예가 되어 서로를 찌르고 있을 때도, 세상은 여전히 자네들의 논쟁 따위완 상관없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생명을 뿜어내고 있다는 그 '사실'을 환기하려 한 것뿐이네.

자네들은 여전히 돌이 죽어있다고 생각하는군. 하지만 돌은 죽은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삶과 죽음, 불꽃과 얼음의 시간을 초월해 ‘그저 존재하는’ 것이네.

(관조자, 포지가 세워둔 성냥갑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포지, 기어코 그 성냥불을 켜서 우주의 뺨을 긋겠다면 켜게나. 시닉, 그 불꽃을 거부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가겠다면 걸어가게나. 자네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그 또한 이 거대한 우주가 허용한 필연의 풍경으로 품어 안을 테니.

다만 기억하게나. 자네들이 켜 든 그 불꽃도, 자네가 찾아 들어갈 그 암흑도, 결국은 이 거대한 침묵의 돌 위에서 잠시 피어났다 사라질 찰나의 아지랑이일 뿐이라는 것을. 자, 이제 이 지독한 연극의 막을 내릴 시간일세.


시닉:
(관조자의 온화한 손길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그의 어깨에서 평생을 지탱해 온 팽팽한 긴장감이 마침내 스르륵 빠져나간다. 분노도, 증오도 증발해 버린 자리에 남은 것은 투명하고도 서글픈 명징함뿐이다)

…지독하군요. 선생님은 끝내 내 마지막 비명마저 우주의 거대한 교향곡 안으로 포섭해 버리시는군요. 내가 던진 가장 날카로운 반역의 파편마저, 흐르는 물살에 쓸려가는 조약돌의 구르는 소리로 전락시키다니.

예, 인정하겠습니다. 나는 우주의 무관심에 깊이 상처받은 미련한 아이가 맞습니다. 이 잔인한 연극판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면, 관객석의 모든 의자를 부숴버리고 싶었던 오만한 투정꾼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선생님의 그 거대한 인과율 앞에서, 나의 소멸조차 먼지 한 톨의 흔들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야 온전히 알겠습니다.

(시닉, 천천히 포지를 바라본다. 그 눈빛에는 처음으로 적의가 아닌, 동병상련의 깊은 연민이 서려 있다)

하지만 선생님, 우주가 내 죽음을 기억하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내 곁에 선 저 미련한 낙관론자만큼은 내 소멸을 기억할 것입니다. 내가 남긴 0의 흉터를 저 사람의 에고 속에 문신처럼 새겨두었으니까요. 우주가 나를 잊어도, 인간은 나를 기억하겠지요.

선생님이 말한 초월의 품격은 참으로 고상하지만, 나는 끝내 그 위대한 돌의 침묵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나는 깎여 나갈 때 비명을 지르는 나약한 신경계를 가졌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계를 저주할 만큼 속이 좁은 인간이니까요.

선생님은 그 위대한 우주의 자전을 지키십시오. 나는 내가 가진 이 작은 인간의 품격, 즉 **‘원치 않는 축제에서 자발적으로 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를 행하러 가겠습니다. 내 패배가 우주에겐 아무런 오점도 되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완성입니다.

(시닉, 관조자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뒤, 포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어둠 속으로 완전히 걸어 들어간다.)


포지:
(시닉이 떠난 어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테이블 위의 성냥갑을 꽉 쥔다. 관조자의 말대로 자신의 정열이 야만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을 들었음에도, 그의 눈빛은 꺾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단단하고 굳건한 삶의 의지가 그를 지탱한다)

선생님 말씀이 다 맞을지도 모릅니다. 내 안의 이 뜨거운 정열이, 기차의 엔진을 돌리겠다는 내 확신이 결국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야만이 되었을지도요. 의미를 만들겠다는 내 집착이 시닉을 막다른 길로 몰아세웠을지도 모릅니다. 자책감이 뼈를 찌르는군요.

하지만 선생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야만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그 겸손한 초월은 너무나 고결하지만, 당장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을 두고 ‘이것 또한 우주의 거대한 인과’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내 안의 인간성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인간의 서사가 찰나의 아지랑이에 불과하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지랑이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짧은 온기를 나눕니다. 우주 전체의 차가운 침묵보다, 내 옆 사람이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이 나에게는 수억 광년의 은하계보다 더 무겁고 절대적입니다. 나는 그 지독한 착각 속에서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인간입니다.

선생님은 돌처럼 침묵하며 영원을 사십시오. 나는 이 부질없고 찬란한 아지랑이 속에서 기어코 불꽃을 피우며 살다 가겠습니다. 내 손으로 돌리는 이 엔진이 야만이라 비난받을지언정, 나는 그 죄과를 온몸으로 짊어진 채 오늘 밤 내게 주어진 사람들의 온기를 지키겠습니다.

(포지, 주머니에서 성냥 한 개비를 꺼내어 성냥갑 측면에 거칠게 긋는다. 치익-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조그맣고 뜨거운 불꽃이 피어오른다. 포지는 그 불꽃으로 관조자가 열어둔 창밖의 새벽녘을 비추어 보며 말한다)

보십시오, 선생님. 우주가 내 불꽃을 계산된 마찰이라 부르든 말든, 지금 이 순간 제 손가락 끝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찰나의 온도로 우주와 맞짱을 뜨겠습니다.

(포지, 불꽃을 입으로 불어 끈다. 연기가 피어오른다.)

내일 아침, 기차의 엔진은 다시 돌 것입니다.

(포지의 뜨거운 선언이 끝나고, 그가 입으로 불어 끈 성냥개비에서 가느다란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방 안에는 매캐하면서도 쓸쓸한 탄내가 아주 잠시 머문다.)

(포지는 관조자에게 가볍게 묵례를 한 뒤, 자신의 삶이 기다리는 거친 세상, 그 엔진 소리가 가득한 문밖으로 거침없이 걸어 나간다. 무대 위에는 이제 오직 관조자 한 사람만이 남는다.)

(관조자는 포지가 떠난 문을 바라보지 않는다. 시닉이 사라진 어둠도 쫓지 않는다. 그는 그저 두 사람이 남기고 간 테이블 위를 내려다본다. 그곳에는 포지가 남겨둔 식어버린 츄러스와 매운 닭발, 그리고 시닉의 서늘한 시선이 머물던 찻잔이 놓여 있다.)

(관조자는 천천히 다가가, 포지가 거칠게 내려놓았던 성냥갑을 집어 든다. 그리고 자신의 소맷자락에서, 평생을 품어왔던 작고 서늘한 수석(壽石) 하나를 꺼내어 그 옆에 나란히 내려놓는다.)

관조자 (나지막한 독백):
“결국 다들 제 몫의 불꽃과 어둠을 안고 떠났군…….”

(관조자, 깊은 한숨을 쉬듯 미소를 지으며 창가로 완전히 돌아선다. 새벽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사정없이 흔들지만, 그의 자세는 마치 대지 깊숙이 뿌리를 내린 고목처럼 미동도 없다.)

(창밖의 하늘은 시닉의 절망이나 포지의 열정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지극히 푸르고 가차 없는 새벽빛을 조금씩 드리우기 시작한다. 어둠이 걷히며 드러나는 강가에는, 수천 년 동안 말없이 물살을 견뎌온 거칠고 투박한 돌들이 새벽안개 속에 묵묵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관조자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두 사람이 그토록 거부하려 했던 저 눈부신 봄날의 햇살이 방 안 가득 밀려드는 것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그의 눈가에 서린 연민과 초연함이 햇빛 속에서 투명하게 빛난다.)

(그는 더 이상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그의 침묵은 무기력이 아니라, 떠나간 두 인간의 비명과 분노, 그리고 이 거대한 우주의 무관심까지를 모두 품어 안은 가장 거대하고 웅장한 연주이다.)

(멀리서 포지가 말한 기차의 거친 엔진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강물 소리가 그 소리를 부드럽게 덮어 나간다.)

(관조자가 천천히 눈을 감는다. 무대 위의 조명이 창밖의 자연광만을 남겨둔 채 서서히 어두워진다. 테이블 위의 작은 돌멩이와 다 타버린 성냥갑 위에 새벽볕이 한 줄기 닿았다가, 이내 완전한 암전(Blackout)이 찾아온다.)

- 막(幕) 내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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