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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

나와 태권브이의 즐거웠던 한때

작성자정광철|작성시간07.01.17|조회수18 목록 댓글 0
태권브이 애호가들의 말말말
2007.01.16 / 주성철 기자 

태권브이가 30여 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한 번 극장 문을 두드린다. 태권브이는 안방을 중심으로 계속되던 외국 애니메이션의 공세 속에서, 한국 극장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을 지킨 영웅이었다. 태권브이의 남달랐던 매력부터 표절 논란에 대한 생각, 그리고 수집가의 탐닉과 그에 대한 과학적 분석까지 태권브이를 추억하는 애호가들의 여러 이야기들을 싣는다.

▶성백엽
애니메이션 감독 | <84 태권V> 원화 파트 참여 | <하얀마음 백구> <오세암> 연출 | 2004년 옥관문화훈장


<84 태권V>에 참여했던 기억은 너무 오래전이라 가물가물하다.(웃음) 애니메이션 일을 시작하던 초창기였는데, 나 역시도 워낙 어렸을 때부터 <태권V> 시리즈의 팬이었던지라 참여 자체가 영광이었다. 특히 태권 액션을 구사하는 태권브이의 원화작업에 깊이 심취해서 무척 흥미로웠다.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하청을 받아 일하던 회사였는데, 합작 개념은 아니고 김청기 감독님 회사와 다른 회사가 조인해서 일할 때 참여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애니메이션은 외국의 것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런데 태권도를 구사하는 로봇이라는 사실에 열광했고, 그래서 ‘기계’나 ‘과학’이라는 개념이 어린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데 태권브이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내가 연출한 애니메이션 <하얀마음 백구>나 <오세암>은 그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스타일의 작품인데 한국적 소재라는 점에서는 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후 준비하다가 접었던 <각시탈> 같은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보면 <태권V>의 영향 속에서 태권도라는 고유의 무예에 구체적으로 다가가보려 했던 시도이기도 했다.



▶현태준
만화가 | <뽈랄라 대행진>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등


태권브이를 미친 듯이 좋아했다기보다는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보는 체험이라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1편이 개봉했는데 당시에는 극장에서 하는 만화영화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 때였다. 그래서 그 시절 초등학생들에게는 태권브이라는 게 어떤 하나의 현상 같은 거였다. 나보다 더한 수집가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태권브이에 관련된 포스터, 만화책, 장난감, 크레파스 등을 모으러 다니기도 했다. 태권브이 시리즈는 3편 <수중 특공대>까지 극장에서 봤던 것 같고 <슈퍼 태권V>부터는 중학생의 신분이 됐던지라 극장에 가지는 못했다. 어쨌건 돌이켜 생각해보면 로봇물이라는 장르, 그 속의 어떤 내용 같은 것들을 떠나 그 어린 마음에도 우리 아저씨들이 정성껏 만든 만화영화라는 사실에 감격했던 것 같다. 그전에는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극장 체험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송락현
애니메이션 평론가 | 스튜디오 본프리 편집장 | 저서 <송락현의 애니스쿨 1,2> <일본 극장 아니메 50년사> 등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것이, 그때 어떻게 조그만 아이들이 다 같이 태권브이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영화를 봤을까 하는 점이다. 마징가Z 같은 경우는 TV로 계속 상시적으로 볼 수 있었으니 주제가를 외기 쉬웠겠지만 태권브이는 띄엄띄엄 해마다, 혹은 해를 걸러 나오는 작품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전혀 그런 문화가 없지만 당시 아이들은 정말 초인적인 힘을 가졌던 건 아닐까, 바꿔 말해 태권브이가 각인시킨 기억이 무척이나 크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게 우리 세대를 정의하는 또 다른 특별한 요소인 것 같다. 그렇게 <로보트 태권V> 1탄은 당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으뜸이었다. 산업적으로도 그것은 기이한 현상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예를 봐도 보통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TV 시리즈가 좀 이어지다가 ‘극장용으로 한번 만들어볼까?’ 하는 의견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로보트 태권V>는 그렇게 축적된 경험 없이 느닷없이 만들어진, 김청기 감독 개인적으로도 데뷔작이었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다. 나중에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1977)를 만들게 되는 원화 담당의 임정규 감독, 음향효과의 김벌레, 음악을 맡은 최창권 등 참여한 스탭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그 대표적 한국 애니메이션의 명맥이 끊겼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 사이에 TV 시리즈로도 제작됐다면 어땠을까?



▶남상우
태권브이 물품 수집가 | 태권브이 관련 물품 천여 점 소장 | 각종 태권브이 관련 행사에 물품 대여


1편이 개봉했을 때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너무 재미있던 나머지 아버지가 아침에 출근하면서 태권브이를 하던 극장 앞에 내려다주면 1회를 보고 난 다음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다시 2회를 보고, 그렇게 하루 종일 태권브이만 봤다. 다른 시리즈가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무의식적으로 물건들을 모으게 됐다. 요즘 포켓몬스터 카드처럼 당시에도 문방구에서 태권브이 카드를 팔았는데, 그 카드 짝을 맞추기 위해서 몇 정거장을 걸어가 다른 문방구에 가서 카드를 사기도 했다. 잡지책 뒤에 실린 정보만 보고 영화사에도 무턱대고 찾아가 김청기 감독님을 뵙고 인사한 적도 있다. 거기서 이것저것 얻을 수 있냐고 그러니까 어떤 누나가 창고로 안내해줬다. 거기 쓰레기더미처럼 방치돼 있던 각종 태권브이 관련 상품들을 보고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그 수집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상품들이란 게 개봉 당시 크레파스, 딱지, 카드 같은 것들이다. 일본의 로봇 수집가들이 쓴 글을 우연히 접하게 됐는데 어린이들의 놀이문화로 치부되던 그런 것들을 성인이 돼서 정성스레 수집한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나 역시 어른이 돼서도 지도 하나 달랑 들고 차로 전국 각지의 문방구들을 찾아다녔다. 심지어 제주도에 갔다가 그냥 돌아온 적도 있고. 그 옛날 어린 학생들을 위한 음식은 물론, 없는 게 없었던 문방구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하다. 80년대 한때 정부에서는 저질 만화라는 식으로 그 소중만 만화들을 모아 불사르기도 했다. 뒤늦게 새로운 수집 작업에 나선 나에게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나라도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에 뒤늦게 태권브이에 관련된 물품들을 모으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단지 오랜 태권브이의 흔적을 더듬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지난 세월과 옛 기억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태권브이는 나에게 전혀 새로운 문화의 세계를 일깨워줬다.



▶양영순
만화가 | <누들누드> <아색기가> <천일야화> 등 | 2006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지난번 태권브이 30주년 기념행사 때는 <아색기가>에 실렸던 패러디 만화가 전시되기도 했다. 가슴팍에 영문 철자 ‘A'를 거꾸로 새긴 ‘택견 에이’는 옛날 태권브이 설정처럼 주인공 철이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게 되는데, 철수와 영이가 사랑을 나눌 때 다른 곳에 있던 태권브이가 깡통로봇과 박사 앞에서 그 자세를 그대로 따라한다는 설정이었다. <로보트 태권V>가 개봉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1편보다 그 다음에 나왔던 <수중 특공대>와 <태권V와 황금날개의 대결>을 참 좋아했다. 김청기 감독이 연출한 것은 아니지만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도 좋았다.



▶안영식
전 한국판 ‘뉴타입’ 편집장 | 현 NC소프트 리니지2 해외서비스 코디네이션 팀장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 손을 잡고 1편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로봇 이미테이션이 많았는데도 태권브이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로봇이 무술을 구사한다는 점이 신선했고 로봇 캐릭터라는 기계임에도 복합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 땄다는 지적도 그런 점들로 인해 상쇄되는 것 같다. 사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완벽한 창작이라는 건 힘들다고 생각한다. 로봇이 정의의 사자로 출연하는 로봇 애니메이션의 원형을 일본에서 만든 게 엄연한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표절 논란 자체가 없을 수는 없지만 태권브이는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덧붙여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깡통로봇이라는 존재다. 일본을 포함 여타 로봇 애니메이션에서도 물론 서브 로봇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들 역시도 엄연한 로봇이다. 하지만 깡통로봇은 생활 속의 주전자와 소품들을 이용해 만든 대인병기나 마찬가지다. 고춧가루탄이라는 설정이 그 어떤 로봇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수 있겠나. 로봇이라기보다는 갑옷을 걸친 사람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설정 자체도 무척 획기적이었고 코믹할뿐더러 그로 인해 어린이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우주시스템연구실 교수 | ‘로보트 태권브이 10대 기술 심포지엄’에서 ‘무기 및 비행’ 발제


<로보트 태권V> 1편이 나왔을 때 난 이미 대학생이었기에 극장에서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봤던 기억은 없다.(웃음) 그럼에도 태권브이는 당시 과학을 꿈꾸던 많은 한국 어린이들에게 어떤 중요한 상징 같은 것이었다. 지난해 <로보트 태권V> 탄생 30주년을 맞아 심포지엄이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무기 및 비행’에 관한 발제를 맡았다. 주최 측은 태권브이의 비행을 비롯 레이저 무기나 주먹 로켓 등 무기의 실질적 가능성에 대한 분석을 요청했는데 그것은 무척 흥미로운 주제였다. 발제를 준비하며 다른 시리즈들을 다시 또 보게 되면서 옛 향수가 일었지만 한편으로 황당무계한 디테일들을 더 발견할 수 있었다. 1976년 처음 등장한 태권브이는 발바닥에 있는 분사구에서 불을 뿜으며 날개도 없이 자유자재로 비행한다. 공기 중에서 비행하다가 갑자기 물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키는 56m이고 몸무게는 1,400톤으로 설정돼 있음에도 때로는 별도의 장치 없이 우주까지 무리 없이 날아간다. 공기 중 비행을 할 때는 양력을 받아야 하기에 날개가 필수적이고, 또 기존 엔진으로는 장시간 비행도 힘들다. 그래서 마징가Z는 제트스크랜더라는 날개가 있는데 태권브이는 3편에 가서야 따로 날개를 장착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사적으로 제안한 것은 마치 ‘독수리 5형제’처럼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태권브이 4형제’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태권브이 종류를 다양한 시스템의 요구에 따라 4개로 나눠 디자인도 각각 다르게 하고 A는 우주용, B는 지상용, 뭐 그런 식으로 기능을 세분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외국에서는 바비 인형을 종류별로 따로 수십 개씩 사는 아이들도 많은데 그렇게 되면 캐릭터 산업으로도 성공하지 않을까? 더구나 요즘 아이들은 예전과 달리 최소한의 과학 기술에 대한 개념이 있기 때문에 황당할 수 있는 요소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이 하나둘 반영되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태권브이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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