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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이야기

『바람의 검심』- 역사의 대변환 속에서 다시 본 검객 낭만담

작성자정광철|작성시간07.03.28|조회수145 목록 댓글 0
『바람의 검심』- 역사의 대변환 속에서 다시 본 검객 낭만담
- 황량한 시대를 건너온 군상들의 진혼곡 -


글. J.B.Kim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검을 들다.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 어떠한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그것이 진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베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
그것이 검술의 진정한 이치...
내가 너를 구해줬을 때처럼 몇 백 명의 악당들을 베어 죽여왔다. 허나 그들도 역시 인간, 이 삭막한 시대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아...
이 산을 한발짝 나가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각각의 양립될 수 없는 정의에 조종당한 끝도 없는 살인뿐.
그것에 몸을 던지면 어검류는 너를 대량살인자로 만들고 말 것이야....”

“저는 이 힘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을, 많은 목숨을 이 손으로 지키고 싶습니다.”


애니메이션 『바람의 검심』

『바람의 검심』의 주인공 켄신이 하산하기 전 스승인 히코 세이쥬로와 나눈 대화이다. 1860년대의 시대 상황을 냉정히 바라본 떠돌이 무사와 그러기엔 너 무 젊고 뜨거운 젊은 소년... 결국, 켄신은 하산하여 1860년대 조슈 번의 히토 키리(암살자)로 암약하며 새시대의 정의를 찾아 헤매지만, 사랑과 영혼의 상처 를 입은 채 유신지사로서의 거대 담론과 정의를 벗고, 역날검을 짊어지고 진정 한 유신의 실현을 위해 스스로 새로운 작은 혁명을 시작한다.

『바람의 검심』은‘경계의 시대’, 막부의 용광로와 뜨거움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던 시대의 그 경계에 서 있던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다.

메이지 검객 낭만담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담』. 이 애니메이션은 개인적으로 가장 훌 륭한 인성 교과서라고 느껴질 정도로 시대와 역사, 그 속의 여러 군상들의 삶 을 어루만지고 포옹하고 다독여주는 최고의 작품이다. 특히, 1860년대를 전후 한 도쿠가와 막부 말기의 정세와 격동의 시대에서 다양한 삶의 충돌과정을 정 면 돌파하는 능력은 가히 마에스트로의 경지라 할 수 있다. 검의 승부와 마찬 가지로 절대 피해가지 않는 우직한 과정에서의 모든 삶은 아름답게 피어나고 사라진다.

메이지유신, 1867년 메이지 천황 시기, 조슈/사쓰마번을 중심으로 이뤄진 근대 일본의 왕정복고 혁명... 1600년 이후 250여 년에 걸친 도쿠가와 막부의 시대를 마감한 근대 일본의 출발점으로 서양의 프랑스 대혁명에 견줄 정도의 급격한 변혁의 시작점이다. 유신 이후, 3년 만에 일본은 16세기에서 19세기로 진입했다던 어느 외국인의 글처럼 현대 일본사회의 근대적 뿌리를 이루는 거 대한 변혁의 시대다.

이러한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조슈와 사쓰마, 도사의 사무라이들은 사실 200여 년 전부터 도쿠가와에 밀려 영지를 빼앗긴 도요토미 추종세력의 후손이 대부분이며, 최고 사무라이 지위를 상실하고 중/하급 무사로전락한 이들에게 도쿠가와 막부는‘음흉한 너구리 굴’일 뿐이었다.

에도(도쿄)에서 가장 먼 지역인 남부의 조슈와 사쓰마는 중국, 조선, 마닐라, 싱가폴 등 해외와 무역, 상거래가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서양 문물과의 교류가 발달한 일본 근대의 핵심 관문지역들이었다. 이러한 서양 문물과 경제적 풍요로움을 기반으로 도쿠가와 막부에 대항할 수 있었으며, 존왕양이(천황 중심으로 서양 오랑캐를 몰아내자) 구호를 기반으로 정치적 권력 쟁취를 위해 쿄토의 천황을 중심으로 막부해체를 추진한다. 물론, 사카모토 료마의등장 이후, 점차 단순한 존왕양이에서 서양을 따라 배우자는 기조로 변해가면서 말이다. (안중근에게 저격당한 이토 히로부미도 이 당시 조슈의젊은 혁명가였다.)

이 과정에서 끝없이 막부와 조슈/사쓰마/도사 사무라이들 간의 암살과 전투가 반복되고, 이러한 핵심 전장으로 천황이 있는 교토가 피범벅이 되어가자, 교토의 치안을 위해 전국 유명 무사를 결집한 것이 바로‘신선조’다.

초기 신선조의 참가자들은 존왕양의 막부타도의 동조자들이었으나, 점차적으로 이들은 치안유지와 천황보호라는 미명하에 막부의 물리적 전투 조직으로 점차 전화되어 간다. 정치는 배제되고‘무(武)’의 진실성만이 인정받는, 사라져간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의 표본.... 신선조에 대한 일본인들의 갈망은 여기서 나오는 셈이다.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개창 이후, 모든 사무라이들은 무사적 풍모에서 유학자적 사대부로 거듭나며 점차적으로 여려져 왔다. 칼은 점차 단순한‘사무라이’신분의 증표였으며 실제적인 활용은 줄어들었다. 이러한 시대를 한탄하며 도요토미 계열의 사무라이들은 진정한 강한 사무라이 도를 추구했으며, 도쿠가와에 대한 반감은 점차 깊어갔다. 막부 말기의 검술 도장의 활성화, 다양한 검술 유파의 등장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긍심 강하고 주체의식이 확고한 사무라이는 향후 근대 지식인으로서 과학자로서 학자로서 새 시대를 이끄는 주역이 된다.

유신지사
메이지유신이 진행되자, 대대적인 공로자들에게 유신지사라는 호칭이 부여되고 조슈와 사쓰마 출신의 정치인들은 일본 현대정치의 주역으로 거듭나게 된다. (현 일본총리인 아베신조 역시 조슈 출신이며 그 정치적 소신은 메이지유신에서 기인한다 할 정도로 아직까지 일본 정치에 막강한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유신지사들이 품성적으로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던가 보다. 어디나 새 시대가 오면 나서는 들이 있기 마련. 검객경관대라는 사쓰마 출신들의 위압적인 등장은 유신을 원했던 많은 이들의 꿈이 왜곡되어가는 현실을 표현한다. 유신지사라는 허명하에 권위와 권력에 기대어 평민들을 희롱하던 그들에 대한 응징은 왠지 모두에게 씁쓸함을 안겨준다.

또한, 극중의 사노스케(이하사노)의 선배인 사가라 대장이 주도했던‘적보대’는 사민평등을 추구하며 농민과 상인으로 이뤄진 자생적 의병이었으나, 유신세력과 이들의 관군은 적보대를 가짜 유신 관군으로 몰며, 이들의 급진적 개혁 요구를 묵살하고 제거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가장 급진적인 세력들의 민주주의, 개혁 요구를 묵살했던 역사는 동서양에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사노의 추억으로 표현된 이러한 과정은 몇 권의 역사 책보다도 더 절절히 다가온다. 이러한 어린 시절 경험을 통해 모든 유신지사를 위선자로 인식한 초기 사노의 켄신에 대한 적개심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과정이며, 이에 대한 켄신의 외침 역시 커다란 울림으로 사노에게 들려주게 된다.

“사노! 적보대는 그대에게 유신지사를 죽이라고 가르쳤소, 유신을 완성시키라고 가르쳤소? 유신은 끝나지 않았소....”

끝없이 작은 삶 속에서 유신을 완성하려는 켄신과 이를 통해 유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변화되는 사노의 만남은 이후의 모든 악당들(?)과의 대면에서 도 공히 드러나는 근대 계몽 프로젝트의 기반이다.

새 시대에는 칼이 필요없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모든 등장인물에 대해 켄신/계몽 프 로젝트는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유로운 세상에 적응하라고 이야기한다. 막부의 경호집단이었던 시노모리 아오시의 어정번중. 막부가 사라졌으니, 이들 역시 갈 곳을 잃고 새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다.

히무라 발도제를 꺾어 최강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아오시에게 켄신은 말한다.

“최강에 집착하는 이유가 뭐요, 지금 같은 시대에 최강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소? 그대 실력이면 더 나은일이 있을 텐데, 왜 그러고 사는 거요?”

이에 대한 대답은 아오시가 아니라, 그의 부하들의 절규 속에 드러나는데, 시키죠가 울먹인다.

“우리들 어정번중 부하들(베시미, 한냐, 불돌이, 시키죠) 때문이다. 싸울 줄 밖에 모르는 우리를 받아줄 데가 없기 때문에. 두목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관직도 마다하고 우리들이 살아갈 장소를 마련해 주신거다.”

이들의 뜨거운 의리와 신뢰, 그리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려는 서로에 대한 애정은 앞서의 악당 이미지를 일거에 뒤집으며 시대에 외면받는 어두운 현실을 오롯이 드러낸다.

이러한 시대부적응 캐릭터는 이 외에도 많다.‘우도진에’(신선조 출신의암살 전문가). 켄신으로부터 다시 암살자의 기를 살려내어 쾌검을 나누고자 한 승부 사. 그 역시 다시금 과거의 짜릿한 검의 대결을 잊지못한 시대의 부적응자인 셈이다.

새시대에 다시 칼 하나로 또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 던 사카키토우마에게도 켄신은 말한다.

“새 시대엔 칼이 필요치 않소. 토우마는 새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불쌍한 남자요.”

이렇듯 다양한 시대적 군상들 사이를 켄신은 역날검으로 명쾌하게가르고나아간다. 모든 인간들에 대한 이해 가능한 설명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와 달리, 세상을 더욱 공격적으로 뒤집으려는 사무라이 재림파들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았다. 유타로의 검술 스승으로 등장한 진고류 검객‘라이쥬타’는“메이지, 검술이 죽도나 흔드는 맥빠진 시대”라고 조롱한다. 이들은 진정한 사무라이 검객들의 새로운 쿠데타를 꿈꾸지만, 이 역시 소총이 난무하는 시대 에 김빠진 검술이 되고 마는 것이다.

칼을 버리라는‘폐도령’을 사무라이 긍지를 버리라는, 죽으라는 말보다 처참하게 받아들인‘라이쥬타’는“싸우지 않으면 우리들의 인생은 끝이다. 칼잡이였던 너 또한 멸망해 가는 것이다”라고 항변하지만, 켄신은 담담하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시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기꺼이 멸망해 가겠소”라고....

이러한 무력을 통한 세상의 재변화 요구는 시시오 마코토에 다다르며 정점을 이룬다. 유신지사 500명을 암살하고 교토를 불태우려는 제2의‘이케다야’ 계획을 추진하면서 말이다.

이와 달리 시대에 너무 쉽게 적응하는 인물이 있으니,‘사이토 하지메(후지 타 고로 경관)’가 바로 그이다. 신선조 3번 조장 출신으로‘악측참(惡卽斬)’이란 신념 하에 강력한 찌르기 검술을 기반으로 메이지 시대의 경관으로 유유히 시대를 즐기는 캐릭터다.
삐딱해 보이지만, 사이토는 켄신과 유사한 정치적 스탠스를 보여주고 있다. 막부 말기 유신지사들의 입막음을 위해 개혁정부 고관들이 고용한 암살 조직의 일원인 시부미에게 그는 말한다.


사이토하지메
“시부미 씨, 사실 앞에서는 켄신이 숙적이라고 했지만, 사실 지금은 아무래도 좋소. 말했잖소, 나의 소망은 남은 여생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라고.... 우물 안 개구리들의 최고 다툼 따위는 내 관심 밖이라구.”

더이상 새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새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이토는 가볍게 냉소 한모금을 담배에 담아 보내준다. 가늘고 기다란 신식 담배로 말이다.

병든 시대를 살다
사실, 격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모든 문학과 예술작품이 주는 감동과 캐릭터는 『바람의 검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병들어간 시대에서 새 시대로 거듭나는 아픔도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았는가. 한반도의 20세기를 둘러싼 수많은 현실 - 한국전쟁과 80년대 - 과 문학 세계를 체험해보라. 1,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모든 전쟁 영화와 그 속에서의 인간을 보라. 그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인간의 질긴 삶은 그 자체로 놀랍고 아름다우며,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몸짓은 누구에게나 감동적이다.

『바람의 검심』추억편 서두에 히코 세이쥬로는 말한다.

“병들어 있다. 시대도, 사람의 마음도...”

하지만, 이러한 시대와 사람에 대해 애니메이션 『바람의검심』은 다시금‘인간’과‘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주목하고 잔잔한 눈길로 바라보며, 병든 시대를 건너온 건강한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시대와 사람의 마음이 병들지 않았던 때가 있었을까? 결국, 스스로의 치유능력을 높이는 것만이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이 아닐까?

마음이 병들어 있는지 검사하고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을 소개하며 마친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검과 같이 가파르고 냉혹하게 표현하는 세이쥬로의 진단 법이다.

“봄에는 밤 벚꽃, 여름엔 별, 가을엔 보름달, 겨울엔 눈.... 그걸로 충분히 술은 맛있다.
그래도 술이 맛이 없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뭔가가 병들어 있다는 증거다.”


검사해보고 오늘을 건강히 살아가자. ^^

글. J.B.Kim



켄신의 실존 모델, 카와카미 겐사이
텐포 5년생으로 일찍이 근황사상 (勤王思想)을 품게 된 그는 히토키리의 길로 빠지게 되었다. 그의 검의 유파는 겐사이류라 하는데, 도장에도 다니긴 하였으나 죽도검술은 서툴렀던 모양으로 매번 두들겨 맞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진검만 빼들면 더이상 겐사이에게 당할 자가 없었다. 이론보다는 실제적인 그의 검법은 그만의 독특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엄청난 수의 사람을 베었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벤 인물은 카츠 사쿠마 조우잔이란 사람으로 이케다야사건으로 미야베 켄조우와 히고출신의 동지들을 잃은 겐사이는 사건의 흑막으로 여겨졌던 사쿠마 조우잔을 죽임으로써 동지들의 복수를 하고자 한 것이다.



“사람을 벨 때는 마치 인형을 베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조우잔을 벨 때는 달랐다. 처음으로 사람을 벤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필경 조우잔은 당대의 호걸이었을 것이다”고 그 때의 일을 토로하였다고 한다. 또, 처음으로 공포감에 휩싸여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고도 한다. 그 후로 겐사이는 살인검을 휘두르지 않게 되었다. 칼을 빼들어도 사람을 상처입히는 정도에서 그치고 죽이지는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초슈와 함께 싸우게 되는데, 메이지 정부가 개국정책으로 돌아서도 양이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개국책에 비판을 하다가 정부전복의 혐의로 체포되어 1871년 참수되어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주)이케다야
교토의 여관 이름으로 조슈와 사쓰마 등 유신 추진세력의 비밀 근거지였다. 조슈파는 천황을 자기들의 영향권에 두기 위해 교토에 불을 지르고 천황을 조슈로 옮기는 거사를 준비하게 되는데, 이를 모의한 곳이’이케다야’여관이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신선조의 습격을 받아 참석자들이 거의 모두 죽게 된 실패한 거사의 근거지다.

* 본 내용은 월간 아이콘 11월호에 기재된 애니메이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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