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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용수사의 "미륵 " 이야기

작성자유랑아제(김종태)|작성시간09.09.25|조회수230 목록 댓글 1

 

 

 

 

 

 

 

안동 용수사의

 

 

        탈북1호 미륵 돌부처님 이야기~실화

 


   

 일명 탈북1호 미륵 돌부처님

 

경북 안동 용두산 용수사 전경

  

 기이한 사연이 있는 이 돌부처는 지난 2005년 어느 노 보살님이 탈북하면서

북한에서 모시고 나온 것이다.


 이 돌부처를 어떤 사람이 구입하여

용수사스님에게 시주한 것을 경내에다 봉안해 놓았다.


 이 돌부처는 원래 휴전선 근방

북한 행정구역으로는 개성시 영통사에 모셔져 있던 돌부처님이다.


 영통사는 1027(고려 현종 18)창건된 사찰로,

개성시 용흥동 오관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16세기 무렵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2002년 11월 북한의 조선경제협력위원회와 대한불교천태종이 함께

복원 사업을 시작하여 2005년 10월 31일에 복원을 완성했다.


 영통사는 일찍이 고려 왕실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어서

인종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자주 참배하고, 각종 왕실 법회가 열렸던 큰 사찰이었다.

 

 당시에는 인연이 있는 왕들의 진영(眞影)을 모시는 진영각(眞影閣)이 있었다.

대각국사 의천(義天)은, 이곳에서 교관(敎觀)을 배우고 천태종을 열었으며,

입적한 후에는 그의 비가 이곳에 건립되었다.

 

 

 


문화재로는 영통사 대각국사비(북한 국보 155호), 영통사 오층석탑(국보 133호)이 있다. 그 외에 당간지주, 삼층석탑, 의천의 사리를 모신 부도가 남아 있다.


그런데 이 돌부처가 탈북하게 된 사연은 그야말로

기묘한 일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니까 이 미륵부처님을 모시고 탈북한 보살님은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2003년경 이 영통사 앞마을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들과 딸 며느리가 모두 탈북 하여, 중국으로 넘어간 까닭에

정안수를 떠 놓고 매일매일 자식들의 무사안일과 만나기를 빌었다.

 

 


 그러기를 3년째, 어느 날 꿈속에 친정아버지가 나타나

집 뒤에 묻혀있으니 답답하다며 꺼내달라고 호소를 하였다.


 기이한 생각이 들었지만 꿈속의 일이라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3일 계속 꿈속에 나타나 자신을 땅 속에서 빨리 꺼내달라고 호소하였다.

집 뒤로 가서 꿈에서 본 곳과 비슷하여 파 보니 돌로 조각된 불상이 나오게 된 것이다.

 

 


 아마도 영통사가 16세기경 화재로 소실될 적에

이 돌부처님은 어느 누군가에 의하여 마을의 가정집으로 옮겨졌거나

아니면 고려 때 불교가 성할 적에 민간이 자신의 가족이나 개인의 안녕을 위하여

자기 집에 모셨거나 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이 부처님은

보통 우리의 상식적인 불상의 모습에서 벗어나

일반 보통사람들의 정감이 넘치는 해학적이고

중생의 근심을 짊어진 마치 등신불에 나오는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불상을 노 보살은 친정아버지의 현신이라고 믿고

날마다 정안수를 떠올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며 치성을 다했다.


 그런 말이 있다. 부모는 땅에다 묻고 자식은 가슴에다 묻는다고.

자식이 살았는데 만나지 못한다면 세상에 그 애간장이 녹지 않을 부모가 있겠는가.

보통 자식이 군대에 가도 밤잠을 설치고 음식을 먹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하물며 타국 땅으로 금생에 다시 볼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이야 오죽 하겠는가?

 

 


 불가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듯이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그리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오직 자식 생각에 오매불망 몸이 쓰러지도록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석 달 정도 지났을 적에

생각지도 않던 조카가 찾아와 함께 탈북하자고 권유했다.

자식과 며느리를 보고 싶어 매일 밤 꿈속에서까지도

그리던 가족이기에 가다가 붙잡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탈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열흘 후에 탈북을 하겠다고 서로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또 다시 꿈속에 친정아버지의 형상을 한 미륵부처님이 나타나

자신도 함께 데려가 달라고 한 것이다.


 이 돌부처님은 무게가 약 200킬로그램 정도 된다.

이처럼 무거운 돌부처를 옮기고 이동하는 것이 여간 힘들고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꿈을 3일 동안 계속 꾸어서 보살님은

조카에게 이야기하니 조카도 이 돌부처님이 자신의 꿈에도 나타나

자신과 작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달리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조카는 부처님을 모시고 가야한다고 마음먹고 어디에선가

광목천을 구해 와서 미륵 돌부처님을 둘둘 말아서 마치 미라같이 만들었다.


 그리고 조카가 중고차를 가지고와서

미륵 돌부처님을 차에 싣고 탈북하기위해 길을 떠났다.


 이 보살님은 자녀들에게 줄 것은 없고

마침 자신이 직접 담은 아들이 좋아하는 3년이나 묵은 간장이 있어서

유리로 된 병에다 담아 차량 난간에다 걸어두었다.

 

 

 비포장 산길을 달리게 되었는데

간장을 담은 유리병의 끈이 끊어져서

미륵돌부처님 머리에 떨어져 병은 깨지고

간장이 온통 광목천에 쏟아져서 한여름에 마치 시체가 썩는 냄새가 나게 된 것이다.

 

 


 한여름에 3년이나 묵은 간장이 몸에 몇 방울만 묻어도 옷을 빨아야하는데

여러분 머리위에 한 병의 간장이 쏟아져서

더운 여름날 한나절만 길을 걸어 다닌다면

아마도 수십 미터에 있는 사람도 코를 막고 피해서 다닐 것이다.

 

 


 그런데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하지 않았는가?

탈북 하는 신세이다 보니 지나가는 경찰만 보아도 마음은 얼마나 조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쩌랴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길 수밖에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그냥 그대로 오다가 중간에 검문소에서 경찰에게 검문소 검색을 당하게 된 것이다.

 

 


 어디에 가느냐? 묻는데 마침 조카가 임기응변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엉겁결에 몸이 썩어가는 옴병에 걸렸다고 했더니

의외로 경찰이 먼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놀래서 빨리 가라고 재촉하였다.

 

 

 

 이렇게 하여서 몇 번을 무사히 통과하여 드디어

중국과 국경선인 신의주에 도착하여 지난번과 비슷한 검문이 발생했는데

조카가 또다시 기지를 발휘하여 무사히 국경을 넘어 탈북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중국의 단둥에 이르게 되었다.


 단둥의 옛 이름은 안둥[安東(안동)]이었으나,

1965년 개명하였으며, 압록강 하구부의 신의주 대안에 자리하여

신의주와는 철교로 연결된다. 참 기이하지 않은가?

중국의 단둥 즉 옛 안동의 부처님이 오랜 세월 흙속에 묻혀 있다가

대한민국의 안동에 오게 되다니

정말로 우연인지 기연인지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단둥에 도착한 보살님과 조카는 십 여일 여 만에 오매불망 그리던 자식들을 만났다.

 

 

 


 그런데 타국에서 이 무거운 돌부처님을 모시고 다닐 수가 없어서 고민하였다.

그런데 마침 아들과 인연이 있는 한국에서 10여 년 전에 사업을 하다 실패하여

부도를 내고 중국으로 피신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어렵사리 탈북을 할 수 있었던 노 보살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부처님을 사겠다고 하였다.

 

 


 이 노 보살님은 아버지와 같은 부처님이지만

그러나 타국으로 탈북 하여 어려운 신세라 어쩔 수 없이 팔게 되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도망간 사업가는

자신의 가진 돈을 다 털어서 부처님을 모셔서 용수사의 스님께 시주하여

현재 안동 용수사에 모셔지게 된 것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 용수사에는 법당 좌측 편에

돌부처님이 모셔져 계신다.

 

 

 이와 같이 우여곡절 끝에 미륵 돌부처님이 안동 용수사로 오게 된 것이다.


 이 미륵 돌부처님은 2005년 6월경에 용수사에 오게 되었는데

그 해 10월경에 이 시주한 사업가가 용수사에 오게 되었다.


 어떻게 올 수 있게 된 일이냐고 하니

이 사업가가 10여 년 동안 도저히 풀리지 않던 자신의 일이

부처님을 시주한 이후로 불과 3개월여 만에 모두 풀려서

2005년 10월 달에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난 2008년 10월 말에 탈북한 김복희 보살님과

주위 사람들이 오셔서 말씀을 해주시고

그리고 2009년 부처님 오신 날 또 오셔서 탈북부처님에 대하여

많은 분들에게 시낭송과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리고 지금 용수사에 계신 스님들이 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매일 아침 돌부처님 앞에서 30분정도 기도드리는데

가끔 간절히 기도하면 칠흑 같은 밤에 다른 옆에 비석이나 물체는 보이지 않는데

이 부처님만이 마치 사람이 앉아 있듯이 방광을 발한다.

 

 


 그리고 용수사의 신도 분들 가운데

힘든 분들이 마치 탈북한 노 보살님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일이 잘 풀려서 소원을 이룬다고 기도 소원을 이룬 불자들이 말씀을 하신다.

 


 탈북한 김복희 보살님은 이번 부처님 오신 날에

용수사에 와서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서 증언을 해 주셨다.

 


 

“이 미륵돌부처님에게 치성으로 기도 드려보세요.

뭐든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줍니다.”


 김복희보살님의 체험담이다.


- 이 이야기는 탈북하신 김복희 보살님의 증언과

용수사 스님들의 말을 들어서 쓰여 졌습니다.

 

 

경북 안동 용두산 용수사 전경

 

경북 안동 용두산 용수사 대웅전

 

  용수사 대웅전앞 왼편 승요

 

   용두산 용수사  산신각

 

  용두산 용수사  수조

 

  용수사 조왕단        본존 : 나무팔만사천조왕대신 ,    좌보처:담시역사 ,  우보처:조식취모

     용두산 용수사 금호석비  ↕

 

 

경북 안동 도산 운곡

용수사는 고려 의종 원년(1146)에 각화사 주지 誠源이  암자를 짓고, 처이(處彛)가 수도 하였다.
龍壽寺는 創建主석윤(釋胤각화사 주지)이 제자인 雲美(2대 주지)에게 맡겨 짓도록 하였으며,
고려 의종9년 (1165년에 90 여칸을 완공하여 의종으로 부터 용수사라 사액을 받았다.

1896년 화마로 전소 되어 오던중 1992년: 現 會住 願行스님이 부지 약 2만평을 매입,
1994년:대웅전. 寮舍 2동(각98평) ,1995년 석가모니불,1996년 문수+보현. 후불탱,신중탱 점안.

 

♨문화재자료  제400호   안동 용수사금호비(安東龍壽寺禁護碑)  
  용수사 금호비는 용수사를 다시 짓기 위한 목재 보관소 옆에서 다른 장대석 등과 함께 출토

  되었는데,  이 산 전체를 영세토록 금지하여 보호할 일이다.

  일영(日營)이 제목을 짓고,  신해(辛亥)10월에 세운다 라고 되어 있다.
 

  높이 131㎝, 가로 45㎝, 세로 17㎝ 규모로 앞면에 34자, 오른쪽 옆면에 9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 옆면의 글은 비석을 만든 이후에 새긴 것으로 보인다.

  용수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옮긴글, 유랑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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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보통사람(권영대) | 작성시간 09.09.29 이번에 용수사 갔을때 이 미륵 직접 보고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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