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와 신발
윤종경(강원도 춘천시)
나는 2년 차 교사로, 시골 중학교 1한년 2반 담임이었다. 오월의 어느 날, 조용한 아침
자율학습 시간이었다. 드르륵 뒷문이 열렸다. 모든 아이의 시선이 뒷문을 향했다. 수미가
수줍게 교실로 들어섰다. 삼 일 연속 지각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수미야,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오렴."
하나 수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곤 아무 연락없이 며칠간 결석했다. 물어물어 수미네
집을 찾아갔다. 산길을 따라 작은 언덕을 넘어 도착한 곳에는 대문도 잘 닫히지 않는
허름한 집이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수동식 펌프 우물가에 찌그러진 양동이와 주전자만 동그러니 놓여
있었다.
"수미야, 수미야."
아무 기척이 없었다, 부엌에 가 보니 온전한 그릇이 없었다. 방문 앞에서 재차 이름을 불렀다.
수미가 자다 깬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주사로 집을 나가고, 시내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오빠는 거의 오지 않는
단다. 수미는 기운 없어 보였다.
"어디 아프니?"
대답하지 않아 거듭 물었다. 수미는 눈물을 글썽이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배가 고파요."
나는 수미의 손을 잡고 학교 앞 식당으로 향했다.
한 학기를 마칠 즈음,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이었다. 지각한 수미가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자리로 들어가는데 바닥에 젖은 발자국이 남는 게 아닌가. 이상하다 싶어 신발장으로 가 수미의
신발을 살폈다. 밑창에 동전보다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일과를 끝내고 수미와 시내 신발 가게로 갔다. 마음에 드는 걸 신어 보라고 하니 제일 저렴한
하얀 실내화를 골랐다.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발을 골라 수미에게 신겼다. 수미는 어쩔 줄 몰라하며
"괜찮아요.' 하고 사양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커서 선생님한테 좋은 신발 사 줘."
새 신을 신은 수미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오래전 교직에서 퇴임했다. 수미는 기억에서 까마득해졌다. 어느 오후, 명동 신발 가게에
들렀다. 한참 신발을 고르느데 오십 대 중반의 여자가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윤종경 선생닌 아니세요?"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선생님! 저 수미예요."
그녀는 나를 와락 부둥켜안았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밤늦도록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울기도 웃기도 하며 쉬지않고 대화
했다. 사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수미는 할머니가 되어 아들과 신발 가게를 운영하며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월간 <좋은생각> 2019년 9월호 23~24쪽에서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