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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아테네는 서구 문명의 발생지이며 고전 문명의 많은 지적, 예술적 사상이 비롯된 곳이라고 한다. 외항 피라이우스(피라이에브스)가 있는 에게해의 팔레론 만 연안으로부터 8㎞ 떨어져 있으며 동쪽의 페탈리온 만과의 사이에는 히메토스(이미토스)산맥이 가로지르고 있다고 한다.
계절에 따라 흐르는 키피소스 강이 시의 서부를 관류하고, 일러소스강이 동부를 가로지른다. 대 아테네는 지금의 그리스에서 하나의 디아메리스마를 이룬다고 한다.
아테네는 그리스 인구의 40%인 400만 명이 몰려 살고 있는 수도이며 도시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여신 아테나에서 유래 됐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아테나이(Athnai), 현대 그리스어로는 아티나이(Athnai), 영어로는 애신스(Athens)이다. 이름은 시의 수호신 아테나 여신과 관계가 있다고 하며 역사가 2500년이 넘는 고대 도시로서 현재의 도시는 1834년 신생국가로 독립한 후 만든 새로운 도시로 인구가 집중돼 옛 그리스의 영광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팽창됐다고 한다.
특히 1960년대 초 농업구가에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농촌과 섬에서 이곳으로 몰려들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스의 수도로서 아티카 반도 중앙 사로니크만 연안에 있는데 동쪽은 히메토스산, 북동쪽은 펜텔리콘 산, 북서쪽은 파르니스산, 서쪽은 아이갈레오스산에 둘러싸인 평야가 사로니크만으로 기우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시는 키피소스강과 그 지류인 일리소스강 사이에 끼이 있으며 아크로폴리스(해발고도 156m)를 중심으로 몇 개의 작은 언덕이 있는데 북동쪽에 있는 리카베토스 언덕이 가장 높아 해발고도 277m나 된다고 한다. 남서쪽에는 필로파포스,프닉스,아레오파고스 등의 언덕이 있다고 한다. 아테네(Athens)의 면적은 39㎢이며, 인구는 1991년 통계로 약 88만 5천명이라고 하였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올리브(Olive) 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고 길바닥을 대리석으로 깔아놓은 꼬부랑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아크로(Acro)는 '높다'는 뜻이고, 폴리스(Polis)는 '도시국가'라는 뜻이며 고대 그리스 전역에 세워졌는데 그 도시의 주신의 신전을 짓고 고대 그리스 도시의 방어용으로 요새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로 인해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델로스 동맹을 맺고 그 중심 역할이 아테네로 이동하면서 방어와 종교적 중심 축인 신전을 이곳 아크로폴리스에 건축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주요 유적들에는 니케 신전과 파르테논 신전, 에렉티온 신전 등을 볼 수 있었다.

언덕을 오르며 좌측은 안내양
◆헤로테스 아티쿠스 음악당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올라 오른쪽 아래를 내려다보니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은 정치가이며 대부호였던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죽은 아내 레기나를 기념하여 161년에 아테네 시민에게 기증한 음악당으로 현재의 음악당은 1951년에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은 5000명을 수용하는 관객석이 있고 7~9월에는 그리스 고전극, 콘서트, 오페라 등이 주말부터 열린다고 하였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은 마이크가 없어도 뒤 좌석까지 잘 들린다고 하는 Guide의 말이 거짓말 같았다.
◆니케여신의 신전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지나 불레문을 통과하니 승리의 여신인 니케에게 바쳐진 신전이 나타났다. 승리의 여신인'니케'는 영어의 발음으로는 '나이키(Temple of Athena Nike)'의 신전이다.
아테네인들은 스파르타인들과의 육해전을 비롯한 끊임없이 계속되던 수많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이 곳에서 빌었다고 한다.
규모도 작고 눈에도 잘 띄지는 않을지 모르나 니케의 신전은 건축 양식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한다. 아크로폴리스의 수 많은 건축물 중에서 처음으로 이오니아식으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성에 종종 비유되는 이오니아 양식(Ionic Order)은 기둥이 높고 가늘며 세부에 조각장식이 많아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경쾌하며 유연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닉케 여신전( 도리아식 건축물)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 앞에 와서 먼저 '기둥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라고 Guide가 묻자 모두 다른 답을 할 정도로 기둥이 많았다. 알고 보니 대형 기둥이 46개나 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수 천년 간 웅장한 자태를 보여 주며 아테네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 곳은 전쟁과 지혜의 신이자 아테네의 수호신이기도 한 아테네 여신을 모시던 곳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균형이 잡힌 건축물이며 도리아식 건축물 중 최고봉으로 꼽히는 이 신전은 아크로 폴리스에서 제일 크며 아테네가 폴리스 동맹국 사이에서 제국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때에 델로스 동맹의 금고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B.C 4세기경에 페리클레스가 설계를 하고 조각가 피아디아스가 총 15년이나 걸려 완성한 건축물로 현재 Unesco 고적 1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역사의 흐름과 함께 이 곳은 신전에서 교회로 그 이후에는 사원으로 사용되다 급기야는 터키인들의 화약고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687년에 베네치아인들이 쏘아 올린대포로 인해 이 곳은 파괴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예술적인 업적의 성과물이자 찬란했던 과거의 한때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전 인류의 귀중한 보물이 같은 인간들에 의해 얼마나 짧은 순간에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래바고 언덕에서 본 파르테논 신전


세계문화유산 1호 파르테논신던
◆에렉티온 신전
아크로폴리스 박물관(Acropolis Museum)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내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부를 들어 가 보니 손에 새(공기), 불, 물을 든 바다의 괴물과 헬라클레스와 싸우고 있는 모습, 갓 낳은 송아지를 아테네 여신에게 봉헌물로 드리려고 하는 모습 등을 볼 수 있었다.
대리석으로 된 여자들의 석상, 무용학교, 거인전쟁의 테마, 파르테논 신전의 지붕 꼭대기에 있던 딸과 아버지의 상, 아테네의 여신, 바다의 수호신, 아테네 여신이 내놓은 선물 등 아크로폴리스 언덕 안의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있었다. 3세기 때의 계단과 150년 전의 계단, 근대의 계단을 두루 밟으며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올라갔다가 내려와 아레오바고스언덕으로 갔다.
◆아레오바고스 언덕
언덕을 조금 올라 다시 철 계단을 올라서니 평평한 곳이 있었는데 이곳이 재판정이었다고 하였다. 앞쪽을 바라보니 기원전 5세기 때의 저자거리였다고 하며 복원한 건물은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제일 잘 보존되고 있다는 신전도 보였으며 이곳에서 딸을 겁탈한 청년을 죽인 아레스신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제우스가 머리에서 딸을 낳았다는 제우스이야기도 들으며 잠시 쉬었다가 소크라테스 감옥으로 갔다.

◆소크라테스의 감옥
소크라테스 감옥(Socrates' Prison)은 비탈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니 필로파포스 언덕 필로파포스 기념유적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은 후 억류되어 있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젊은 사람을 타락으로 몰았고, 폴리스 신을 모독했으며, 민주주의를 방해하였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하였다고 하였다.

아이 피곤해
◆필로파포스의 기념유적
필로파포스 언덕(Philopappos Hill)은 아크로폴리스와 시가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언덕에 있었다. 정상에는 AD114~116년 사이에 세워진 로마 집정관이었던 Julius Antiochos Philopappos의 기념유적이 세워져 있었다.
조각상은 필로파포스의 생전의 여러 가지 모습을 조각 해 두었는데 그는 로마 사람이었는데도 이곳의 총독으로 선정을 베풀어 그리스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이곳에 공덕비를 세웠다고 하였다. 언덕을 걸어 내려와 버스를 타고 고대 올림픽 경기장으로 갔다.
◆고대 올림픽 경기장
올림픽 경기장은 신타그마 광장 가까이 있었으며 말굽 모양의 경기장이었다. 이곳은 고대의 판 아테네 대축제가 열렸던 곳으로, BC 331년 판 아테네 대축제의 경기용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당초에는 관객석이 없엇고 로마 시대에 부호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대리석으로 된 관객석을 기증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았따. 1895년 제1회 올림픽 개최에 대비하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그리스의 부호 아베로프가 기부금을 내어 고대경기장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좌석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수용인원은 5만 명이며 선수들이 달리는 트랙은 고대경기장과 마찬가지로 말굽 모양으로 한 바퀴의 거리는 400m인데 현재도 각종 육상경기와 행사에 사용되고 있으며 스타디움 앞 광장에는 경기장 복원에 공이 많았던 아베로프의 상이 서 있었다.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The Greek House Of Parliament)은 근대 그리스의 초대왕 오토의 왕궁이었던 건물로 19세기 신 고전주의 건축물이며 국회의사당 앞에는 무명용사의 비가 있었다. 그 앞쪽으로 신타그마 광장이 길 건너 쪽까지 펼쳐지고 있었다.
신타그마 광장(Sintagma Square)을 헌법광장이라고도 하는데 그리스어로 헌법이라는 의미이며 1843년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것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민주주의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국민의 지배(Democratos)'라는 말이 나왔듯이 그리스의 국회의사당은 민주주의 발상의 상징물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에서 발전한 민주주의는 단순한 직접 민주주의에 그쳤다고 한다.
모든 시민들이 '입법의원'이 되어 직접 참여하였고 여성은 선거권이 없엇으며 노예제도가 존속하고 있었다. 물론 고대사회의 민주제도에서도 평등원칙이 존중되기는 하였으나 보편성에 입각한 만인의 평등사상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또 고대사회에서는 인구가 1만 명 내외의 소규모 도시 국가에서 실시되는 민주주의였으므로 모든 시민이 직접 참여 할 수 있었고 따라서 대의제도 같은 것이 발달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BC 5세기를 전후하여 크게 융성하였으나 BC 5세기 초 민주국가인 아테네가 과두독재 국가인 스파르타와의 전생에서 패배함으로써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퇴색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BC 2세기 중엽에는 독재 국가인 로마에 그리스가 정복당함으로써 시들어가던 민주주의는 그나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그리스의 국회 의사당 건물이 그리 화려하지는 않으나 이러한 민주주의의 발상지로서의 상징성을 갖추고 있어 어렵게 민주주의를 실현한 우리 나라에서는 건물 자체보다는 민주주의를 되새김하는 의미에서 반드시 방문해보아야 하는곳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근위병들이 교대가 끝나자 근위병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일행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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