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손편지를 썼습니다.
늘 글을 써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지만 자칫하면 한 달이 다 가도록 한 편의 글도 쓰지 못하고 보내게 되는 것 모두가 격는 일이지요?
그래서 자신과의 약속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도 참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그럴 때를 위해 속제라는게 있지요.
저는 손 편지 쓰기를 고마운 숙제로 생각합니다.
한 달에 한 편의 글쓰기를 하게 하고
잠시 누군가를 생각하며 내 특기로 재능봉사를 할 수 있는 일이며
잠시 침잠하여 내 생활과 내 글에 관해서도 생각하고
손글씨로 뇌 건강도 지키고
......
여러분 봉사는 늘 진심을 담아하면 수혜자 보다 베푸는 쪽에서 더 많은 걸 배운다지요.
때문에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하지요.
손편지 쓰는 일 모두에게 이런 시간이길 바랍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쓴 2월의 편지 보여드립니다. 이 글을 손글씨로 써서 내일 학습관에 전하겠습니다.
저는 3통 씁니다.
구 회장 신옥철
김승원 어르신께
그동안 잘 계셨어요? 2월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또 편지를 씁니다. 건강은 어떠신가요? 오늘도 즐겁게 지내셨나요? 어제 저는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를 뵈러 갔습니다. 엄마께 따뜻한 옷을 입혀 차에 모시고 여기 저기 놀러 다녔습니다. 엄만 끊임없이 길가에 간판을 읽었습니다. 부동산, 소머리국밥, 땡처리 망했소……. 엄마가 간판 읽기를 멈추면 깜짝 놀라 살펴보곤 했습니다. 도심지를 지나 한적한 들판을 지날 때면 ‘여기가 오가냐?’ 삽다리께냐? 하고 묻곤 하셨습니다. 삽다리는 우리 엄마가 소녀 때 살던 친정 고향입니다. 이제는 가봐야 아무도 없는 그곳이 그리운 것 같았습니다. 전 그런 엄마가 행복한 기억 떠올리라고 엄마한테 들은 옛날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제는 엄마 시집오던 날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습니다. 어르신도 들으시면 흐뭇한 기억 떠오를까요? 저의 엄마는 17살에 나라에서 계집애 공출한다고 해서 신가네 집으로 시집왔다고 했습니다. 연지 곤지 찍고, 대례복을 입고, 혼례를 치렀다고 했지요. 어르신은 말 타고 장가 가셨겠네요? 혹, 멋쟁이어서 코로나 택시 불러 타고 가셨나요? 저는 짓궂게 엄마께 합방은 어떻게 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족두리도 벗도 못하고 밤새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랑 달어먹는다고 동네 총각들이 바싹마른 북어로 발바닥을 쳐서 신랑이었던 우리 아버지 아프다고 고함지르고 화가 단단히 났었다고 했어요. 잔뜩 삐쳐서는 신방에 들어왔는데 족두리를 벗겨 주기는커녕 쳐다두 보지 않고 잠들었대요. 후에 아버지는 부끄러워서 그랬다고 하더군요. 우리 엄마 그렇게 시집오셔서 7남매 낳아 기르시고 시누이 시동생 뒷바라지하여 결혼시키고 시부모, 시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일까지 성심껏 치러 내셨답니다. 그 말씀 들으니 엄마가 참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르신도 일생동안 장한일 많이 이루셨죠? 시국이 옛날과는 많이 달라져서 요즘은 돈 벌어 밥 먹고 사는 일도 매일 집을 비워야하는 시대이지요. 그래서 저의 엄마도 요양원에 계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엄마께 밥 잘 드시고 친구 분들과 시이 좋게 지내시라고 말씀해 드렸습니다. 어르신도 매일 좋은 기억 떠올리며 기쁘고 즐겁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3월에 또 편지 드리겠습니다.
2016년 2월 고잔동에서 신여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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