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 대 문호를 찾아 -앨라배마주 편- 3 위대한 캣츠비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 The Scott & Zelda Fitzgerald
작성자신옥철작성시간18.05.13조회수697 목록 댓글 12018 ㆍ 1ㆍ 12(한국 13)
열엿새째
위대한 캣츠비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
The Scott & Zelda Fitzgerald museum / Shine
하루 종일 이동하고 예약된 숙소로 돌아오면 조금은 지치는 것 같다. 옆에 앉아만 있어도 그러한데 초행길을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운행하는 남군님, 우리 샘은 얼마나 힘드실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지쳐도 지치는 내색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제도 긴 시간 운전에 두 코스 방문으로 샘은 깊이 잠이 들었고 나는 3시에 깨어 조사 내용을 정리했다.
창밖 빗 소리가 요란했다. 두 번째 코스 몬노레빌 앵무새 죽이기의 기념관에 갔을 때는 보슬비가 내렸었다. 그런데 호텔에 들어와 샤워 후 휴식의 시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 비가 새벽 5시가 되도록 계속되어 다음날 운행이 걱정되었다.
5시 30분쯤 목표 분량까지 정리를 마치고 잠시 눈을 붙였다. 깨어나자 아침 7시. 비가 멈추었다. 다행이다. 호텔 조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바로 몽고메리를 향해 출발했다.
처음엔 넓고 긴 직선 도로를 보며 놀라워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 간다. 드라이브 하기에 좋은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닦인 도로에 차가 별로 없고 무한한 자연과의 만남.
11시 오늘의 숙소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어서 입실이 되지 않아 먼저 위대한 캣츠비의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 하우스 (The Scott and Zelda Fitzgerald Museum)를 다녀오기로 했다.-앨라배마 몽고메리 소재-
한 마을로 들어섰다, 젤다 스트리트를 따라 골목골목 들어가 일반 주택들 사이에서 한참을 헤맨 뒤 평범한 집 한 채 앞에서 네비게이션이 멈추었다. 네비게이션이 없었다면 절대 찾지 못했을 것 같은 마을 속에 숨겨진 집 한 채.
네비는 멈추었는데도 목적지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번 역시 집에 어떤 안내 문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집이 뮤지엄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이 표지판을 찾지 못했더라면 이번에도 그냥 돌아왔을 것이다.
넓은 마당에서 유심히 보아야 보이는 안내판에는 화가인 그의 아내 젤다의 기념관이라는 안내가 있다. 다른 작가의 경우와는 다르다. 왜 그의 아내를 이렇게 부각시키는 것이지? 그리고 보니 우리가 이 집을 찾을 때 젤다 스트리트를 따라 왔던 것이 떠오른다. 스콧 스트리트가 아니라 젤다 스트리트였던 것이다. 젤다라는 여인이 특별한 인물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방문 목적은 위대한 켓츠비의 저자 스콧 핏츠제럴드에 관한 연구 때문이다. 스콧의 체취를 만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다.
한 때 스콧과 젤다의 파라다이스였다는 조형물이 있는 이 집 현관문에는 개관과 종료 시간이 적혀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2~3분 후 우리의 인기척에 안에서 아가씨 한 명이 나온다. 우리는 본토인들의 영어를 잘 듣지 못하여 시진으로 담아 한국에 가서 번역 연구, 이해하겠다고 말하며 이번에도 스스로 탐방을 제안했다.
미국의 작가 유적 관리 방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 최대한 변형 없이 유지 관리하여 당시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 이 곳에는 대부분의 자료가 스콧의 사진 기록, 친필 편지, 잡지 게재 내용, 저서 등이었다. 다른 곳처럼 그가 살았을 때의 생필품은 몇 가지 정도. 입장료는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곳을 관리하는 관리소장? 사무장? 격인 젊은 여인에게 학술 자료지와 젤다 그림 카드를 선물 받았다.

ㅡ스콧과 그의 아내 젤다의 옷ㅡ

ㅡ그들이 사용했던 레코드 판과 턴테이블, 그리고 스콧의 그러브ㅡ
ㅡ각 나라 말로 번역된 그의 작품들ㅡ
번역 본 중에 한국 본은 없다. 아쉽다.
ㅡ친필 원고ㅡ
ㅡ교정 원고ㅡ
ㅡ스콧의 카피라이터ㅡ
그가 태어난 곳은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이라고 한다. 앨라배마에는 앨라배마주 대법원 판사의 딸과 만나면서부터였다. 둘은 약혼을 했었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젤다로부터 파혼당하고 몽고메리를 떠났다가 성공작 '낙원의 이쪽 '이후 엄청난 부와 명예를 이루어 남부로 돌아와 젤다와 결혼에 성공한다.
위대한 캣츠비의 저자를 찾아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와 저자의 아내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화가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인물이다.
이 기념관 야드 눈에 잘 띄는 곳에 ‘스콧 앤 젤다 피츠제럴드 뮤지엄’이라고 쓰였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 기념관엔 그녀의 갤러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으며 규모면에서도 스콧의 전시 못지않았다.
젤다는 개성이 강한 여성의로 다양한 분야에 재질을 보였는데 그 중 가장 인정 받은 분야는 미술이었다고 한다.



ㅡ젤다의 작품들ㅡ
그녀의 작품은 구상보다는 추상 쪽에 가까웠다. 화풍은 현대 미술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 만큼 미래 지향적이었다. 그녀는 당대 미국사회 신여성이라 불릴 만큼 특별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아리러니컬 하다. 우리는 미국을 신문화를 전하는 서양국가로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내가 어렸을 적에는 미국에서 온 사람들, 미국여성들은 그 자체 모두 신여성으로 생각했었는데 미국에서도 신여성으로 불리는 타입이 있었다니... ... 생각해 보니 가독교 문화권의 서양에서도 중세의 윤리관 속에 젖어사는 부류는 고리타분한 구세대 였을 것 같기도 하다. 이를 벗어나려하는 자유분방한 부류가 신세대였을 것이다. 그 중 여성이 신여성으로 불릴 정도였다면 그녀의 개방적 삶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그녀는 한 때 스콧의 음주와 무질서한 생활로 신경쇠약에 걸리고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스콧도 아내의 병과 후기에 성공작이 많지 않은 이유, 집안의 대소사 등으로 말년에는 쓸쓸하게 보냈다고 한다.
이들의 경우를 보면 부와 명성은 원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작품은 남아 나와 같은 이국인을 불러들이지 않는가.
그러니 문학예술 창작 도전해 볼만한 가치이지 아니한가.
ㅡ정원에 남아 있는 그녀의 말ㅡ
기록에 의하면 스콧의 아내는 지역 유지의 딸로 미인이었으며 개방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춤도 잘 추었고, 그림도 잘 그렸으며, 사교성도 일반의 여성의 경우를 훨씬 뛰어 넘어 당대 보편적인 여성상을 넘어섰다. 그래서 신문물의 상징인 미국에서 조차 그녀를 신여성이라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파티를 하면 17시간씩 중심에서 이끌어가고, 춤을 추면 지칠때 까지 추었으며, 그림에 몰입하기 시작하면 며칠의 낮과 밤을 꼼짝도 하지않고 완성할 때까지 몰입했다고 한다.
그녀는 한 때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역시 온 열정을 쏟아 그 실력을 인정받아 뉴욕의 한 발레단원으로 선발 되었지만 남편인 스콧의 반대로 앨라배마를 떠나지 못했다. 그때의 심경을 담아 쓴 글이 바로 저 글이며 정원의 뒷켠 작은 텃밭에 세워져 있다. 내용을 살펴 보면 그녀 역시 문학가 이다.
<나는 정원의 낙엽과 마른나뭇가지를 모아 태운다.
정원으로 피어오르는 연기.
이 작은 정원은 온갖 씨앗들의 숨결.
나는 이들을 사랑한다.
그리하여
오페라를 위해 떠나야 하지만 그냥 이곳에 머물기로 한다.>
실재로도 그녀는 소설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스콧은 젤다가 쓴 소설을 달가와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당신이 소설을 쓴다고? 그래, 쓰라구, 하지만 그건 3류 소설밖엔 되지 못할테니 집어 치우는게 좋을 거야.’하고 쓴 소리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내용을 보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콧이 지나치게 과격한 남편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연구가의 글에선 스콧은 젤다의 호화 생활, 낭비벽 때문에 일생 힘들게 돈을 벌어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젤다는 스콧과의 결혼 생활 중 한 직업군인과 열애에 빠져 남편에게 제발 이혼해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스콧이 들어줄리가 없었다. 그는 스콧의 다음의 말로 알 수 있다.
'아내가 아파서 죽는다면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난 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 하는 것은 절대 지켜볼 수 없다.'
서로 개성이 강했던 이 부부는 둘 다 말년에 쓸쓸하게 생을 마친다. 스콧은 별거 중에 타 도시에서 혼자 죽음을 맞고 젤다는 정신병원에 수용 되어 전기 자극 치료를 받기 위해 묶여있는 상태로 병원에 불이나 죽게 된다.
위대한 캣츠비에 대한 감동으로 찾아와 그를 만나고자 했던 여행. 전엔 알지 못했던 많은 사생활에 대해 알고 간다. 열정의 소지자 두 부부의 격정적 삶과 죽음이 그의 문학과 오버랩 된다. 여행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알고 있었던 것을 확인하고, 체험으로 실감하고, 또 새로운 지식을 더 알게 되고……
이 여행. 나에겐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준비했던 코스를 하나하나 찾아가면 집 한 채 덜렁. 그 안에 사진과 텍스트로만 채워 놓은 볼거리들 … 거액의 돈을 들여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이런 곳을 찾는 이는 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이 들수록 이 여행에 흔쾌히 동의하고 매번 실망하면서 마지막 코스까지 고된 운전을 해 준 남편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미안하다는 말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돌아가 이 여행 앞으로 살아가는 데 양분이 되게 하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주에 한 곳, 작은 나라, 작은 도시, 작은 집. 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다가온다.
둘이 남은 생의 방향을 설계해야 할 집.
집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그 소박한 공간이 우리에게 없다면, 지금 우리는 우주 미아가 되는 것이 아닌가……
2ㆍ
그의 작품 세계
위대한 캣츠비에 관하여ㆍㆍㆍ
줄거리
이 소설은 화자인 닉 캐러웨이가 1922년 여름 롱아일랜드와 뉴욕에서 일어난 일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닉은 금융업에 종사하기 위해 서부에서 동부로 온 청년으로 개츠비라는 갑부의 옆집에 살게 된다. 멀지 않은 곳에 닉의 사촌동생 데이지의 부부가 살고 있다. 이사한 얼마 후 닉은 데이지의 집을 방문한다. 데이지의 남편은 뉴욕에 머틀이라는 정부가 있고 데이지는 행복하지 못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닉의 집은 개츠비의 집에 비하면 초라한 임대주택이다. 닉은 대 저택 개츠비의 집에서 매 주 벌어지는 파티와 파티를 준비하는 하인들이 집안으로 들이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품들을 보면서 한 번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개츠비의 기사가 파티 초대장을 가지고 와 호기심을 해소할 기회를 얻는다. 닉은 처음으로 개츠비를 만난다. 닉은 개츠비가 대단한 저택을 소지한 재력가인 만큼 어떤 인물일까 몹시 궁금해 하며 파티 내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를 찾는다. 그런데 뜻 밖에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파티에서 첫 인사로 만나 담소를 나누던 일행 중 한 명이 개츠비인 것을 알고 몹시 놀란다. ‘그런데 이 집의 주인은 언제 나타납니까?’ 이 집 주인이요? 바로 저입니다.‘ 개츠비는 평범하고 조용한 신사였다. 닉은 인상적인 개츠비의 미소에 매료된다.
닉은 이후 몇 차례 더 파티에 초대 되고 개츠비와 친해지게 된다. 또 조던이라는 여성을 알게 되는데 조던은 닉의 육촌 데이지와 친구이다. 그녀는 과거 개츠비와 데이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개츠비는 젊은 시절 군인이었는데 그 때에 데이지와 연인사이 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류 여인 데이지는 돈 많은 톰과 결혼한다. 닉은 개츠비가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데이지의 집이 보이는 곳에 데이지의 집보다 더 호화로운 집을 장만하고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매주 파티를 연다는 사실도 전해 듣는다.
개츠비는 자신의 집은 굉장한 집안이었으며 공부는 귀족들이 수학하는 옥스포드에서 마쳤다고 말한다.
개츠비는 자신을 사랑했지만 부자인 톰과 결혼한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긴 세월을 울프심 일당과 밀주사업을 하여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저택을 장만하고 혹시나 그녀가 와 줄까 친분이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파티를 여는 것이었다.
개츠비는 닉이 데이지와 사촌인 것을 알고 닉과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한다. 닉은 개츠비와 데이지의 만남을 주선하고 개츠비와 데이지는 다시 사랑에 빠진다. 한편 데이지의 남편인 톰은 데이지와 개츠비의 만남을 알아채고 자신은 머틀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며 데이지에게 개츠비의 부의 출처와 학력 등을 폭로한다. 톰에 의하면 게츠비는 귀족의 집안의 후손이 아니며 옥스포드 출신도 아니다. 하루는 이들이 모두 뉴욕으로 나들이를 떠난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톰과 개츠비가 언쟁을 하고 데이지는 남편에게 화가나 개츠비와 먼저 집으로 출발한다. 차를 운전한 것은 데이지였다. 그런데 달리는 차를 향해 한 여인이 달려든다. 데이지는 멈추지 않고 달렸고 옆에 있던 개츠비는 사고가 난 것을 직감한다. 한 참 후 차를 멈춘 데이지는 개츠비의 무릎에 쓸어지고 만다. 차에 뛰어든 여인은 톰의 애인 머틀이었다. 머틀은 톰이 데이지와 개츠비의 관계를 알아채고 개츠비에 대한 질투심으로 자신에게 소홀해 지자 톰이 운전하던 노란 색의 차를 향해 뛰어든 것이었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낸 사고를 자신이 떠맡고자 하며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지만 데이지는 톰의 품으로 돌아가 버린다.
톰은 머틀을 죽게 한 차가 톰의 소유인 것을 알고 있는 머틀의 남편 윌슨이 복수를 하기 위해 찾아오자 개츠비가 운전했다고 고의로 거짓 정보를 준다. 윌슨은 개츠비를 살해하고 자살한다.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데이지를 비롯하여 파티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 중 참여하는 이가 없었다. 함께 동업을 해 온 울프심도 오지 않고 개츠비가 죽고 없다던 친아버지가 나타나 닉과 함께 쓸쓸한 장례식을 치른다. 닉은 개츠비의 장례식을 치른 후 변질된 ‘미국의 꿈’과 동부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조던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서부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후기
개츠비는 자수성가하여 옛사랑을 되찾으려 동부로 왔으나 그를 기다리는 건 데이지가 아니라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동부에서의 새 생활이 가슴 설레며 시작되지만 톰, 개츠비, 데이지, 조던 그리고 닉 모두 뒤틀린 결과를 얻은 개척시대 미국인들일 뿐이다.
개츠비는 왜 위대한 걸까?
오직 한 가지 사랑을 위해,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바치는 그의 생애? 아무튼 그는 지향하는 바가 분명했다. 죽음? 비참한 죽음? 그에게도 그 죽음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을까? 데이지는 돈이 중요한 여자였다. 톰은 질투로 범인을 바꾸어버렸다. 머틀은 돈 많은 남자를 탐했고 질투로 목숨을 잃었다. 머틀의 남편 윌슨은 아내의 복수를 위해 엉뚱한 사람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다. 화자인 닉은 동부에서의 꿈을 접고 상처를 안고 서부로 돌아간다.
한 평론가는 이 작품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는 전형적인 초기 미국의 이상주의자로, 그의 꿈은 경제적 성취와 더불어 숭고한 이상의 실현에 있었다. 즉, 개츠비는 물질적 풍요속에서 또 정신적 빈곤과 도덕덕 타락으로 가득찬 시대 속에서 ‘데이지’ 라는 하나의 이상을 갖고 그것을 실현 시키기 위해 열정을 다하는 이상주의적인 인물인 것이다. 따라서 작가 피츠제럴드는 개츠비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정신적 가치를 무시하는 당대의 사회 풍토를 비판하고자 했으며 동시에 사랑만이 타락한 현실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혜원출판사 1999 / 봉현선의 작품해설에서 -
그렇다면 개츠비는 위대하다.
작품 속으로...
-오직 이 책에 이름을 제공해 준 개츠비 만이 내가 이러한 식으로 반응하지 않은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내가 드러내놓고 경멸해 마지않는 것을 모두 대변하는 개츠비 말이다. 그러나 만약 인간의 개성이라는 게 일련의 성공적인 몸짓이라면 그에게는 뭔가 멋진 구석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마치 일만 오천 킬로미터 밖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감지하는 복잡한 지진계와 연결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삶의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러한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이름으로 위엄을 갖추는 그런 무기력한 감수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며, 다른 어떤 사람한테서 한 번도 발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준비성이었다. 결국 개츠비가 다 옳았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뒤로 물러가고 있는 황홀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갔지만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우리는 내일 더 빨리 달릴 것이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러면 어느 맑은 날 아침······. 그러므로 우리는 흐름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나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