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13 / 레이몬드 카버 -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

작성자신옥철|작성시간20.03.02|조회수703 목록 댓글 0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 줘 / 신옥철

레이몬드 카버(미국) / 도서출판 집사재

 

이 이야기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소설이 될까 싶을 정도로 사소한 것을 소재로 다룬다. 따라서 주제 또한 이게 뭐야. 뭘 어쩌자는 거였지?’하는 의문이 일게 하여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한 마디로 독자에게 배신당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잘 읽힌다. 읽고 있는 동안에 조금만 더 이야기가 진전 되면 뭐가 있지 않을까? 집을 뛰쳐나갔으니 뭔가 큰일을 내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여 쉽게 끝가지 읽어내게 한다. 그리하여 다 읽고 난 후 뭐지?’하는 배신감?

 

그래서 줄거리를 살펴보기로 한다.

주인공 랄프 위먼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러던 중 대학 3학년 때 맥스웰박사를 만나고 하룻밤에 사이에 선생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다시 공부에 매진, 1년 만에 오메가 푸시라는 국제 언론 사교클럽의 회원이 되기도 하고 영문학 클럽의 회원, 첼로 실력을 인정받아 학생 실내악단의 멤버가 되기도 한다. 이 무렵 마리안 로스라는 여학생을 만난다. 둘은 연인이 되었고, 캘리포니아 작은 벌채 마을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결혼에까지 성공한다. 신혼여행은 멕시코 과타말라로 갔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1년 후에는 집을 장만했다.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딸 도로시와 아들 로버트 두 아이가 생겼고 나름 행복했다. 작은 아이 로버트가 태어난 후 마리안은 마을 변두리 초급대학의 강사로 부임했고 랄프는 계속 고등학교에 남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둘은 다복한 가정을 이룬 부부였다. 랄프는 자신은 부인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2년 전 아내가 미첼 앤더슨이라는 남자와 함께 자신을 배신한 적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생각은 최근 들어 점점 더 많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급기야 랄프는 아내를 향해 그 때의 이야기를 묻는다.

그날 밤에 그 친구가 당신에게 키스했지? 나도 다 알아. 그 친구가 당신에게 키스하고 싶어 했으니까. 그렇지?”

2년 전 이야기를 생뚱맞게 끄집어 낸 것이다.

오래전 일이니까 이젠 말해도 돼.”

오래전 일을 왜 갑자기 끄집어내어 말하라는 것일까? 말하라고 한다고 이제 와서 그걸 말해 주는 바보도 있을까? 그런데 있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 주인공의 아내는 남편의 유도 심문에 순순히 그때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이었다. 독자인 나는 이후 발생될 사건을 상상하며 독서에 속도감이 붙었다.

그래요. 그는 몇 차례 내게 키스했어요.”

랄프는 그 말에 답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이야기를 들으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신경질적이 되어 간다는 것을 느끼며 말을 내 뱉는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고 했잖아. 그가 운전을 하는 동안 당신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었을 뿐이라고 했잖아. 어느 게 진짜야? 난 알고 싶어. 그가 당신에게 키스 말고 무엇을 했는지 말이야. 우린 성인이야. 앞으로 그를 만날 일은 없어. 우리가 그 일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이유가 어디 있어?”

아니 이건 뭐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유도 심문이다. 이미 세월이 흘렀고, 사는데 아무 문제없고 더구나 그 사람을 만날 일도 없다는데 구지 그때의 일을 알고 싶다는 것은 무슨 정신 현상인 것일까? 아내는 그의 요구에 또 순순히 따른다. 이해 불가능.

우린 모두 약간씩 취해 있었어요. 그가 나가서 술을 더 사오자고 했고 나는 따라 나섰어요. 그날 밤엔 내가 실수를 했어요. 랄프 정말 미안해요.” 그 실수를 전에는 말하지 않았으면서 왜 지금에 와서 말하는 것일까?

제기랄... 마리안 당신이 그자를 받아들였어.”

그리고 랄프는 집을 나간다. 소설의 상당 분량을 거리를 방황하면서 벌어지는 심리상태를 다룬다. 혼자만의 갈등을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이다. 마치 작가가 이 소설을 쓴 이유가 바로 그 부분에 있다고 느껴질 만큼 집중한다. 랄프는 술집을 거쳐, 놀음판에도 끼어들고, 거리를 방황한다. 그러다가 시비가 붙어 흑인에게 폭행을 당한다. 그렇게 인생을 포기한 것처럼 헤매다가 어이없게도 돌아온 곳은 다시 자신의 집이다. 아내는 자고 있다. 걱정하다 잠이 든 것인지 침대 모서리에 겨우 몸을 걸친 채 잠들어 있는 아내를 훔쳐보며 랄프는 생각한다. ‘이제부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이 나와 피 터진 얼굴을 보고 걱정스럽게 말한다.

아빠 아파?”

‘.... ...’

아빠가 돌아오셨니?”

랄프는 서둘러 욕실로 몸을 숨긴다. 밖에서 아내가 걱정스럽게 부르며 욕실 문을 두드린다.

랄프. 문 좀 열어보셔요. 다쳤다면서요. 랄프 랄프...”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좀 해줘.”

 

이런 이야기이다. 제발 조용히 해 달라고 해서 조용히 준다면 이후엔 어떻게 하겠다고? 결말이 모호하다. 2년 전 있었던 일을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잘 살아가다가 다시 꺼내어 어떤 일이 있어도 다 이해 해 줄 것 같이 유도하여 알아내고는 감당을 못하여 뛰쳐나갔다가 결국 돌아와서 , 이제 어떻게 하지?’ ‘제발 부탁이니 조용히 해줘.’ 뭐 이런 등신 같은 짓을......

 

서두에 언급했듯 이 이야기의 소재는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극히 개인적인 사소한 일이다. 먹고 사는 문제, 품격을 갖춘 도덕적 문제, 지구적 재앙의 문제와는 거리가 먼 주변적이고, 미시적인 누구나 한번 쯤 겪어보았음직한 일을 소설로 다룬다. 그리고 결말은 모호하다. ‘, 이제 어쩌지?’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 읽는 내내 뭐가 있을 것 같아 끝까지 따라갔던 독자는 이 황당함에 뻥 쪄버리고 만다. 묘하게 이야기의 제목이 결말이라는 점에서 살짝 참신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재미? 소설의 가독성을 높이는 재미의 요소 측면에서는 재미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곧 가정 파탄? 아니면 통 큰 포용심? 가족사랑 등을 기대하며 술 술 끝까지 잘 읽었으니까.......

 

비평가들은 이런 작품의 경향을 포스트모던 작품이라고 한다. 김동욱에 의하면 포스트모던 작품의 특징은 주변적인 것(미시적인 것)의 부상, 탈장르화의 확산, 자기반영성 등이다. 그런 면에서 앞서 언급했듯 이 작품은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 구지 들추어 내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갈 수 있을 것을 문제 삼아 자신의 입장만 면구스러졌을 뿐 가정파괴도 또 어떤 대안도 없다. 그런점 이 이야기는 포스트모던 작품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는 달리 구심점도 없고, 축도 없으며, 절대적인 확실성도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니까. 바로 이 작품이 그렇다. 이 외에도 포스트리얼리즘은 열린 시대’, ‘열린 사조의 의미를 포함하기도 하여 수많은 해석이 가능(모호성)하며 정의되기를 거부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작품들이 다원성, 상대성, 비결정성 등의 특징이 있다고 본다면 이 작품 역시 결말 없는 결말로 독자들에게 각자의 방법으로 유추할 수 있게 열어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문학비평가 김욱동은 이 글의 저자 레이몬드 커버를 포스트모던의 한 방법인 미니멀리즘 작가로 분류한다. 그가 정의하는 미니멀리즘은 리얼리즘의 전통에서 간결하면서도 완곡하게 작품을 쓰는 새로운 미국 단편소설의 경향이다. 이 작품 역시 미사여구가 없다. 비유도 없다. 김욱동은 미니멀리즘의 문체와 작품의 예를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최대한 압축하여 최대한 간결하게 전달하는 일본의 하이쿠나 어떤 수식어도 없이 가장 축소된 문장으로 의미를 전하는 전보 문구를 예로 든다. 레이먼드카버의 문장이 바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레이몬드 커버의 이 작품에선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없다. 읽으면 이해되는 용어와 문장으로 표현한다.

김욱동은 레이몬드 커버 외 헤밍웨이의 문체 경향 역시 미니멀리즘에 속한다고 말한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하드보일드 문체로 언더스테이트먼트 수법을 통하여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흔히 빙산 이론으로 알려져 있는 헤밍웨이의 이론에 따르면

만약 한 산문작가가 자신이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다면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생략해 버릴 수 있으며 자기가 충분히 진실 되게 글을 쓰고 있다면 독자들은 마치 작가가 그것을 진술한 것과 마찬가지로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빙산이 움직이는 위엄은 오직 8분의 1에 해당하는 물 위에 떠 있는 것과 같다.’

라는 말이 있다. 미니멀리즘 작품들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경제 원칙을 따른다. 따라서 절제와 응축, 그리고 경제성을 가장 핵심적인 전략으로 삼는다. 그래서 부제의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용 없는, 결말이 없는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도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미니멀리즘적 소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글은 시대사조의 특징에 부합하며 잘 읽힌다는 면에서 완성도를 갖춘 글이다. 뭔가 있을 것 같아 빨려들어 읽는 동안의 재미, 그리고 다 읽고 나서의 허무함, 이어서 발생하는 황당함, 모호함의 효과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레이몬드 카버
 
《대성당》(1980)으로 전미비평가 그룹상,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미국의 소설가. 단순, 적확한 문체로 미 중산층의 불안감을 표현하였다. 영화《숏 컷》은 로버트 앨트먼이 그의 작품들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1938년 5월 25일 오리건주(州)의 클래츠커니(Clatskanie)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재소 직공이었고, 어머니는 웨이트리스였다. 19세 때인 1957년에 16세의 메리언 버크(MaryannBurk)와 결혼한 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집배원과 가스 급유소 직원, 화장실 청소부 등의 일을 하였다.
1959년 캘리포니아주의 패러다이스(Paradise)로 이사한 뒤 대학에서 존 가드너(JohnGardner)의 창작과정을 수강하였으며, 그 후 공부를 계속하여 훔볼트 칼리지와 아이오와대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무렵부터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면서 1970년대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하였으나 악화된 경제 상태와 아내의 불화로 알코올에 빠지게 되었다.
1979년 첫번째 단편집 《제발 조용히 해줘 Willyoupleasebequite,please》를 출판하였다. 그때까지 총 3권의 시집을 발표하였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단편집 출판을 계기로 작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80년부터 시라큐스대학의 교수로 일하면서 틈틈이 작품을 발표하였고, 1983년 세번째 단편집 《대성당 Cathedral》이 전미비평가 그룹상과 퓰리처상 후보로 오르면서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이 무렵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알코올로부터 벗어나고, 불화를 겪었던 아내와의 이혼으로 정신이 안정되면서 작품 세계도 질적으로 향상되었다.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대변하는 듯한 단순하면서도 적확한 문체로 미국 중산층의 불안감을 표현한 그의 작품의 특성은 감독 로버트 앨트먼(RobertAltman)이 그의 단편소설을 여러 편 조합하여 만든 영화 《숏 컷 Shortcuts》에 잘 나타나 있다. 말년에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의 영예를 누리다가 1988년 8월 2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네이버 지식백과]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 (두산백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