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다만 마음만이 중요(重要)하니라

작성자사랑|작성시간24.10.16|조회수13 목록 댓글 0

다만 마음만이 중요(重要)하니라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12.31 조회수:11
댓글10
제목 : 다만 마음만이 중요(重要)하니라 , 아무리 니치렌(日蓮)이 기원(祈願)을 한다 해도 불신(不信)한다면, 젖은 부싯깃을 대고 부시를 치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니, 더욱 면려(勉勵)하여 강성(强盛)하게 신력(信力)을 다 내도록 하시라.

이전(爾前)의 경(經)의 뜻들은 마음에서 만법(萬法)을 생(生)함이라. 비유컨대 마음은 대지(大地)와 같고 초목(草木)은 만법(萬法)과 같다고 하나, 법화경(法華經)은 그렇지 않으니 마음은 즉
대지(大地)·대지(大地)는 즉 초목(草木)이니라. 이전(爾前)의 경(經)들의 뜻은 마음이 맑음은 달과 같으며·마음이 청정(淸淨)함은 꽃과 같다지만, 법화경(法華經)은 그렇지 않으니, 달이야말로 마음이며, 꽃이야말로 마음이라고 하는 법문(法門)이니라 .
이것으로써 아십시오, 백미(白米)는 백미(白米)가 아니라 즉 목숨이니라.

그러므로 수지(受持)하는 법(法)이 제일(第一)이라면 수지(受持)한 사람도 따라서 제일(第一)이 되느니라.

목숨은 실(實)로 일념(一念)에 지나지 않으므로 부처는 일념수희(一念隨喜)의 공덕(功德)이라고 설(說)하셨느니라.

《 본문 어서말씀들 》

다만 마음만이 중요(重要)하니라 , 아무리 니치렌(日蓮)이 기원(祈願)을 한다 해도 불신(不信)한다면, 젖은 부싯깃을 대고 부시를 치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니, 더욱 면려(勉勵)하여 강성(强盛)하게 신력(信力)을 다 내도록 하시라. 지난 번의 존명(存命)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고 생각하시라, 어떠한 병법(兵法)보다도 법화경(法華經)의 병법(兵法)을 쓰실지어다. 「제여원적(諸餘怨敵)·개실최멸(皆悉摧滅)」의 금언(金言)은 헛되지 않으리라. 병법(兵法) 검형(劍形)의 대사(大事)도 이 묘법(妙法)으로부터 나왔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취(取)하시라, 결코 겁이 많아서는 불가능(不可能)하니라. 공공근언(恐恐謹言).
시조깅고전답서 四條金五殿答書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1192~3쪽 별칭 : 법화경병법사(法華經兵法事), 검형서(劍形書)

묘락대사(妙樂大師)는 법화경(法華經)의 제(第)六의 권(卷)의 「일체세간(一切世間)의 치생산업(治生産業)은 모두 실상(實相)과 위배(違背)하지 않느니라」고 하는 경문(經文)과 대조해서 뜻을 나타내시기를, 그들 이경(二經)은 심심(深心)한 경(經)들이지만, 그 경(經)들은 아직 심(心)이 깊지 못하여 법화경(法華經)에 미치지 못하므로 세간(世間)의 법(法)을 불법(佛法)에 빗대어서 알게 했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은 그렇지 않으며 바로 세간(世間)의 법(法)이 불법(佛法)의 전체(全體)라고 석(釋)해져 있느니라.
이전(爾前)의 경(經)의 뜻들은 마음에서 만법(萬法)을 생(生)함이라. 비유컨대 마음은 대지(大地)와 같고 초목(草木)은 만법(萬法)과 같다고 하나, 법화경(法華經)은 그렇지 않으니 마음은 즉 대지(大地)·대지(大地)는 즉 초목(草木)이니라. 이전(爾前)의 경(經)들의 뜻은 마음이 맑음은 달과 같으며·마음이 청정(淸淨)함은 꽃과 같다지만, 법화경(法華經)은 그렇지 않으니, 달이야말로 마음이며, 꽃이야말로 마음이라고 하는 법문(法門)이니라 .
이것으로써 아십시오, 백미(白米)는 백미(白米)가 아니라 즉 목숨이니라.
미식(美食)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여·산림(山林)에 들어왔소이다. 그러나 범부(凡夫)이기 때문에 추위도 견디기 어렵고·열(熱)도 막기 어렵구려, 식량(食糧)이 부족하여 표(表)0목(目)의 만리(萬里)의 일식(一食)·견디기 어렵고·사자공(思子孔)의 십순(十旬)·구반(九飯)도 견딜 수 없어서, 독경(讀經)소리도 끊어지려 하니·관심(觀心)의 마음도 소홀(疏忽)하니라.
때마침의 방문(訪問)은 예삿일이 아니로다. 교주석존(敎主釋尊)이 권(勸)하셨는가, 아니면 과거(過去) 숙습(宿習)이 나타나셨는가. 샅샅이는 이루 지상(紙上)에 다하기 어렵소이다, 공공근언(恐恐謹言).
백미일표어서(白米一俵御書) 미노부에서 1597쪽 별칭 : 事理供養御書

그러므로 수지(受持)하는 법(法)이 제일(第一)이라면 수지(受持)한 사람도 따라서 제일(第一)이 되느니라. 그렇다면 즉 그 사람을 헐뜯음은 그 법(法)을 헐뜯는 것이며 그 자식(子息)을 천시(賤視)함은 즉(卽) 그 부모(父母)를 천시(賤視)하는 것이로다. 이로써 알았노라, 당세(當世)의 사람은 말과 마음이 모두 같지 않아서 효경(孝經)을 가지고 그의 부모(父母)를 때리는 것과 같으니 어찌 명(冥)의 조람(照覽)이 부끄럽지 않을손가, 지옥(地獄)의 고(苦)를 두려워하고 또 삼가할지어다. 상근(上根)에 대해서 비하(卑下)하지 말 것이며 하근(下根)을 버리지 않음은 본회(本懷)이니라, 하근(下根)을 상대해서도 교만(憍慢)하지 말지어다, 상근(上根)도 빠지는 일이 있으니 이는 마음을 다하지 않는 고(故)로. 대개 향리(鄕里)를 그리워하지만 길도 끊기고 연(緣)도 없으므로 통하는 마음도 소홀해지며, 그 사람이 그립지만 믿을 수 없고 맺지 못한 경우에는 기다리는 마음도 등한(等閑)해지듯이, 저 월경운각(月卿雲閣)보다 뛰어난 영산정토(靈山淨土)에 가기 쉬움에도 아직 가지 않고, 아즉시부(我卽是父)의 유연(柔輭)하신 모습을 우러러 뵈올 수 있음에도 아직도 뵈옵지 못했으니, 이는 참으로 소맷자락을 적시고 가슴을 태우는 한탄(恨歎)이 아닐소냐. 저물어 가는 하늘의 구름빛·지새는 달빛마저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듯함이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후세(後世)를 마음에 두고 꽃피는 봄·눈내리는 아침에도 이것을 생각하고 바람이 소란하고 뭉게구름 떠도는 저녁에도 잠시도 잊지 말지어다. 나오는 숨은 들어가는 숨을 기다리지 않으니 어떠한 시절(時節)인들 매자작시념(每自作是念)의 비원(悲願)을 잊을 것이며, 어느 월일(月日)인들 무일불성불(無一不成佛)의 어경(御經)을 수지(受持)하지 않으리요. 어제가 오늘이 되고 거년(去年)이 금년(今年)이 되는 것도 이는 기(期)하는 바의 여명(餘命)이 아니거늘, 모두 지나간 세월(歲月)을 세어 나이의 쌓임을 안다고 해도 이제 장래에 있어서 하루 한시도 그 누가 명(命)의 수(數)에 들소냐. 임종(臨終)은 이미 지금(只今)에 있다고 알면서 아만편집(我慢偏執)·명문이양(名聞利養)에 집착(執着)하여 묘법(妙法)을 봉창(奉唱)하지 않는 것은 그 심지(心志)가 전혀 보잘 것 없느니라. 그렇다면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法)이라 하지만 이 사람이 어찌하여 불도(佛道)를 성취할 수 있을 손가. 정(情) 없는 사람의 옷소매에 공연히 달이 깃들 손가, 또 목숨은 실(實)로 일념(一念)에 지나지 않으므로 부처는 일념수희(一念隨喜)의 공덕(功德)이라고 설(說)하셨느니라.
지묘법화문답초(持妙法華問答抄) 가마쿠라에서 42세에 술작 466쪽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