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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71) - 영화로 상영되기 까지

작성자이동민|작성시간26.06.11|조회수26 목록 댓글 0

  영화 상영하기 까지

 영화 제작의 마지막 단계는 상영이다. 촬영에서 상영까지의 모든 과정이 관람객을 즐겁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기까지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고정이 간단치 앟다. 많은 요소들이 관여하고 있다.

 우리가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 영사기 돌리는 속도를 생각해보자.

 영사기사가 영사기를 돌리는 속도는 일반적으로 촬영 속도보다 빠른 것이 일반적이다. 어느 감독이 터트린 불만을 보자. 왕실 무도실에서 우아하게 사교춤을 추는 장면을 영사기 기사가 너무 빨리 돌리므로 왕과 왕비의 춤이 광란의 춤으로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사실에서 영사기 속도룰 감독했다고 했다. 하찮게 생각한 영사기 속도 마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영화 만들기는 대상물을 단순히 사진으로 옮기는 작업과는 다르다. 촬영에는 여러가지 기법을 동원한다. 촬영기법은 영사기의 릴을 감는 속도처럼 이미지 만들기를 위해서 신경을 쓰듯이 한다. 촬영 기법을 세세한 설명 없이 이름만 나열해 보자.

 몽타주 기법은 실제의 사건과 관련이 없는 사진을 가져와서 배열하거나 배경으로 사용함으로 영화에 영혼이 깃들도록 하는 기법이다. 편집은 촬영한 사진들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를 다룬다. 숏을 어떻게 연결하여야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도 고심한다.

 초기 영화시대애 재작되는 많은 편수가 뉴스나 다큐멘터리 였다. 현실의 사람이 자기의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시잔으로 찍는다.. 문제는 인물이나 사건이 관람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내용이어야 했다. 영화가 픽션이냐, 난픽션이냐를 구분하는 일은 어떤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임의적이었다. 다큐멘터리도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각색하고, 편집하여 흥미로운 내러티브로 구성하는 것은 일번적인 영화 제작과 같기 때문이다.

ㅠ예로서 멕시코 독립 전쟁의 영웅 판초 비아는 대중들에게 대단히 인기있는 인물이었다. 다큐로 찍었다. 그와 계악할 때 이미지와 허구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렇다면 일반 영화찍기와 다른 점이 없지 않는가. 초기의 다큐는 그랬다. 다큐를 이런 식으로 제작하면 허구의 영화와 다른 점이 없어진다. 당시의 관객도 다큐나 영화를 보면서 어떤 부분은 허구로, 어떤 부분은 사실로 받아들였다.

 

 다큐멘터리라는 말이 나타난 것은 1920년이었다. 논픽션의 현실의 사건을 재현하는 작업을 말하였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도 이야기 구조로 만들었고, 언제나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만들었다. 그러나 학문적 검증 장치나, 의문을 표시하고, 각주를 다는 학문적 택스트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관중들도 학문적인 내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는 어떤 견해를 대중화 하려는 목적으로 제작하였다.

어느 기관이 학문적 연구물을, 특히 동물을 연구한 내용을 다큐로 짝으면서도 적용하다보니 내용이 굴절되기도 하였다. 다큐도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큐의 시작은 19세기 중반에 대중 과학 장르들이 인기가 있을 때도 있었다.(영화가 나오기 이전에 출판물로) 대개는 탐험가. 과학자, 고고학자가 삽화를 곁들여서 들려주는 이야기의 출판물이 잘 팔렸다. 생생한 이야기 형태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탄생하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끌어들였다. 대중심리가 이런 이야기에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ㅠ역사적 사건은 실재의 현장이 아니고 거의가 재현한 것이다. 관람자는 재현을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멀지 않아서 뉴스릴이나 다큐물은 영화관에서 축소 상영하였다. 장편 영화가 나타나면서 부속 상영물의 길이가 길다는 것은 부담이 되었다. 본 영화가 2-3시간으로 길어졌기 ’때문에 보조 상영물의 시간은 줄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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