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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민 수필 - 自動門

작성자이동민|작성시간26.06.13|조회수24 목록 댓글 0

     自動門

 나의 저녁 산책길은 범어 로타리를 거쳐서 김광석 거리에 있는 집사람의 서실까지이다. 범어 로타리는 너무 넓어서인지 지하철 회사에서 지하도를 만들어 두었다. 나는 지하도를 이용한다. 지하도로 가려면 에스칼레이드를 타고 내려가서 지하도 입구에 있는 수동문을 지나간다. 손으로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선다.

 산책시간은 퇴근시간과 겹칠 때가 많아서 사람들이 붐빈다. 수동문을 열 때 면 내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이 유리에 비친다. 내 뒤의 사람이 문을 잡아주리라 기대하면서 문을 잡고 잠시 서서 기다린다. 이때 나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경험하였다.

 

 예전에 수영장에 다닐 때도 입구에 수동문이 있었다. 뒤에 따라오는 사람의 기척이 있으면 문을 열고는 손으로 잡고 잠시 기다린다. 뒤를 따라 오는 사람이 문을 받아서 잡아주리라는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문을 잡고 있으면 뒤를 따라오는 사람이 문을 받아서 잡아주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유치원 쯤의, 초등학교 저학년 쯤의 어린아이들은 문을 잡아주기보다는 열린 문으로 몸만 쏙 빠져나가고 했다. 어린아이들이라선지, 어린아이는 아직까지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몸만 쏙 빠져나가서 쪼르르 달려가는 모습이 오히려 귀엽기까지 했다. 어린것이니 ---, 하는 마음의 너그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몸만 쏙 빠져나가는 아이의 년령이 자꾸 올라갔다.

몸피가 거의 성년에 가까운 청소년 아이들이 몸만 쏙 빠져나갈 때는 어린 아이처럼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년령이 자꾸자꾸 올라가는 것을 경험하였고, 내 마음도 편치 않았음을 느꼈지만, 코로나가 덮치자 수영을 그만 두었으므로 더 이상의 경험을 하지 않았다.

 수영장에서 수동문을 열어 줄 때와 지금을 따진다면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나는 그런 세월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나는 여전히 길들어져 있는 나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나의 시선이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때의 시간이 나에게는 흐르지 않고 정지되어서 머문다는 뜻이다.

 

 나는 범어 로타리의 지하도를 들어가면서도 여전히 수동문을 열고, 뒤 사람이 따라오면 잡고 기다렸다.

 그러나 내가 문을 잡고 있으면 뒤 따라오는 사람이 문을 잡아주지 않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졌다. 내 기억으로는 수영장의 입구문에서는 청년으로 보이는 사람까지였는데, 이제는 아저씨로 보이는 사람도 몸만 쏙 빠져 나간다. 나는 멋쩍어서 사람이 쏙 빠져나가버리면 슬며시 문을 놓았다. 어린아이들이였는데, 이제는 중년의 아저씨나 아주머니까지의 년령군으로 올라갔다. 거참. 절로 탄식이 나온다.

 생각해보니 우리 년배가 낳아서 키웠던 아이들이 바로 저 년령들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나이가 올라가자 몸만 쏙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우리아이와 함께 나이를 먹고 있었다. 바로 우리 아이들의 년령과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어떤 이유였는지 간에 우리가 아이를 그렇게 키워놓고, 그 아이를 비난하다니, 욕은 바로 우리 년령의 노인들이 얻어먹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최근에 와서 나타난 변화라고 할까, 내가 느낀 것이라고 할까. 아저씨 뻘 년령의 사람이 몸만 쏙 빠져나가는데 비하여 젊은 청년이 오히려 문을 잡아주는 경우가 많이진 듯하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의아하였다. 이것은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가는 것인데, 무언가 역주행하는 느낌이다. 좋은 일이면서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세상이 바뀌는 것을 그만큼 부정적으로 바라보아 왔기 때문에 좋은 방향의 변화를 오히려 이상하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이상하게 느끼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어느날, 범어 로타리의 지하도 수동문이 자동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는 뒤 따라 오느 사람이 문을 잡아주느냐, 마느냐를 두고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지하철 공사에서 정말 잘 한 일이다. ‘자동문’은 주변 사람과의 인연을 끊어버렸다. 그걸 두고 나는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자동문을 달아주면서 그런 것 까지 생각했을까.

 스르륵 열리는 문을 통과하면서 마음의 편안함을 즐기다가, 뒷 사람을 위해서 문을 잡아준는 일이 없으니, 문득 내가 혼자가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연이란 내가 남에게 신경을 쓰는 만큼, 타인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므로 맺어진다. 사람이 사는 일이란 사람과 사람이 얽키고 설키는 일인데. 그런 일이 없어져버렸으니, 삶의 의미를 어디서, 또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자동(自動)은 우리가 삶에서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편리함을 얻는 대신에 내가 잃는 것이 무엇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란 인연을 맺는 일이다. 인연에는 기쁨, 슬픔, 미움과 사랑 감정까지 모두를 아우른다. 그런 감정들이 사라진 것이 우리의 삶이라면 바람이 부는대로 흔들흔들 살아가는 식물의 삶과 무엇이 다른가. 사람 사는 일이란 서로 부딪치고, 툭탁거리면서 온갖 감정들을 만들어가는, 인연 만들기가 아닌가.

 내가 사는 일이 식물처럼 되어가는 것을 두고, 편리하다면서 마냥 좋아만 해야 할까.

                2025. 6. 30 문학춘추 여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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