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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73) - 유럽 영화, 미국 영화

작성자이동민|작성시간26.06.16|조회수33 목록 댓글 0

    유럽 영화와 미국 영화

 1차 대전이 일어날 때까지는 유럽 영화가 미국을 지배했다.

 1907년에 미국 극장에 배급된 영화는 약 1200여 편이었고, 그 중에 미국 영화는 400편 정도였다. 1908년에는 미국에서 10개의 영화사가 카르텔을 형성하여 대형 영화사로 발돋음 했다. 이로서 파리의 파테 영화사는 미국 진출이 어려워졌다. 1919년에는 미국에서 상영된 대부분의 영화가 미국에서 만든 영화였다.

 미국 영화사는 짧은 시간 안에 규모가 엄청 커졌다. 이들 미국 영화사가 영화를 수출하면서 전 세계의 영화계를 지배하게 된다. 미국도 초기에는 소규모의 영화사들이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대형 영화사들이 나타나서 장편 영화를 만들면서 소규모 영화사는 몰락한다. 처음의 장편 영화는 단편 영화 여러 편을 모아-이어서 장편을 만들었다.

 19세기의 문화 지형도를 보면 영국과 프랑스는 출판 산업(소설 출간),과 연극을 지배햇다. 이탈리아는 오페라업계를 장악해했다. 20세기로 접어들며너 영화 붐이 일어났다. 영화는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영화산업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 1차 대전이 이 일에 큰 역할을 했다. 1차 대전이 끝나자 미국 영화는 유럽을 완전히 장악했다.

 미국 영화사가 헐리웃으로 옮겨간 1910년 대의 헐리웃 인구는 5000이었다. 1920년애는 3만 6천으로 늘어났다. 이때의 유럶애서 미국 영화, 그린피스가 만든 ‘국가의 탄생’은 인기를 몰아쳤다. 유럽은 자국의 영화를 방어하기 위해서 동맹을 맺고 보호 관세를 적용하였다. 영화 생산은 중앙집중화를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공략을 막아내지 못하였다.(상세한 내용은 샹력헙나더,)

 

 또 하나의 차이라면 스타는 유럽에서는 영화의 하나의 부속품애 지나지 않자마는 미국에서는 스타를 만들어냈다. 스타가 영화의 내용보다 앞섰다. 스타가 나오는 영화는 영화를 보러 가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나오기 때문에 극장에 간다는 등의 일로 만들었다.

 영화의 보급제도도 파리의 파테사는 수직적이었다. 영화사가 극장에 배분했다. 그러나 미국은 각 극장이 영화를 선택하도록 했다. 영화사는 자기들이 만든 영화가 선택받을 수 있도록 영화를 경쟁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영화는 점점 더 대중이 좋아하는 쪽으로 만들었다.

 유럽은 연기력이 뛰어나는 배우는 많았으나 스타가 없었지만 미국은 배우는 적어도 만들어진 스타는 많았다. 스타를 만들어서 영화를 팔아먹는 마케팅에 사용하였다. 스타는 영화사로부터 사생활까지도 간섭을 받았다고 한다.

 유럽의 영화인은 더 많은 보수를 주는 미국ㅇ로 옮겨갔다. 정치적인 이유로 망망한 사람도 있었다. 공장이 쉴 새 없이 돌아가자 유럽으로부터 수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노동자 계층을 고객으로 하는 대중문화가 꽃 필 여건을 잘 갖추었다. 미국 영화를 이들을 고객을 하여 강렬한 감정, 폭발, 고문, 싸움, 축격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탈출에 성공하는 등을 찍으면서 미국의 방식을 고안해냇다.

 미국인은 유럽 방식의 영화를 미국 방식으로 재활용하여 찍었다.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파리의 영화인 멜라에스도 미국식 영화를 텍사스에서 찍었다. 미국 영화라는 형식을 달게되는영화를 보면 돈벌이를 위하여 머리를 많이 굴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조건을 따져보면 미국은 대중문화가 성장하기 좋은 풍토를 갖추고 있다.

 시간이 자니면서 영화 제작자들은 미국인이 어떤 플룻을 좋아하는 지를 알게 되고, 그것에 맞추어서 일정한 플룻으로 표준화 했다. 서부극을 예로 들어보년 영화의 줄거리가 거의 어슷비슷하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고급 장르라고 하는 예술의 분야기 남아 있었다. 재미 있는 사례를 들면 재봉틀은 미국에서 발명했지만 패션이라는 고급 문화는 파리에서 꽃이 핀다. 유럽에서는 우리가 흔히 고급 문화라고 부르는 장르들이 남아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 이다. 그래도 유럽 쪽에는 미국 영화와는 다른 영화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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