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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야기들

복은 무량

작성자신증信證 (Jongbok Yi)|작성시간19.06.21|조회수831 목록 댓글 11

아누룻다, 혹은 아나율은 부처님의 십대 제자 가운데 천안통을 얻으신 분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수행 중에 졸다가 혼나서 눈을 감지 않겠다는 맹세를 세운 후 눈을 감지 않은 결과로 천안통은 얻었지만 육신의 눈은 멀었습니다. 다음은 빨리 아함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한문본 증일 아함경에 나오는 제가 좋아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나율이 낡은 옷을 깁고 있을 때였다. 이 때 육안은 허물어지고 티 없이 맑은 천안을 얻었다.

  그 때 아나율은 보통의 방식대로 옷을 기우려 하였으나 실을 바늘구멍에 꿸 수가 없었다. 이 때 아나율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세상에서 도를 얻은 나한은 나를 위해 바늘을 꿰어다오'. 

  세존께서는 깨끗한 천이(天耳)로 '이 세상에서 도를 얻은 아라한은 나를 위해 바늘을 꿰어다오'라고 하는 이 소리를 들으셨다. 세존께서는 아나율이 있는 곳으로 가 말씀하셨다.

  "너는 그 바늘을 가져 오라, 내가 꿰어 주리라."

  아나율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까 제가 말한 것은 세상에서 복을 구하려는 사람은 저를 위해 바늘을 꿰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복을 구하는 사람으로 나보다 더한 사람은 없다. 여래는 여섯 가지 법에 있어서 만족할 줄을 모른다.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보시요, 둘째는 교훈이며, 셋째는 인욕이요, 넷째는 법다운 설명과 이치에 맞는 설명이며, 다섯째는 중생을 보호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는 것이다. 아나율아, 이것이 이른바 '여래는 이 여섯 가지 법에 있어서 만족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니라.

  아나율은 아뢰었다.

  "여래의 몸은 진실한 법의 몸이신데 다시 무슨 법을 구하려 하십니까? 여래께서는 이미 생사의 바다를 건너고 또 애착을 벗어나셨는데, 지금 또 애써 복의 도를 구하시는군요."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나율야. 네 말과 같다. 여래도 이 여섯 가지 법에 있어서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안다. 만일 중생들이 죄악의 근본인 몸·입·뜻의 행을 안다면 끝내 세 갈래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저 중생들은 죄악의 근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세 갈래 나쁜 곳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는 곧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힘 중에

  천상과 인간에서 노닐게 하는 것

  복의 힘이 가장 훌륭하나니

  그 복으로 불도도 성취하네.

  

  "그러므로 아나율야, 방편을 구해 이 여섯 가지 법을 얻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 때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증일아함경 제31권 38 역품)


큰스님을 만나기 전, 지혜를 얻겠다며 복을 무시했던 제가 이 대목을 읽은 것이 아마 90년 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는 부처님께서 아직도 갈구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기복을 무시하던 무지한 사람이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것은 마음에 담아두고 계속 궁리하는 것이 제 버릇인데 큰스님을 만나고도 한참 지난 2001년 겨울이 되어서 버지니아대학교 석박과정에 합격하고 등록금 통지서를 받고나서야 비로소 이해가 갔던 대목입니다. 복은 지어도 지어도 끝이 없고, 오늘 큰스님께서 법문에서 말씀하시듯, 복을 짓지 않으면 윤회를 끊을 수도, 보리심을 성취해서 보살의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 

공부를 하려면 환경이 좋아야 하는데, 자신의 건강, 튼실한 재정, 불법의 모두라고 할 수 있는 좋은 친구들,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장소, 등 이 모든 것이 복의 현현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듯 복은 구해도 구해도 끝이 없기 때문에 무량합니다. 밥이나 빵은 나누면 적어지지만, 복은 나눈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복이 현실에 구현되는 방식에는 지구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사회의 한계에 따라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지은 복은 반드시 개인의 업과 공동체의 업의 방식으로 언젠가 반드시 구현됩니다. 그러니 자기가 짓는 복을 나누면 혹시라도 자기 몫이 줄어들까 걱정하지 마시고 나누시기 바랍니다. 나누시면 보시의 공덕이 더 붙으니 복이 가중될 것입니다. 

누군가 욕심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던데 (안심정사 법우님들 빼고), 거짓말이니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경전에서 말하는 욕심은 우리가 십대 소원표에 쓰는 바라는 바가 아니라 삼독의 하나인 근본 무지로 인한 근본 욕망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이 없다면 우리는 이미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러니 남을 이롭게 하면서 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큰스님 가르침대로 마음껏 바라시기 바랍니다. 십대소원표를 쓰고 이루고, 다시 쓰고 이루고를 평생 반복하시면 아주 행복한 삶을 사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서울법당에서 재수불공을 드리는 법우님들을 보며 든 생각입니다. 법우님들은 정말 복이 많으십니다. 

저는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삼일간 학교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7월 초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국제학회에서 발표할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논문 쓰는 것이 여기에 글쓰는 것만큼만 술술 나오면 참 좋겠습니다. ㅠㅠ 

모쪼록 지치지 마시고 가행정진하시어 원하시는 바를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 참고: 보통은 빨리어 아함경이 더 오래됐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문본 아함경의 기록 연도가 사실상 빨리어본보다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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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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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我정말잘돼보리심일돈왕땅인入 | 작성시간 19.06.22 신증스님의
    귀중한 가르침 살아가는데
    큰 지표라 생각드네요.
    우리가 욕심내는거
    건강.재정.불법 그건욕심이 아닌 거. 300퍼 응원합니다.
    단지 살아가는 데 도구라 생각합니다.
    최종목표는 보리심과열반의경지,
    피안의경지. 그길을 가기위한 도구들...
    가는 동안
    안락하게 가기위해서 필수품이지요...
    주말아침
    오랜만 신증스님의 법문 깊이 새기며,
    10대소원표 성취하기 과제를
    하려합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잇다는거
    늘 대학4학년인 딸아이에게도 설한답니다.
    논문이 술술 될수잇도록
    저희 아이도 논문 땜시 머리가 쥐가~~~ㅋㅋ
    이과아이라 함수에서부터 듣도보도못한용어들.위성안테나논문 .신기하기도 하고...
    논문최우수상수여하시길ㅇ
  • 작성자지복화~ 정말잘돼^^ | 작성시간 19.06.22 신증스님의 가르침 정말 감사합니다
    복을 짓고 복을 나누며 살아가는 불자가 되겠습니다
    논문도 잘쓰셔서 더욱 훌륭한 가르침 주시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미타불
  • 작성자묘법심.정말잘돼 무량대복 받으세요 | 작성시간 19.06.22 합장올립니다~~
    끝없이 복을 갈구하시는 부처님~!
    알량한 복전에 복전조금 넣고 유세떠는 중생에 비유될수 없지요~
    죽기직전 부처님과 불보살님께 약속 한것 잊지 않으려 순간순간 부닥치는 번뇌들을 잘 이겨내고 있답니다.
    어제 큰스님께서 . 힘들게 돌고 돌아 안심 땅에 발을 디뎟는데~~~뭣 뭣 때문에~~~ 돌아가는 법우들이 안타깝다고 말씀 하셧을때. 꼭 제게 하시는 말씀인듯. 다시 맘잡고 초심으로 항상 하려 한답니다.
    누구때문은 이제 필요치 않은. 오직 나을 위해. 부처님법. 나을위한 참 나을 찾기위한 생각만 하렵니다.. 멋진논문 으로 최상의 박사님 되십시요...()()().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희망자비 | 작성시간 19.06.22 소중한 가르침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기 몫이 줄어들까 걱정하지 말고 복을 나누고, 보시의 공덕이 결국 더욱 큰 복으로 온다는 말씀 새겨듣겠습니다.
    아미타불 ()()()
  • 작성자꽃도야지 | 작성시간 19.06.23 머나먼 곳에서 올려 주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두가 함께 무량대복 받았으면 싶고, 논문도 잘 쓰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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