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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야기들

새 번역서가 나왔습니다. <<달라이 라마, 화를 말하다>>

작성자신증信證|작성시간20.06.13|조회수475 목록 댓글 7

제가 번역한 책이 나왔습니다. 큰스님께서 좋아하시는 <<입보살행론>>의 6장 <인욕품>의 게송을 제가 직접 티베트어와 산스크리트어, 한문본과 기존의 영역본 및 여러 티베트 전통의 티베트어 주석서를 참고해서 번역했고, 달라이 라마께서 주석을 다셨습니다. 그리고, 영문본에는 실려있지 않은 <인욕품> 전문 게송을 출판사 편집장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부록으로 실었습니다. 읽으시면 일상 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464982

달라이 라마, 화를 말하다


역자후기

처음 이 책의 번역을 제안받았을 때, 이미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편집장님께서 분량이 얼마 안 되니 금방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내용은 읽어 보지도 않은 채 하겠다고 했었다. 그러고 나서 책을 열어 보니, 샨띠데바의 《입보살행론》◆ 제6장 인욕품이었다. 후회막급이었지만 이미 하겠다고 한 것이라 어쩔 수 없기도 했고, 게다가 자세하게 읽고 번역하며 배워 보고 싶다는 사적인 욕심이 겹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후회를 한 것은 분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게송을 다시 번역하는 것이 힘들어서였다. 티베트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면 삼중번역이어서 원문의 의도를 완전히 잃어버린 채로 번역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게송을 모두 티베트어와 산스크리트어에서 다시 번역해야했고, 샨띠데바의 주석과 티베트의 주석들을 몇 개 참고했다.


흥미로운 것은, 영어 번역마다 서로 미묘한 부분에서 의견이 다르고, 샨띠데바의 설명이 없는 부분은 티베트 스님들의 주석서마다, 그리고 속해 있는 전통에 따라서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점은 물론 《입보살행론》 제9장 지혜품에 이르면 전통 간의 미세하지만 극명한 해석의 차이가 그 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번역을 할 때 제일 쉬운 것은 한문으로 된 전문용어를 가져다 쓰는 것인데, 나는 늘 가능한 한 한문 용어를 쓰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한문 용어들은 뜻이 함축적이고, 우리의 경우 소위 선불교에서 쓰던 용어를 빌려 쓸 때가 있어서 어떤 면에서 다른 불교의 시스템을 빌려다가 번역하는 일종의 격의불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가끔은 하루에 한 게송을 번역하느라 다른 일들을 못 할 때도 있었다. 한글본은 불광출판사의 《달라이라마의 입보리행론 강의》와 함께, 박영빈 님께서 고맙게도 삼학사원의 하람빠 게쉐 뗸진 남카 스님께서 번역하신 것을 보내 주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1993년에 “화의 치유(Healing Anger)”로 출판된 것을 다시 불교의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시리즈로 재출간한 것이다. 오래된 책이면 시대에 뒤떨어졌다든가 하는 느낌이 든다. 나 역시 책을 펼치기 전에는 좀 오래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문득 2003년에 지도교수님이신 제프리 홉킨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몇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1980년도 중반에 직접 달라이 라마께 받은 가르침을 녹음한 테이프를 전산화해 달라고 내게 부탁하셨다. 그러고는 몇 번 “달라이 라마께서 젊으실 때 가르치신 것이라 훨씬 생생하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책을 번역하면서 보니 93년도에 하신 법문이지만 지금도 그 가르침에 틀림이 하나도 없으며 시대에 뒤처진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더불어 그때는 달라이 라마께서 지금보다 더 시간이 있으셨기 때문에 가르침에 보다 많은 시간을 쏟으실 수 있으셨다는 점에서도 이 책과 이 책이 속한 시리즈에 큰 장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책은 인욕품의 중요한 게송을 골라 설명하시는 것이 아니라 134개 게송들을 찬찬히 짚어 가면서 설명하셨다는 데도 큰 장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에는 《입보리행론》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는데, 달라이 라마께서 설명하시듯 이 논서는 보살의 수행에 입문하는 안내서로서 《입보살행론》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입보살행론》은 짠드라끼르띠의 《입중론》과 유사하게 보살의 수행법인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그리고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일반적으로 순서대로 닦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며, 가장 쉽게 수행의 진보를 이루는 방법이다. 즉, 보시바라밀을 완성해서 복덕이 쌓이고, 이를 통해 아름다운 용모, 좋은 친구들, 풍부한 재산 등 자신의 보리심의 서원과 더불어 좋은 몸과 환경을 갖추면, 계를 지키는 것이 쉬워지고, 계를 통해 몸과 마음을 정련하면 인욕의 완성이 쉬워지는 것이다. 《해심밀경解深密經(ārya-saṃdhi-nirmocanasūtra)》에서는 십바라밀十波羅密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첫 세 바라밀인 보시, 지계, 인욕바라밀은 방편바라밀이 받쳐 준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보시를 하는 것도, 계를 지키는 것도, 인내를 하는 것도 상황에 알맞게 지혜롭게 해야만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애덤 그랜트는 그의 저서 《기브 앤 테이크 : 주는 사람이 성공한다》에서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주는 사람, 즉 기버giver가 많지만, 모든 주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받을 대상을 잘 선별하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한다. 즉, 공교한 방편이 뒷받침 되어야만 제대로 방편바라밀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달라이 라마께서는 인내도 지혜롭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한 예로 붓다의 본생담에 나오는, 자신의 몸을 잘라서 비둘기를 살린 시비尸毘라는 왕의 행을 우리가 실천할 수는 없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이 정도 수행을 할 경지에 오르지 않았다면 절대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불교의 실천적 측면으로 자비심을 지니고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보시바라밀과 관련이 있다. 보살 사상에 따르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보시행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목숨까지 기꺼이 내어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언제가 그러한 행을 실천하기 적절한 시기인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수행을 섣부르게 실천에 옮겨서는 안 된다. 우선 알맞은 힘과 깨달음 등을 수행을 통해 갖추어야 한다."


명상을 안내하면서도 전하시는 이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 가끔 보면 수행을 낭만적으로 하는 분들이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든가, 분별을 하지 않는다든가 하며 진제의 가르침을 속제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은사이신 법안 스님께서, 《금강경》의 가르침을 따라 다 내려놓는다고 재산까지 다 내려놓았다가 알거지가 되었다며 후회하는 사람들이 찾아온 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진제와 속제는 엄격히 구분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분들을 가끔 본다. 달라이 라마께서도 말씀하시듯, 최상 근기의 수행자들이야 물론 그렇게 한다 해도 그물에 바람이 걸리지 않는 것처럼 살 수 있겠지만,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반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한국에서 가끔 그런 분들이 하시는 법문을 “탄산음료 같은 법문”이라고 한다. 탄산음료는 마시면 달고, 입 안에서 톡 쏘고, 속이 시원한 느낌까지 드니 입에서는 여러 모로 참 청량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마시고 나면 비만, 당뇨병, 혈관 질환 등 성인병을 유발하며, 골다공증 및 신장에 무리를 주어 요로 결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즉, 입에서 잠깐 시원하지 결국 유익한 데가 없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께서도 몇 번에 걸쳐 경고하시듯, 속제에서 진제로 가기 위해서는 엄연히 밟아야 할 단계가 있다. 그 단계를 무시한 가르침은 원칙의 면에서는 맞지만 세상을 사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면에서, 달라이 라마께서는 똥렌 수행이 자비의 수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맞는 수행법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똥렌의 수행을 자세하게 설명하신 뒤 이렇 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자아상自我像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는 분들, 예를 들어 스스로를 미워하거나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는 분들, 자존감이 낮은 분들은 이 특별한 수행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의 상태를 먼저 잘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하지 않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가끔 나는 책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여러 한국의 불교 수행자들이 똥렌 수행을 몸이나 마음, 혹은 양 쪽 모두 아픈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라곤 한다. 이번 번역을 끝내는 와중에 나는 아주 심한 독감을 앓았다. 미국에서만 약8,500명이 죽었다는 이번 독감을 앓으며 나는 내 수행이 아직 바닥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이 독감으로 앓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들이 빨리 낫기를 바랐지만, 그들의 고통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 위에 얹을 자신이 전혀 없었다. 나는 여전히 하근기인 것이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이렇게 조언하신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이미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 위에 다른 이들의 고통과 괴로움까지 더 얹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경험 안에 포함되어 있는 즉각적인 감정이나 느낌이 어느 정도 불편함을 동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여러분은 반드시 고도로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더 높은 목표를 위해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타인의 괴로움까지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여러분 자신의 괴로움에 대해 생각하고 그 괴로움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는 것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자신의 괴로움에 대해 생각할 때는 여러분의 감각 기관들이 마비되고 무뎌지며 그 괴로움에 짓눌리게 됩니다. 하지만 자비심을 일으켜 다른 이들의 괴로움까지 짊어질 때 겪는 불편함은 잠재적인 민감함, 일종의 세심함을 지닙니다. 따라서 다른 이들로부터 더 많은 괴로움을 받아들일수록 여러분의 깨어 있음과 결단력은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샨떼데바의 인욕품 가르침에 적절한 균형을 잡아 주는 달라이 라마의 법문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아마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인욕품을 배우고 수행하는 최상의 방법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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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사공이 흙탕물이어서 바닥이 안 보이는 강을 기다란 나무로 짚어 가면서 건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수행도, 연구도, 더 나아가 번역도 그러하다. 이럴 때마다 길을 보여 주시는 스승 법안 스님과, 늘 따뜻하게 감싸 주시는 혜신 법사님께 감사드린다. 막막한 길에 (가끔은 아주 눈이 시릴 정도로 강한) 빛을 주는 아사미, 대희, 수희, 제희,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시는 어머니와 돌아가신 아버지께도 감사드린다. 요즈음은 이 아이들이 너무 좋아서, 다시는 윤회의 바다를 떠돌아다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더욱 더 처절하게 하게 되었다. 그리고 늘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누나 같은 은주 누나, 친형 같은 한양대학교 의료인 문학교실의 유상호 교수, 97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시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윤원철 선생님과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김성철 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목이 마를 때마다 내 입을 적셔 주는 좋은 차와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다기를 아낌없이 주신 신현철 선생님 내외분께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부처님께서는 말라 죽은 나무 아래 앉아서 샤꺄족을 몰살시키러 가던 비루다까 왕에게 친척의 그늘의 시원함을 말씀하신다. 불처럼 끓는 고해의 바다에 떠도는 내가 잠시 몸을 식힐 수 있는 그늘이 되어 주시는 분들의 자비심을 늘 잊지 않고, 더 많은 분들에게 이 사랑을 회향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2020년 겨울과 봄의 중간 쯤 되는 날에,

신증信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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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지복화~정말잘돼~ | 작성시간 20.06.13 달라이라마 화를 말하다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가르침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 작성자지광명(편한맘)박정희 | 작성시간 20.06.13 구입하여
    읽고 공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미타불()
  • 작성자일향전념 | 작성시간 20.06.14 선재선재 정말잘돼 할수있어 감사감사 나모대은교주시아본사석가모니불!
  • 작성자희망자비(홍일) | 작성시간 20.06.15 신증 법사님의 오랜 노고에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구입하여 읽도록 하겠습니다.
    아미타불 ()
  • 작성자주연(셀리) | 작성시간 20.06.16 와우
    신증스님 !!!
    법안 큰스님의 자랑 답습니다.
    그스승에 그제자라~
    꼭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늘건승허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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