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품 여래찬탄품(如來讚歎品-부처님께서 찬탄하시다)) 줄거리
여래가 지장보살의 불가사의한 위신력과 원력을 찬탄하였다.
부처님께서 보광보살의 요청을 받고 지장보살이 인간세계와 천상세계에서 이익하게 하는 일들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고 합장하고 찬탄하고 예배하는 사람들은 30겁의 죄업을 녹인다고 한다.
또 지장보살에게 공양하여 여자의 몸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은 벗어날 수 있고 여자로 태어나더라도 왕비나 명문재상의 딸이 된다고 하였다.
반대로 지장보살에게 귀의하고 공양하는 것을 헐뜯거나 훼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죄의 과보는 엄청나게 크다. 한량없는 세월동안 육도를 차례로 겪으면서 고초를 받게 되고 비록 사람의 몸을 받더라도 빈궁하고 하천하여 불구자로 태어나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귀신이 몸에 들어와서 몸과 마음이 아프고 정신이 흐린 사람, 무서운 꿈을 자주 꾸는 사람, 전생의 부모·형제·자매 등이 제대로 천도되지 않는 까닭으로 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지장보살을 공양 공경하거나 지장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고 예배하면, 모든 선망부모가 천도되고 귀신들이 물러가게 된다고 하였다.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지장신앙의 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는 이유가 6품의 내용이다.
특히 제 6 품에서는 병자를 위한 가르침이 주목은 끈다.
“다시 또 보광보살이여, 만약 미래세에 남자나 여인이 있어 오랜 병으로 침상에 누워서 살기를 구하거나 죽기를 구해도 마침내 얻을 수가 없다.
혹 꿈에 악한 귀신과 또는 가정의 친족들이 나타나며,
혹은 험한 길에서 놀며 혹은 많은 도깨비와 귀신과 함께 놀아서 세월이 오래되어 점점 몸이 마르고 여위어서 잠자다가 부르짖게 되리라.
업을 논함에 경중이 정해지지 아니하므로 혹은 목숨을 버리기도 어렵고,
혹은 병이 낫지도 아니하니 남여의 평범한 눈으로는 이러한 일을 변론할 수 없다. 다만 마땅히 제불과 보살의 상전에서 소리를 높여 이 경문을 한번 전독하라.
혹은 아픈 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나,
혹은 의복과 보패와 장원과 사택을 가지고 병든 사람 앞에서 소리 높여 불러서 말하기를 나 아무개가 이 병든 사람을 위하여 경전과 형상 전에서 모든 물건을 희사한다고 하라.
혹은 경전과 형상에 공양한다고 하며 혹은 부처님과 보살의 형상을 조성한다고 하라. 혹 탑과 절을 이룩한다고 하라.
이와 같이 세 번을 병든 사람에게 말해주어 그로 하여금 알아듣게 하면 가령 모든 의식이 분산되어 기진하는데 이른다 하더라도 하루 이틀 사흘 내지는 칠일이 될 때까지 다만 소리를 높여 이 일을 말하여 주고 소리를 높여 경을 읽어 주어라.
이 사람이 명이 다한 뒤에도 숙세의 재앙과 중한 죄와 오무간 지옥에 이를 죄라 할지라도 영원히 해탈을 얻으며 태어나는 곳에서 항상 숙명을 알게 되리라.
또 선남자와 선여인이 자기가 이 경을 쓰거나 혹 사람을 시켜 쓰게 하며 혹 자기가 보살의 형상을 조성하거나 그림으로 그리든지 또는 사람을 시켜서 조성하고, 그리게 되면 그가 받는 과보는 반드시 크게 이로움을 얻을 것이다.”
지장신앙의 공덕을 이처럼 장황하게 찬탄하는 것은 원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원력은 설사 죄업이 다소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예를 들어
바위가 아무리 무거워도 큰 배에다 실으면 물에 가라앉지 않는 것처럼 원력이 큰 사람은 다소의 장애가 있다하더라도 그 장애에 이끌려가지 않으며, 원력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꿈이며 생명력이며 마치 이른 봄날에 생동하는 기운과 같은 것이며 봄날의 생동하는 힘은 두꺼운 얼음의 땅을 뚫고 새싹을 꽃피울 수 있습니다.
지장경 6품에서 지장보살의 위신력과 자비의 마음이 그대로 실천 행으로 옮겨지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면 생명력의 솟아남을 느낄 수 없습니다. 지장보살의 형상 앞에 한 송이 꽃을 공양하는 지극한 마음, 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기도하는 청정한 마음이 이어지기에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장경 6품에서는 거듭하여 부처님과 함께 지장보살의 위신력을 가지가지의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기에, 글자 그대로 위엄하고 신통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으며 ‘나는 찬탄하리라 - 如來讚歎品’ 라는 제목이 되었고, 그만큼 불교 신앙의 실천적 의미를 강조한 내용이 펼쳐집니다.
* 안심정사 지장보살
* 참고로 불교 경전에서 사람을 호칭하는 단어인 ‘남자와 여자’ 는 종교에 관계없이 함께 살아가는 일반 사람을 말하며, ‘선남자와 선여인’ 이란 단어는 착한 남자, 착한 여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붓다와 그의 가르침에 신심을 가지고 수행하는 불제자를 말합니다.
출가 수행자들을 공양하여 공덕을 쌓는 일반 재가자뿐 아니라 출가하여 수행에 정진하는 출가 수행자들도 선남자 선여인으로 지칭되며, 초기 경전에서 용법을 보면 몇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 단순히 ‘훌륭한 가문의 출신자’ 라는 의미로 쓰인 경우로 불교인이 아닐 수도 있다. 아직 삼보(三寶)에 귀의하지 않았지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선근(善根)이 있고 불법에 호의적인 사람을 지칭한다.
둘째, 출가 수행자가 되기 전의 재가자를 부르는 경우로 잠재적인 출가 후보자이다.
셋째, 5계를 지키면서 부모를 비롯하여 처자·친척·시문·바라문 등을 공양하는 경우로 사부대중(四部大衆) 중 우바새(優婆塞)와 우바이(優婆夷)이다.
넷째, 출가 수행자를 부르는 경우로 비구와 비구니의 동의어이다.
즉, 선남자․ 선여인은 불교의 위대한 선언인 ‘모든 중생은 누구든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 임을 구현하는 데 부합하는 성격으로 사용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