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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모형의 때는 맹세가 용납되었으나 실상의 때는 맹세하면 안된다

작성자티끌|작성시간23.03.10|조회수15 목록 댓글 0

 

모형의 때는 맹세가 용납되었으나 실상의 때는 맹세하면 안된다

 

 

 

 

<마5:33-37>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성경을 읽어보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뭐 대단한 게 아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인간의 크고 작은 여러가지 잡다한 일상적 삶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잡다한 일상의 삶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의 숨겨진 본질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절대적 교류를 요하는

어마어마한 진리에 대한 기록이며 그 예언서가 되고 있다.

 

즉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리를 알려주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 인간의 일상적 삶을 통해 진리에 대한 예표(예언)들을

세워주셨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중심은 이천년 전에 오신 예수님인데, 예수님은

구약에서 세운 그 예표들 중에서, 즉 구약에서 예언하신 것들 중에서 하나의

주요 예언이 최초로 이루어지고 있는 최초의 실상이 되고 있다.

 

죄송한 말이지만 사람들은 성경에 대해서 하도 무지몽매한지라 

예표와 실상 이라고 하면 그게 무슨 말인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 채,

혼미함을 감추고 무조건 예수 믿어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예표와 실상이 무엇인지 명확히 그 개념부터 알아야 성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구약은 앞으로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나겠다 라는 예언(예표)이고

신약부터는 그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실상이다. 초림 예수님이 최초의 실상이고

다음은 예수님이 말일에 다시 오실 터이므로 그 또한 오늘의 주요 실상이다.

이 같은 초림주와 재림주 사이엔 멸망의 가증한 적그리스도가 있는데

이 또한 주요 실상이다.

 

그리고 이 같은 삼자의 실상에는 각각 그들의 백성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 백성들 또한 실상이며, 이러한 실상은 신약시대 저 이천년 전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며 또한 미래 천년통치 때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러니까 이러한 실상들은 구약성경에 이미 그 예표(예언)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예표를 세우는 때가 있고 실상이 주어지는 때가 있는데,   

이와 같은 예표와 실상 을 아는 게 성경이해의 정석이다.

 

본문 성경기록에서 알려주듯이 예수께서는 맹세를 할 수 있는 때가 있고

맹세를 도무지 하면 안 되는 때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표의 때에는 맹세를 할 수 있는 때이고, 실상의 때에는

맹세를 도무지 해서는 안되는 때임을 먼저 밝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표란 오늘에 이루어질 실상과 본무대에 대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일임을

신뢰할 수 있도록 미리 예언을 세우는 일이며, 미리 예행연습을 시키는

리허설이므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사람들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사용할 수있다.

 

사실 세상의 그 많은 나라들 중에서도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를 선택해서

이긴자 그리스도의 나라, 혹은 하나님의 나라로 예표를 삼은 것 또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선택하여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삼은 것도,

(마귀를 이긴 자의) 사망이 없는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삼은 것도

나라에 대한 일방적인 예표요, 각 개인을 선택하여 역사하심도 예표이다.

(이렇게 구약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세우신 예표제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은 하나님의 실상적인 최대 보호국가로 믿고 선민사상에 자만하고

있으며 또한 바울도 자기동족 이스라엘이 예표가 아니고 실상으로 믿었다.

따라서 오늘의 이스라엘민족과 바울과 바울의 추종자들에겐 성경이

도무지 풀릴 리 없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명백히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한 예표이며,

구약에서 선택된 각 개인들도 반드시 예표들이다. 실상이 절대로 아니다.

실상이 아니고 실상에 대한 예표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맹세한다거나

서원하는 일이 가능했다.

 

하나님께 서약하면 그것을 반드시 엄수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서약을 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극명하고도 무시무시한 예를 하나 든다면

입다의 맹서이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암몬족속을

치러 나가는 출발점에서 하나님이 승리하게 해주신다면 돌아올 때

가장 먼저 입다를 영접하러 나오는 자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겠다는 서약을 했다.

 

입다의 승리를 기뻐하여 그를 가장 먼저 영접하러 나오는 자라면 짐승이 아니고

반드시 사람일터인데, 사람을 죽여 인신제사를 바치겠다는 맹세였던 것이다. 

사람을 죽여 인신제사를 바치다니 하나님은 그의 그런 서약을 무모하고

경망하다고 생각하시며 불쾌해 하셨을까? 아니다. 하나님은 입다의 서약대로

승리하게 해주시고 가장 의미 있게 입다의 무남독녀를 받으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입다의 모친 기생은 창조미완인 일위 하나님을 예표케 하고,

입다는 서자로서 상속권이 아직 없는 이위 초림주를 예표케 하고,

하나님께 승리의 제물로 바쳐진 무남독녀(독생자)는 창조의 하이라이트

재림주를 예표케 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예표를 세우는 일이므로 반드시는 아니지만 맹세하는 일이 가능했다.

서약을 하고 그 서약을 지키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큰 범죄가

되므로 서약을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서약을 하지 않고 뜻하는

바를 행할 수도 있으나, 서약을 하므로써 하나님께 바라는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간절함에서 서약은 예표제단에서만 큰 의미를 지닌다 할 수 있다.

 

즉 예표를 세우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사람들 스스로도 자진하여 예표의

맹세(서약, 서원)를 한다면, 그리고 그 맹세대로 반드시 실행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성취감이 배가 될것이기 때문에 예표의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맹세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이 맹세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역사하여 얼마든지

예표들을 세우실 수 있었고 그리 역사하셨다. 그러나 그에 부합되게

사람들이 맹세를 하고 그 맹세를 실행에 옮긴다면

그 맹세가 용납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마5:33에서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즉 구약에서는 맹세하는 일이 용납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상으로 오신 예수님 때부터는 맹세하는 일은 금물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온세상 사람들에게 실상으로 오신 예수님 때부터는

예수님 자신이 실상의 실체요, 실상의 실체로서 하나님의 창조작업이

착착 진행되는 과정이므로 또 다시 예표를 세우는 서원이란 불필요하고

경망한 일이 되기 때문에 맹세를 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민족은 실상이신 예수님이 오신 이래,  전 세계인 가운데 하나님을

믿게 된 거대 신앙집단을 뜻하고, 세계적 거대 신앙집단은 영적 이스라엘이 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조차도 오늘의 세계적 기독교단에 대한 예표였다.

 

그리고 오늘의 세계적 기독교단에서는 과거 구약제단에서 예표로 세웠던

이방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바사, 헬라 등등의 나라들은 물론

구약제단에서 예표로 세웠던 예수님을 비롯한 각 개인들까지 모두 실상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부정적인 예표들이든 긍정적인 예표들이든 과거의 예표들이

오늘의 실상으로 나온다. 따라서 이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하나님이 택하신

존재들이 실상으로 나온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 출현하여

각자 맡은바 사역을 감당할 세계적 역사가 하나님의 강권발동에 의해

불가불 일어날 터이므로 오늘날은 구원의 실상도 멸망의 실상도 모두 목격되는

실상만 남았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곧장 구원과 멸망의 실상만 목격되는 실상의 국면에서

더 이상 무슨 예표가 필요하겠으며 그에 따라 더 이상 무슨 맹세가

필요하겠는가 이다. 예표의 용도폐기가 곧 맹세의 용도폐기로 이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존전에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옛 사람의 한가한 맹세는 이미 그 효용가치를 잃었다.

 

이제 하나님은 택하시고 예정하신 실상으로만

우리의 폐부를 찔러 공격해 오는 급박한 말일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의 예정이 아님. 성경역사 육천년동안 우리가 일한대로 갚아주시는

의미에서 선택이며 예정임)

 

그러므로 실상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인즉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라고 하셨던 것이다.

 

맹세를 한다 해서 너희가 이룰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한것이며, 오직 진리를 진리라고 말하고, 진리 아닌 것을

진리 아니라고 말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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