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은 시작일 뿐…변화는 어디서부터
지성용 신부. 인천 송림동 성당 주임사제
이것이 인간인가?
황보승희 의원(국민의힘 탈당)은 조국 장관의 가족을 그토록 힐난했다. 최근 <뉴스타파>는 황보 의원과 관련해 ‘억대 돈 봉투 가방, 장롱에 숨겼다’(봉지욱, 2023 6월 18일)와 ‘관용차, 비서 동원해 자녀 입시학원 라이딩’(2023년 8월 16일)이란 보도들을 내놨다. 이것들을 보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끝판왕을 보게 된다.
조민을 기소한 검찰(서울중앙지검 공판5부, 부장 김민아)은 10일 조 씨를 입증도 못하는 동양대 표창장 위조(?)로 허위작성공문서행사, 업무방해 및 위계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했다.
이들을 바라보며 ‘과연 인간인가?’라는 생각이 스친다. 조국 전 장관은 “차라리 옛날처럼 나를 남산이나 남영동에 끌고 가서 고문하길 바란다.”라는 글을 포스팅했다. 아비의 처절하고 쓰라린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김훈이라는 작자가 쓴 ‘내 새끼 지상주의’란 글은 새내기 여교사 죽음의 문제를 교묘히 조국 장관의 문제와 엮어 스스로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자리로 올라가려는 추악한 야심, 비루한 야합의 결정판이었다. 필자는 ‘작가’라는 자들의 비루한 실존에 절망과 슬픔을 가지게 되었다.
요즘 세상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목격하며, 그 사건들을 둘러싸고 횡행하는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문득 제자 공손추와 스승 맹자의 대화가 떠오른다. 공손추는 “말을 안다는 것, 지언(知言)은 어떤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맹자는 “피사(詖辭, 공정하지 못하고 편파적인 말), 음사(淫辭, 음란한 말), 사사(邪辭, 사악한 말), 둔사(遁辭, 책임을 회피하려고 억지로 꾸며서 하는 말)가 위정자의 마음에서 생겨날 때는 반드시 그것이 말에 그치지 아니하고, 그 나라의 모든 사업에 해악을 끼친다.” 그러하니 ‘피음사둔(詖淫邪遁)’, “번지르르한 말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길러 나가야 한다”라고 충고한다.
윤석열 탄핵은 시작일 뿐
윤석열 정부의 무능은 심각한 문제를 끊이지 않고 일으켜 우리들의 삶을 위협하고 불안하게 한다.
대통령 아내의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문제와 학력 위조, 주가조작 등의 의혹은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엄청난 사건·사고들로 뒤덮여 사부작사부작 지워지고 있다.
특히나 8월 16일 아침 아사히신문 하코다 데쓰야 논설위원이 쓴 ‘일한 관계 개선 가속의 생각 강조, 윤 대통령’이란 기사는 충격적이었다. 기사는 “윤 정권과 여당(국민의 힘) 내에서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출할 것이면 한국 총선에 영향이 적은 시기에 빨리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를 비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에 전달했고, 일본 정부는 조기 방출할 것 같다”라는 얘기를 전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윤 정권은 더는 집권할 자격이 없다.
모든 것이 “윤석열의 책임이다. 모든 것이 김건희의 문제이다. 윤석열은 퇴진해야 한다. 김건희를 특검해야 한다. 김건희를 구속하라” 시청 앞에서 촛불은 밝혀졌고, 사제단은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국민은 불안하고 분노했고 우울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칼을 들고 거리로 뛰어나왔고, 대한민국 자살률과 자살 증가율은 여전히 세계 1위다. 윤석열이 퇴진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김건희를 구속한다고 우리 사회는 맑아지겠는가? 필자는 단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미 박근혜를 탄핵했고, 최순실을 구속했다. 이재용을 구속했고, 재벌들을 구속했다. 우병우를, 최경환을, 양승태를 구속했고 감방에 잡아넣었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그들은 내 안에, 우리 안에 여전히 똬리를 틀고 살아있다.
윤석열을 탄핵하고 퇴진시키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내 안의 윤석열과 내 옆에, 우리 안의 김건희를 바라봐야 한다.우리 안의 탐욕과 이기, 우리 안의 무관심과 우리들의 오만과 무지, 어리석음과 비열함을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고 만나는 기준을 ‘나의 이익’을 준거로 삼아 판단하고 행동하는 일상의 삶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도 바꿀 수도 없다. 많은 이들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공동선’을 향해서는 대체로 무심하다. 그러나 또 다른 많은 이들은 손톱만큼의 이익에도 삶의 자세와 방향을 재빠르게 바꾸어 나간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다시금 돌아본다.
누구를 위한 법치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고, 경쟁하며, 서로를 살해한다. 칼만 들지 않았지, 세상은 전쟁터로 변해 버린 지 오래다. 그 전쟁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제한 없는 경쟁과 출구 없는 패배자들의 삶에서 시작된 것이다.
국가권력과 그 정점의 대통령, 상층의 정치권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안에, 교육계 안에, 문화 예술계 안에, 방송과 언론 등 풀뿌리 생활 곳곳에서 크든 작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이견(異見)을 도무지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 현상을 보게 된다.
이런 현상은 비단 국가권력 차원의 일만이 아니다. ‘닭 볏도 벼슬’이라고, 권력이 있는 자리나 단체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상층의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구체적인 현장인 가정, 학교, 교회, 직장, 동창회, 다양한 클럽 등 우리의 일상 가운데 다양하게 펼쳐지는 독선과 아집, 욕심과 무지, 오만과 불손은 그득하게 흘러넘쳐, 세상이라는 바다를 가로지른다.
우리 사회는 이견을 합리적인 대화나 토론을 통하여 절차적으로 해소해가는 민주적 토론 문화가 아직은 취약하다. 이견을 강압적으로 억압하려 할 때 흔히 선택하는 강자들의 수단이 ‘법’이다. 법을 중심에 두는 사회를 우리는 ‘법치주의’라고 말했다. 그렇게 ‘법치’를 말하지만, 그 법이 지금 우리를 억압하고 농락하고 있다. 사실 법이라는 말은 국민더러 잘 지키라는 뜻보다는, 권력자가 법을 잘 지켜 자신이 대표하는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잘 지키라는 뜻이 우선이어야 한다.
시민의 ‘티끌’ 같은 불법은 조목조목 밝혀 수사하고 기소하고 재판하여 처벌하면서도, 대통령이나 권력자들의 ‘들보’ 같은 불법은 수사도 기소도 하지 않고, 재판도 처벌도 없는 불공정과 불의는 머지않아 철퇴를 맞게 될 것이다.
‘네’탓이오! 아니면 ‘내’탓이오?
‘문재인 정부 7년 차’라는 표현을 마주하며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세계 잼버리 파행도 전 정부 탓이라는 말은 참말로 어리석다. 그래서 권력을 잡았다면 개선해야 할 것 아닌가! 바꾸어야 할 것 아닌가!
요사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날이 서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돌이켜 보면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최재형을 감사원장으로, 홍남기를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김현미를 국토부 장관으로 임명해서 이러한 파국을 맞이하게 된 총체적인 인사의 난맥이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는 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만들 때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사람은 대략 국민의힘 장제원, 김진태 의원이었다. 거꾸로 민주당의 표창원은 “살아있는 권력을 내리 수사한 유일한 검사”, 이철희 의원은 “될 만한 사람이 지명됐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정치 9단’이라는 박지원은 “尹의 정의로운 발언이 촛불혁명을 가져왔다”라고 칭찬했다.
당시 뉴스타파와 임은정 검사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부정적 발언을 할 때 진보 진영 사람들은 논거들을 살피지도 않고 그들을 비난하고 공격했다. 모든 것이 ‘네’ 탓이었다.
고 채수근 상병의 진실을 밝히려던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이종호 해군 참모총장,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결재를 받았는데도 ‘항명 수괴’로 대역죄인(?)이 되었다. 모두 박정훈 대령 탓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소중한 일을 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 둘 사라져간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흘러가던 우리들의 일상을 지켜주던 소금 같은 이들이 사라져간다. 모두 네 탓으로 하면 쉬워진다. 나는 책임이 없고, 모두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티끌’ 만한 이익이라도 생겨나면 눈에 불을 켜고 나누어 먹어야 하고 그때는 모두 내 덕이 된다는 식이다.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내 안에서, 내가 먼저, 가장 작은 일에서부터, 가장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작은 반이고, 반이 지나면 훨씬 수월해진다. 내 안의 윤석열을 바라보자!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오직 자기 말만 하면서, 남을 존중하지 않고, 나의 입장만 강변하는 그런 ‘나’는 아닌지, 우리 안의 김건희를 바라보자! 사적인 욕심과 탐욕이 내 안에 가득한 채 봉사한답시고, 희생한답시고, 겉치장과 꾸미기에 여념이 없이 표리부동하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먼저 나의 가슴을 두드리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의 큰 탓입니다.” 말하자. 그리고 전열을 가다듬고 모두 함께 이 어려운 시대의 어둠을 뚫고 건너가자.
내 안의 윤석열, 우리 안의 김건희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