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어진 혼동!
근대사 독립!
우리는 흔히 우리 근대사를 혼동한다. 광복 5년 후 한국전쟁이 벌어져서다. 한반도에 연합군의 등장이 2번 있었다.
광복 때의 연합군 중 미군에 대한 기억이 가장 심하게 뒤틀린다. 미국은 일제와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격렬하게 싸웠다. 일제의 진주만 폭격 때, 일제 식민지였던 한반도의 유력자들은 대부분 반미주의자들이었다. 일제 편에서 반미 구호를 외첬다. 미군은 동남아시아에서 싸우기 바빴다.
광복 전 북한에 들어온 소련은 일제를 몰아내는 전투를 했고 친일파들을 처단했다. 반면 '점령군'임을 선포한 미군은 광복 후인 1945년 9월 8일 인천으로 상륙한다. 그러니까 미군의 인천상륙은 2번 있었다. 미군은 남한에서 일제 때 유력자였던 반미주의자도, 일제에 저항했던 반일주의자도 모두 품었다. 광복 전후의 철학자 박치우는 이를 두고 남한에 반소련주의자는 있어도 반미주의자는 없다고 썼다.
이런 상황에서 5년 후 한국전쟁으로 다시 연합군이 전쟁에 참여했다. 이번에도 미군은 인천으로 상륙했다. 미군은 한반도에서 북한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미군에 대한 기억이 광복 때와 뒤섞였다. 미군이 일제 때에도 일제와 전투했다는 기억은 이렇게 해서 심어진 혼동이다.
심어진 혼동과 근대사 독립은 동전의 양면이다. 광복 후 미군정 3년은 행정편의를 내세우며 일제식민지 시스템을 그대로 작동시켰다. 일제에 의해 한반도에 이식된 건 자본주의였다. 미국이 미군정으로 한반도에서 운영하려 했던 것도 역시 자본주의다. 미군정은 일제식민지 시스템만 작동시킨 게 아니었다.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파들도 그대로 중용했다.
역사독립은 미군정 3년을 직시해야만 비로서 가능하다. 이 시기를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기득권들의 사대주의와 기회주의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활짝 펼칠 수 있다. 이로써 제대로 된 국가전략을 세울 수 있다. 근대사를 밝히는 역사의 뿌리 찾기가 가장 급선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구현은 우리의 뿌리를 찾는 역사독립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