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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 많았다. 하지만 그 정치적색채에 이용당하거나 축출되는일이 많고 학문적 파괴성도 강했다. 5. 국민들이 모두 화합할수 있는 유교가 아니었다. 오히려 국민들이 분열되는 유교였다. 분열적 유교정책으로 힘든삶을 가졌다.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말하겠다. 바로 분서갱유다. 진시황제 진시왕은 분서 책을 불사르고 학자를 가두어서 죽였다. 분서는 책을 불사르고 갱유는 학자를 죽였다는점이다. 분서갱유는 현재도 되고있다. 바로 언론장악이다. 언론은 조선시대의 사간원이다. 사간원이 되는 현재의 언론은 간쟁적 위치를 하고있다. 분서갱유까지 일어났지만 노나라 공자는 죽어서도 고민 많았을것이다. 공자는 놀기 좋아했고 작성자 cid815 작성시간 08.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