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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오토코스의 사용을 비방하지 맙시다 -개신교 당당뉴스 기고문

작성자이용섭|작성시간07.05.31|조회수48 목록 댓글 0
데오토코스의 사용을 비방하지 맙시다
속성의 교류도 모르는 인간들이 대형 교회들의 목사 행세를 하니 그 교인들 수준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용섭 lys979111@naver.com [조회수 : 3]

 
정통고대교부들로부터 나온 신학적 이론인 소위 속성의 교류(communicatio idiomatum)의 핵심 내용은 주 예수님의 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서로 분리되지도 않고, 혼합되지도 않은채, 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님은 "영혼(신성+인성)과 육신(신성+인성)을 갖추신 사람이신 예수님"을 잉태하셨고 낳으셨습니다. 여기 "영혼(신성+인성)"에서의 신성은 하느님의 본질이라는 의미이고 인성은 주 예수님의 영혼도 외관상(?) 우리 영혼과 같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이상은 신비이므로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즉 그리스도교는 신비로 가득찬 종교입니다. 단순하게 우리와 같은 사람을 낳으신 게 아닙니다. 이것이 "속성의 교류"가 말하자는 것이고 요한복음 1장의 가장 정확한 주석입니다.

주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님에게 잉태되셨을 때부터 마리아님의 도움(영양섭취)을 받으셨고 출생 후에는 마리아님의 젖을 잡수셨습니다. 마리아님이 주 예수님의 기저귀도 갈으셨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와 "속성의 교류"라는 용어도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의 영혼이 신성이라고 한 고대교회의 아폴리나리(우)스는 사이비 이단자입니다. 속성의 교류라는 이론에 입각하여 고대공의회 둘(431년의 에베소, 451년의 칼케돈)은 데오토코스(하느님을 낳은 이. 하느님의 어머니)를 신조에 넣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건 마리아님을 높인다기보다 그리스도님의 신성을 강조 옹호키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소위 "그리스도 단성설"과 "그리스도 단의설"이 사이비 이단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데오토스의 일반적인 사용도 이해가 됩니다.

"내 주의 어머니께서 내게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이상 표준새번역 누가 1장)

김경호(xaris7) 카페매니저 http://cafe.naver.com/shalom/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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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예장 통합의 김경호 목사의 위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가톨릭교가 마리아를 높이는 행위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어느 정도 허용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욥의 고난이 사탄의 전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에서 일어난 것처럼 말입니다. 누가복음 1:46 이하에 나오는 <마리아의 찬가>에 보면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 1:46-48)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어서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눅 1:52)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마리아의 찬가>는 누가복음 1:68 이하에 나오는 <사가랴의 찬가>처럼 성령의 충만으로 부른 찬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예언의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부르는 찬가에는 예언의 메시지가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리아의 찬가 내용 중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라는 부분과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라는 부분은 마리아가 미래에 받을 영광을 예언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평범한 여인으로서 비천한 일개 처녀의 신분에 불과했던 마리아가 오늘날 가톨릭교에서 크게 높임을 받고 있는 현상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가를 이러한 예언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마리아가 후대에 가톨릭교에서 높임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어느 정도 허용된 것이라는 견해가 전혀 근거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삶과 행적을 살펴보면 그가 순종을 통한 축복으로 높임을 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율법의 영향이 지대했던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생명과 명예를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유대 율법은 간음한 여자를 돌로 쳐죽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레 20:10). 마리아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진 것은 생태적 관점에서 보면 간음의 증거이기 때문에 마리아에게 엄격한 유대 율법을 적용하면 그는 돌로 침을 받아야 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듣고 가만히 끊고자 한 것도 마리아가 이같은 형벌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진 것은 그 누구도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대단한 순종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순종하는 자에게는 큰 복을 내려주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마리아가 가톨릭교에서 크게 높임을 받는 것은 어쩌면 순종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은 것도 대단하지만 그가 예수님을 양육한 것 역시 대단한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몹시 가난한 사람이었고 일찍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마리아가 과부의 몸으로 예수님과 다른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니까? 아이를 길러보신 분들은 가난한 집에서 남편없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인지 잘 이해할 것입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생명의 위험과 사회적인 비난과 명예의 훼손까지 무릅쓰고 낳았으며, 과부의 몸으로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예수님을 양육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도했습니다. 그러니 마리아가 겪은 마음의 고통은 얼마나 극심했겠습니까?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이 마리아에게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눅 2:35)고 예언한 말씀은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또 마리아는 예수님의 승천 후에도 제자들과 함께 기도생활에 힘썼습니다.

마리아는 육신의 아들인 예수님께 대한 개인적인 사랑을 넘어서서 모든 이들에게 믿음의 어머니로서의 모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상에서 열거한 마리아의 삶과 행적만으로도 우리는 마리아가 무척 존중받을 만한 신앙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가톨릭교에서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친 나머지 마리아에 대한 비성경적인 교리를 만들기에 이른 것입니다.

 

입력 : 2007년 05월 31일 16:39:55 / 수정 : 2007년 05월 31일 16: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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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54년 부산 생, 프리랜서, 전 월간 <시사정경> 객원기자, 전 월간<월드 코리아> 객원기자(차장대우), 전 월간<선택> 객원기자(차장), <저서> 1. 로마천주교회와 알베르토리베라, 2. 교황제도에 대한 교회사적 비판, 3. 탁명환, 그는 과연 누구인가, 4. 목사님, 정신차리소!(조용기목사의 신앙관 해부), 5. 여의도의 바벨탑, 수필, 칼럼, 논문 다수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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