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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21. 훈허강(혼하)을 건너며

작성자구름나그네|작성시간16.10.19|조회수457 목록 댓글 0

21. 훈허강(혼하)을 건너며

 

 

 

어제 술을 엄청 퍼 마셨는데 제 때 일어날 수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우리 몸은 에너지 보존법칙이 적용되고 관성의 법칙도 적용된다. 늘 마시던 술인 만큼 중국이라고 달리 에너지가 덜 소비되지도 않으며 평소만큼 필요로 한다. 거기에 기분이 UP되면 술이 술을 부르는 관성력도 적용되고 만다. 그러고도 아침에는 술에 지친 배를 쓰다듬으며 늘 그러하듯 출근길을 나서는 우리다. 몸은 늘 하던 대로 하려는 관성이 작용한다. 모두 6시에 일어나 씻고 닦고 아침 식사를 기다린다. 아줌마는 우리의 술 행태를 잘 아는지 북어 국을 끓였다. 과반을 먹고들 트림을 하더니만 한 결 같이 아주머니 덕에 말짱해졌다고들 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런대로 생생해 보였다.

 

오늘은 7시 출발이다. 이곳에 오기 전 큰 밑그림을 그릴 때 나는 민박집 예약을 하면서 여러 갈래로 검토를 했었다. 제일 먼저 물어 본 것이 백암성에 대한 것이었다. 태자하를 배수진으로 치고 성을 쌓았다는 백암성은 고구려 성의 특징을 원형 그대로 제일 잘 보여준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주소까지 챙겨 가 볼 생각을 했는데 문제는 교통편이었다. 렌트를 하지 않고서는 시골까지 가기도 곤란하고 간다고 해도 역사에 빠진 나 말고는 긴 시간을 이곳에 허비한다는 게 무리라는 생각을 했다. 과감히 포기를 하고 생각해낸 것이 연암 박지원의 요동이다. 백탑과 광우사과 관제묘를 연암은 비교적 상세히 묘사를 했으며 연암은 요동이 초행길이라 이미 본 다른 일행과 나뉘어 따로 챙겨본 그의 말대로 구요동 땅이다.

 

물론 요동 북쪽에 태자하가 있으니 그 근방 어딘가에 백암성이 있을 것인데 아쉽기는 하다. 그리고 간 김에 볼 것이 많은 안산도 이 참에 가보자 하였다. 이 역시 문제는 교통편이다. 어떻게 다녀와야 하나. 자가 렌트를 한다면. 중국을 다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중국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운전을 한다면 1시간도 안되어 재미없어 나가떨어지던지 좌충우돌로 병원행이고 우리가 중국에서 운전을 한다면 15분 만에 퍼질 것이라고 했다. 신호도 무시하고 눈치껏 요리조리 다니는 기묘함은 가히 예술이다. 그렇다면 지리상문제도 해결하고 운전사 딸린 렌트가 적절하다. 결국 돈 문제가 남는다. 아줌마에게 봉고차 렌트를 문의했었다. 아줌마는 알아보더니 1천원을 달라고 한다고 전해주었다.

 

천원이면 중국에서는 꽤 비싼 값이다. 나는 변기사라는 조선족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했다. 천원 아래로는 안 되겠다고 완강하다. 나는 마음은 급했지만 마음과는 정 반대로 그렇다면 우리는 그냥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겠노라고 했다. 그러면 생각한 것을 다 못 볼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다 볼 생각은 없고 어차피 놀고 쉬자고 가는 길 되는 대로 보다 말겠노라고 응수를 했다. 그런 고로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나는 이후에도 날씨하며 고속열차 예매등 그곳 사정을 묻느라고 아줌마하고 몇 차례 전화를 했지만 봉고차 빌리는 건에 대해서는 일부러 무심한 척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줌마가 어찌 된 거냐고 하였지만 그냥 알아서 천천히 다니던지 아니면 요동만 보고 오겠노라고 했다. 심양에 가는 날은 다가오고 그쯤 변기사라는 분이 아줌마에게 물어 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대비해 800원이면 몰라도 라는 말을 후렴조로 아줌마에게 전화 할 때 은근슬쩍 껴 넣어 얼버무리곤 했다. 떠나기 일주일 전 역시 생각대로 응답이 왔다. 당초 34일로 가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일정이 빡빡할 것 같아 우리는 하루를 더 연장 했으며 그사이 일행도 한 명이 바뀌었다. 당초 석박사라는 분이 가기로 하고 돈도 냈는데 정부상대 예산과제 발표회가 메르스 때문 연기되어 하필 돌아오는 날로 확정되어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부랴부랴 핀치히터로 교체된 분이 천하태평 김 이사님이다. 나와 그 그리고 도박사님은 늘 산행을 같이 했었다. 하루를 연장하는 바람에 민박집 요금도 달라졌다. 하루 방 세 개 값이 450원인데 100원을 깎아 1700원에 하기로 했다. 아줌마가 말끝에 '봉고차 800원에 해준답니다.' 라고 했다.

 

우리는 아파트 입구에 모였다. 이미 봉고차는 와 있었는데 변기사는 연결고리고 중국인 장씨라는 분이 우리를 이끌고 간다고 했다. 이틀 전 오애시장 가는 길에 만난 택시기사가 공항까지 80원이라고 한 것을 상기해 공항을 물어보니 150원에 가주겠노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일 우리가 견과류를 사고 그리고 공항에 갈 예정이니 50원을 더 줄 터이니 들려서 공항에 가자고 했다. 장기사는 선뜻 응해주었다. 도합 2백 원에 내일은 견과류 시장에 들러 공항으로 가고 오늘은 800원에 잠시 오애시장을 들러 내가 미리 봐둔 기념품을 하나 사고 곧 바로 요동을 가기로 했다. 장기사는 안산을 갔다가 오는 길에 요동을 들르자고 했지만 광우사가 늦으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요동 다음 안산을 가는 것으로 해두었다. 오늘은 일이 순순히 잘 풀리는 것만 같다.

 

우리는 차에 올랐다. 오르기 전 만약을 몰라 조선족 시장에 잠시 들러 간식으로 인절미를 사고 물을 사고 맥주도 두병 정도 샀다. 회계로 부터 돈을 10원 받아 샀는데 나중 돈이 모자라 내 돈 20원을 쓰고 나중 달라고 했다. 이 돈을 상세히 적는 데는 꾀죄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 나중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아침 길 오애시장은 막히지 않았다. 일행들이 쫓아 나오면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것 같아 차안에 계시라 하고 나와 김이사만 번개처럼 물건을 사러 다녀왔다. 등산용품 집의 휴대용 술잔. 드디어 차는 교외로 빠져 나간다. 그들은 요양이라고 하지만 나는 요동이라고 부른다. 그 말이 친한 것은 바로 고구려 요동 땅으로 조선시대에도 우리는 그렇게 불렀으며 중국도 인정하는 고구려 땅이기 때문이다.

 

심양은 연암 때는 성경이라 불러 그의 글에서도 심양에서 벌어진 일은 성경잡지라고 했는데 그 동네에 흔한 은행이름이 성경은행이고 오애 시장 주변에는 우리가 또 익숙한 봉천대로라는 게 있다. 봉천하면 나는 으레 독립군이 떠오른다. 차는 어느새 다리를 건너고 있다. 심양을 가로지른 강을 건너는 것이다. 차가 잘 달린다. 중국이 만든 상하이차인데 거의 반값으로 승부를 건 차다. 조선족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우리 차가 많았는데 그래도 동포라고 챙겨주는 것이 고맙다. 하지만 그런 심정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무리다. 이곳에 오기 전 현대차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었다. 차가 안 팔린다. 본국에서도 외제 차 판매율 대비 떨어지는 판매량이다. 2010년 그때는 좋았다. 기억들 하는지 모르겠는데 치킨게임에서 우리는 승리했고 그 바람에 세계 5대 메이커 안에 들어갔었다.

 

당시 일본열도는 침울했다. 일본의 대표적 일본항공사(JAL)가 적자운영으로 인해 법정관리로 들어갔으며 일본경제 성적표는 마이너스 5.4%로 뒷걸음 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1위의 자동차 대표회사인 도요타가 가속페달 결함문제로 전 세계시장에서 1천만대의 리콜이 벌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7-80년대 일본경제의 호황을 불러일으킨 소니와 도요타, 신일본제철회사, 미쯔비시중공업 등 굴지의 세계적 기업들이 하나씩 정상에서 밀려났다. 소니가 삼성전자에게 밀렸다. 삼성전자는 매출1170억 달러로 미국의 휴렛패커드(1146억 달러)와 독일의 지멘스(198억 달러)를 제치고 세계1위로 등극했다. 도요타의 아키오 사장은 NHK방송에 나와 일파만파로 번지는 리콜사태에 대해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게 해 매우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일취월장한 도요타자동차가 부속품 하나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게 된 것이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국시장에서 도요타에게 빼앗긴 수요를 되찾기 위해 미국언론들이 연일 대서특필하면서 수요자들에게 미국차를 사라고 야단들이었다. 미국 리먼 은행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GM자동차 회사는 노조들의 자기 몫 찾기 때문에 파산한 사태였다. 쌍용차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추락하기 시작하면 날개가 없다고 떠든 때가 5년전 일인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가 자꾸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고 일본차는 엔저를 기반으로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엔저 현상을 미국은 모른 체 돕고 있으며 급기야 아베의 일제만행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 덕으로 미국은 얼마 전 양쪽이 만나 30조의 신무기를 팔았다.

 

2015년 다시 자동차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현대는 중국 충칭에 새 공장을 짓고 서부지역을 공략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중국 자동차 시장 25백 만 대 공급 과잉인데 뚝심의 정몽구 회장은 한판 붙어보자며 다시 한 번 승부수를 던졌다. 공장이 본격 가동되는 2018년이면 현대차와 기아차의 중국 생산량은 지금보다 38%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우려도 크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너도 나도 공장 증설에 나서면서 중국 내 자동차 생산능력은 이미 5000만대로 수요의 2배나 된다. 여기에 반값 가격을 무기로, 중국 토종 업체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적이 가면, 나도 간다" 정몽구 회장의 이른바 '적진아진' 승부수가 '치킨게임'으로 흘러가는 중국 시장에서 어떤 결과를 낼지 세계 자동차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정말 추락하기 시작하면 날개가 없다. 지금은 우리 기업들이 생동감을 잃고 추락하고 있다. 한국의 삼성전자도 자칫하면 10년 이내에 구멍가게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도 나온다. 극단적 이기주의에 물든 노동자나 기업가들은 결국 자기 목을 스스로 죄고 말기 때문에 화해협력하고 상생의 윈(win) 윈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가 봐도 최근 벤츠와 BMW, 아우디 등 외국차를 타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외제차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과거처럼 맹목적인 애국심으로 국산차를 탈 이유가 없다고 항변한다. 우리 세대만해도 국산품애용이 애국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특히 자동차에 관한 한 외제차를 구입해 타는 것이 흡사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돼 돈이 있어도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외제차를 구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대차가 짧은 기간에 급성장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우리 국민들의 이런 애국심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같은 국민들의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더 이상 외제 차 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무개념이라고 할 수도 없고 자연적인 사회이반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국민들의 이 같은 변화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아마도 현대자동차의 잦은 노사분규가 한 몫 했을 것이고 혹여 현대자동차의 직원들과 경영자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우리 사회를 생각하지 않는데 따른 여파로 우리가 현대자동차를 사 줄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의식도 더불어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노사는 이견 없이 세계일류기업이 되자는 각오로 품질향상에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국민과 국가에 공헌한 일이 되지 않겠는가.

 

수없이 누비는 차들을 보며 우리의 몫을 생각해 보았다. 무한경쟁에 사는 우리로서는 늘 희비의 쌍곡선을 그리며 살아가는 듯도 싶다. 아무튼 이번 치킨게임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엔저와 유로화 약세로 해외 판매에서 고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조차 수입 차 공세에 밀려 판매부진에 시달리니 말이다. 그런 생각에 무심코 강을 바라보는 데 맞은 편 큰 건물에 달아 놓은 강 이름 문구가 이상하다싶다. 분명 포강이라 했다. 내가 역사적으로 아는 강 이름과는 다르다. 연암은 그 시대 차가 없으며 다리가 성성하지 않았기에 넘어서는 강 때문 매번 곤욕을 치루었다. 여름철 장마비가 겹쳐 통원보라는 곳에서는 본의 아니게 6일간 여관방 신세도 져야 했다. 심양에 오를 때 연암은 이 강을 건너가며 무슨 말을 했었던가.

 

 

    요동지역의 수, 당, 돌궐등과 수많은 전쟁을 치뤘던 고구려의 성중 가장 아름답다!라는 평을 듣고 있는 백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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