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박정희도 울었다.

[서독 방문중 환영식장에서 광부 간호사들이 고국을 그리워하는
망국(望國)의 한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육영수 여사]
5.16혁명 뒤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케네디 대통령.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화이트 하우스까지 갔었지만
끝내 케네디는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마음에 우리와같이 분단되어 있는 서독에
손을 벌리기 위해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서독에 간호사,광부가 필요해서 그들을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줄출신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명이 몰렸다.
그들중에는 학사출신도 수두룩 했다.
면접볼 때 손이고와서 떨어질까봐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손을 만들어 면접을 봤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위해 온 공항에는
간호사 광부들의 가족 친인척들이 나라가 가난해
이역만리로 돈 벌러가는 가족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
공항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히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간호사들에게 처음 시킨 일은 시체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시체를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광부들은 1000미터 이상의 아래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광부일을 했다.
서독 방송,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간호사,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어떻게 저렇게 일 할수있나싶어,,,,
그들의 별명을 코리안 엔젤이라고 붙여 주었다.
몇년 뒤 서독 뤼부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는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계약까지 했지만
미국정부는 구데타정부에게 비행기를 빌려줄 수 없다는 생각에
계약을 취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독에서 친절하게도 항공기를 보내주었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 해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대통령은 창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땡큐!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부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기뻐하며
5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통령이 연설하기로 되어있는 곳에 갔다.
박대통령과 뤼부케 대통령수행원들이 강당에 들어갔을 때
양복을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연설앞에 애국가가 나왔을 때 목이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해 이역만리 와서
1000미터도 더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있는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열심히 일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대통령은 계속 이말을 반복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역만리 수천미터 아래서 고생하는 광부들과 시체를 닦으며 일하는 어린 간호사들 .....
고국의 배 곯고있는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이상 참지 못해 그는 눈물을 터트렸다.
대통령이란 신분도 잊은채 눈물을 터트리자 광부들은 울면서
육여사 앞으로 몰려가 어머니~! 어머니~!하며 육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다.
옷이 찢어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여사는 울면서 자식같이 한명 한명 껴안아 주었다,
광부들은 뤼부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를 반복했다.
뤼부케 대통령도 울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강당에 들어가지 못한 광부들이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여사를 붙잡고 우릴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부모님이 보고싶어요,,,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여사를 놓아줄 지를 몰랐다.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부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이 도와 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려면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돈은 꼭 갚겠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돈 좀 빌려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당시 유엔에 등록된 나라수는 120 여개국, 필리핀 국민소득 170 여불, 태국 220 여불 등......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밑에 인도만 있었다.
120 여개국 나라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사는 나라였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100달러를 위해 4600년이 걸렸다.
우리는 머리카락을 잘라다 외국에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하며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드신 분들은 서울구경 가기위해 머리카락을 잘랐고,,,
쌀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고,,,,
그래서 한국이 가발산업이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꽃을 외국에 팔았다. 인형을 만들어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였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밍크를 만들어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해서 1965년 수출 1억달러를 달성했다.
1977년은 수출 100억달러,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000달러를 해?하며.....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바라봤다.
조국 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박대통령이 왜 그토록 경제발전에 집착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는 큰 아버지였다. 적어도 지금 우리세대 더 나아가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을 생각할 줄 아는 책임감있는 큰 아버지였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이 만큼이라도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 이유는
박대통령과 당시 세대들이 힘을 합쳐 시체를 닦으며,,,
수천미터 지하에서 땀을 흘리며,,,
월남에서 피를 흘리며,,, 저 열사의 땅 중동에서 ,,,,
일하고 일한 세대들의 고마움을 우리 후손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시 한국의 입장에선 돼지목에 진주목걸이인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허구헌날 반대만 일삼고 자유대한민국의 전복을 획책하는 무리들과 싸우며 일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법, 민주주의도 경제력이 뒷받침 되었을 때 꽃이 핀다.
자,,,그토록 외쳤던 민주주의를 펼쳐보라!
이제 이것은 젊은 그대들의 몫이다.
###

전여옥 의원 홈페이지에 실린 해당 글 전문
<- 독일교민 노무현대통령에게 분노하다 - >
오늘 인터넷서핑을 하다 눈길을 끄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이성우란 이름의 한 유학생이 쓴 글입니다.
‘독일교민-노무현에게 분노하다’란 다소 충격적인 제목의 글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던 중에
‘빌트 푸랑크푸르트(Bild Frankfurt)’란 한 신문에 난 기사 때문에
한마디로 열받은 이야깁니다.
이 신문은 독일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신문이라고 합니다.

빌트 푸랑크푸르트 4월13일자에는 대충 이런 기사가 실렸다고 합니다.
그대로 옮겨봅니다.
<‘그가 대동한 사람은 145명이며, 개인요리사 그리고 가지고 온 물,
호텔방에는 특별히 만들어진 화장하는 방(단 하룻밤을 위하여
방을 따로 필요로 하여 호텔수리를 하였으며--???)
65명의 기자를 대동을 하였으며 80개의 가방에는
온갖 산해진미를 가지고---
인터콘티호텔에서는 그만의 국을 끓일 수 있는
그의 부엌을 준비했으며?‘ >
언뜻 봐서는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중동왕실의 호화나들이를
빗대 글 같습니다.
그런데 그 유학생의 글에 따르면 ‘그’는 노무현대통령입니다.
글을 쓴 유학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 ‘이런 식의 기사가 줄줄이 오르내리며 교민들의 낯을
뜨겁게 하고 있다.
이곳 독일교민들은 미국교민들과 달리
교민들의 이민1세가 대부분 광부나 간호원들로 이뤄져 있다.
--한국인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인 시절,
그들은 이역만리 타국인 독일에 와서 광산과 병원에서 일한 대가를 송금했으며,
한국정부는 그들의 몸값을 담보로 이곳 독일에서 사정사정해서 융자를 해갔다.
그 돈이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초를 닦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그분들을 늘 자랑스럽게 여긴다.
또 과거 한국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교민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던 일을 다들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
그리고 젊은 날 대부분의 돈을 송금한 탓인지
이민1세는 아직도 힘들게 사는 이들이 많고
또 좀 형편이 나아도 아주 검소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대통령의 호화외유’는 교민에게는 물론
독일인들에게도 비웃음거리라고 썼습니다.
저도 Tv에서 노무현대통령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도 살만하니까 초라한 모습으로 구질구질하게 대통령이 다닐 때는 아니라고 봅니다.
또 나랏돈을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언제나 영부인도 동반하지 않고
혼자 외국에 갔던 이승만대통령처럼 하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안에서 TV를 보면서
보란듯이 모자란 것없이 넘치는 여행이란 느낌은 충분히 들었습니다.
또 권양숙 여사가 입은 ‘구중궁궐 풍의 한복’도
그 옛날 이순자 여사가 한번 입었다가 ‘장안의 비웃음을 샀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노무현대통령이 되도록이면 더 많은 나라를 가보고 더 많은 것을 배우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현장학습’을 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외유비용이 많을때는 하루에 수십억원은 한다고 합니다.
다소 그 ‘공교육비용’이 국민이 대기에 버겁긴 하지만
외교는 국력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대로 외국에 한번 다녀올 때마다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가본만큼 아는 시대’라고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오늘 독일유학생의 글을 읽으니 읽는 저도 낯이 뜨거워지네요.
굳이 화장을 할 방을 호텔측에 따로 만들게 한 이유는 뭘까요?
또 물까지 공수해 갈 정도로 독일물이 문제가 있을까요?
(저도 독일에 가본 적있지만 독일생수도 괜찮습니다.)
외국을 가면 그 나라 음식을 맛보는 것도 ‘학습’의 하나인데
굳이 우리 음식을 ‘산해진미’까지 바리바리싸서 ‘현지 한식당’을 차릴 필요가 있을까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네요.
또한 노무현대통령은 진짜 서민대통령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혹시 무늬만 서민이지 그 속은 ‘사치스런 귀족’이 아닌가 -
‘야누스적 정치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취미가 한때 요트였던 것은 세상이 다아는 일이죠.
요트는 서양사람들 사이에 ‘살때 기뻐하지만 팔때는 두배세배로 기뻐한다’고 합니다.
워낙 유지비가 많이 드는 귀족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트놀이가 취미였던 노무현대통령은
서민이란 가면을 쓴 귀족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나라 형편이 어렵습니다.
이른바 상류층 소비는 움직이는데 서민층 소비는 꿈쩍도 안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물가는 치솟아 과일하나 사기도 지하철 타기도 부담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절대권력을 지닌 조선왕조 때도 임금은 반찬 찬수를 줄이고
불편한 잠자리를 하며 민심을 조심스럽게 살폈습니다.
이 어려운 시절에 독일신문에 ‘호화나들이’로 가십거리가 됐다니
참 기가 막히지 않을수 없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제대로 먹고 살게 되었다고?
또 잘 살게 되었다고 해도 더 겸손하고 더 검소한 모양새로 독일을 왔다면
삼성이 광고를 하지않아도 더 환영받고 더 존경을 받았을 것입니다.
절대로 이런 가십의 대상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고싶은 가족을 뒤로 하고 이를 악물고 석탄가루를 마셔가며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이를 악물었던 광부였던 60이 넘은 교민들이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참 답답하고 암담합니다.
이 나라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요즘 엄청 피곤한데도 쉽게 잠들 수가 없습니다.
오늘 밤은 더 잠을 청하기가 힘들겠습니다.

[서독 방문중 환영식장에서 광부 간호사들이 고국을 그리워하는
망국(望國)의 한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육영수 여사]
5.16혁명 뒤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케네디 대통령.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화이트 하우스까지 갔었지만
끝내 케네디는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마음에 우리와같이 분단되어 있는 서독에
손을 벌리기 위해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서독에 간호사,광부가 필요해서 그들을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줄출신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명이 몰렸다.
그들중에는 학사출신도 수두룩 했다.
면접볼 때 손이고와서 떨어질까봐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손을 만들어 면접을 봤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위해 온 공항에는
간호사 광부들의 가족 친인척들이 나라가 가난해
이역만리로 돈 벌러가는 가족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
공항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히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간호사들에게 처음 시킨 일은 시체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시체를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광부들은 1000미터 이상의 아래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광부일을 했다.
서독 방송,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간호사,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어떻게 저렇게 일 할수있나싶어,,,,
그들의 별명을 코리안 엔젤이라고 붙여 주었다.
몇년 뒤 서독 뤼부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는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계약까지 했지만
미국정부는 구데타정부에게 비행기를 빌려줄 수 없다는 생각에
계약을 취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독에서 친절하게도 항공기를 보내주었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 해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대통령은 창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땡큐!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부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기뻐하며
5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통령이 연설하기로 되어있는 곳에 갔다.
박대통령과 뤼부케 대통령수행원들이 강당에 들어갔을 때
양복을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연설앞에 애국가가 나왔을 때 목이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해 이역만리 와서
1000미터도 더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있는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열심히 일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대통령은 계속 이말을 반복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역만리 수천미터 아래서 고생하는 광부들과 시체를 닦으며 일하는 어린 간호사들 .....
고국의 배 곯고있는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이상 참지 못해 그는 눈물을 터트렸다.
대통령이란 신분도 잊은채 눈물을 터트리자 광부들은 울면서
육여사 앞으로 몰려가 어머니~! 어머니~!하며 육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다.
옷이 찢어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여사는 울면서 자식같이 한명 한명 껴안아 주었다,
광부들은 뤼부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를 반복했다.
뤼부케 대통령도 울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강당에 들어가지 못한 광부들이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여사를 붙잡고 우릴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부모님이 보고싶어요,,,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여사를 놓아줄 지를 몰랐다.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부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이 도와 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려면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돈은 꼭 갚겠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돈 좀 빌려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당시 유엔에 등록된 나라수는 120 여개국, 필리핀 국민소득 170 여불, 태국 220 여불 등......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밑에 인도만 있었다.
120 여개국 나라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사는 나라였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100달러를 위해 4600년이 걸렸다.
우리는 머리카락을 잘라다 외국에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하며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드신 분들은 서울구경 가기위해 머리카락을 잘랐고,,,
쌀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고,,,,
그래서 한국이 가발산업이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꽃을 외국에 팔았다. 인형을 만들어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였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밍크를 만들어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해서 1965년 수출 1억달러를 달성했다.
1977년은 수출 100억달러,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000달러를 해?하며.....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바라봤다.
조국 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박대통령이 왜 그토록 경제발전에 집착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는 큰 아버지였다. 적어도 지금 우리세대 더 나아가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을 생각할 줄 아는 책임감있는 큰 아버지였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이 만큼이라도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 이유는
박대통령과 당시 세대들이 힘을 합쳐 시체를 닦으며,,,
수천미터 지하에서 땀을 흘리며,,,
월남에서 피를 흘리며,,, 저 열사의 땅 중동에서 ,,,,
일하고 일한 세대들의 고마움을 우리 후손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시 한국의 입장에선 돼지목에 진주목걸이인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허구헌날 반대만 일삼고 자유대한민국의 전복을 획책하는 무리들과 싸우며 일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법, 민주주의도 경제력이 뒷받침 되었을 때 꽃이 핀다.
자,,,그토록 외쳤던 민주주의를 펼쳐보라!
이제 이것은 젊은 그대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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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 의원 홈페이지에 실린 해당 글 전문
<- 독일교민 노무현대통령에게 분노하다 - >
오늘 인터넷서핑을 하다 눈길을 끄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이성우란 이름의 한 유학생이 쓴 글입니다.
‘독일교민-노무현에게 분노하다’란 다소 충격적인 제목의 글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던 중에
‘빌트 푸랑크푸르트(Bild Frankfurt)’란 한 신문에 난 기사 때문에
한마디로 열받은 이야깁니다.
이 신문은 독일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신문이라고 합니다.

빌트 푸랑크푸르트 4월13일자에는 대충 이런 기사가 실렸다고 합니다.
그대로 옮겨봅니다.
<‘그가 대동한 사람은 145명이며, 개인요리사 그리고 가지고 온 물,
호텔방에는 특별히 만들어진 화장하는 방(단 하룻밤을 위하여
방을 따로 필요로 하여 호텔수리를 하였으며--???)
65명의 기자를 대동을 하였으며 80개의 가방에는
온갖 산해진미를 가지고---
인터콘티호텔에서는 그만의 국을 끓일 수 있는
그의 부엌을 준비했으며?‘ >
언뜻 봐서는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중동왕실의 호화나들이를
빗대 글 같습니다.
그런데 그 유학생의 글에 따르면 ‘그’는 노무현대통령입니다.
글을 쓴 유학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 ‘이런 식의 기사가 줄줄이 오르내리며 교민들의 낯을
뜨겁게 하고 있다.
이곳 독일교민들은 미국교민들과 달리
교민들의 이민1세가 대부분 광부나 간호원들로 이뤄져 있다.
--한국인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인 시절,
그들은 이역만리 타국인 독일에 와서 광산과 병원에서 일한 대가를 송금했으며,
한국정부는 그들의 몸값을 담보로 이곳 독일에서 사정사정해서 융자를 해갔다.
그 돈이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초를 닦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그분들을 늘 자랑스럽게 여긴다.
또 과거 한국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교민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던 일을 다들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
그리고 젊은 날 대부분의 돈을 송금한 탓인지
이민1세는 아직도 힘들게 사는 이들이 많고
또 좀 형편이 나아도 아주 검소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대통령의 호화외유’는 교민에게는 물론
독일인들에게도 비웃음거리라고 썼습니다.
저도 Tv에서 노무현대통령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도 살만하니까 초라한 모습으로 구질구질하게 대통령이 다닐 때는 아니라고 봅니다.
또 나랏돈을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언제나 영부인도 동반하지 않고
혼자 외국에 갔던 이승만대통령처럼 하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안에서 TV를 보면서
보란듯이 모자란 것없이 넘치는 여행이란 느낌은 충분히 들었습니다.
또 권양숙 여사가 입은 ‘구중궁궐 풍의 한복’도
그 옛날 이순자 여사가 한번 입었다가 ‘장안의 비웃음을 샀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노무현대통령이 되도록이면 더 많은 나라를 가보고 더 많은 것을 배우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현장학습’을 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외유비용이 많을때는 하루에 수십억원은 한다고 합니다.
다소 그 ‘공교육비용’이 국민이 대기에 버겁긴 하지만
외교는 국력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대로 외국에 한번 다녀올 때마다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가본만큼 아는 시대’라고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오늘 독일유학생의 글을 읽으니 읽는 저도 낯이 뜨거워지네요.
굳이 화장을 할 방을 호텔측에 따로 만들게 한 이유는 뭘까요?
또 물까지 공수해 갈 정도로 독일물이 문제가 있을까요?
(저도 독일에 가본 적있지만 독일생수도 괜찮습니다.)
외국을 가면 그 나라 음식을 맛보는 것도 ‘학습’의 하나인데
굳이 우리 음식을 ‘산해진미’까지 바리바리싸서 ‘현지 한식당’을 차릴 필요가 있을까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네요.
또한 노무현대통령은 진짜 서민대통령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혹시 무늬만 서민이지 그 속은 ‘사치스런 귀족’이 아닌가 -
‘야누스적 정치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취미가 한때 요트였던 것은 세상이 다아는 일이죠.
요트는 서양사람들 사이에 ‘살때 기뻐하지만 팔때는 두배세배로 기뻐한다’고 합니다.
워낙 유지비가 많이 드는 귀족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트놀이가 취미였던 노무현대통령은
서민이란 가면을 쓴 귀족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나라 형편이 어렵습니다.
이른바 상류층 소비는 움직이는데 서민층 소비는 꿈쩍도 안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물가는 치솟아 과일하나 사기도 지하철 타기도 부담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절대권력을 지닌 조선왕조 때도 임금은 반찬 찬수를 줄이고
불편한 잠자리를 하며 민심을 조심스럽게 살폈습니다.
이 어려운 시절에 독일신문에 ‘호화나들이’로 가십거리가 됐다니
참 기가 막히지 않을수 없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제대로 먹고 살게 되었다고?
또 잘 살게 되었다고 해도 더 겸손하고 더 검소한 모양새로 독일을 왔다면
삼성이 광고를 하지않아도 더 환영받고 더 존경을 받았을 것입니다.
절대로 이런 가십의 대상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고싶은 가족을 뒤로 하고 이를 악물고 석탄가루를 마셔가며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이를 악물었던 광부였던 60이 넘은 교민들이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참 답답하고 암담합니다.
이 나라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요즘 엄청 피곤한데도 쉽게 잠들 수가 없습니다.
오늘 밤은 더 잠을 청하기가 힘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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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박사모 (박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