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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녹)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작성자Thomas|작성시간26.06.11|조회수44 목록 댓글 0

6월 8일 (녹)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제1독서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엘리야>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7,1-6
그 무렵 1 길앗의 티스베에 사는 티스베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 살아 계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 말이 있기 전에는 앞으로 몇 해 동안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2 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다.
3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가,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에서 숨어 지내라.
4 물은 그 시내에서 마셔라. 그리고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하겠다.”
5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대로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로 가서 머물렀다.
6 까마귀들이 그에게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다.
그리고 그는 시내에서 물을 마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12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 

기원후1-2세기, 그리스도교 태동시기와 맞물려 희랍철학과 동양사상이 접목을 이루는 ‘영지주의(靈知主義) 또는 Gnosis (γνῶσις)가 또 하나의 사상적 기류뿐 아니라 그리스도 신앙 안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영지주의는 한 형태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퍼지며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노시스의 한 형태가 그리스도교와 연결되어서 성자를 둘러싸고 이단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바탕이 믿음을 전제로 하는 데 비해 영지주의는 앎(그노시스)를 통해 인간의 신성(神性)을 깨달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노시스는 세상의 물질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영지주의 자들은 종래에 인간존재를 정신(영혼)과 물질(육체)의 두 구성요소로 보던 것을 영, 정신(영혼), 물질(육체)의 세 구성요소로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은 인간을 영적인 인간(Pneumatics), 정신적인 인간(Psychics), 물질적인 인간(Hylics)의 세 부류로 구분하고 자신들만이 영적인 인간의 부류에 속하며 구원의 주류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그노시스는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8가지 행복선언, 다르게는 ‘진복팔단(眞福八端)’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도 있겠지만 그노시스처럼 ‘앓’, 다르게는 ‘깨달음’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실한 삶과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한 동화의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저자며 주인공의 이름은 생각 나지 않습니다.

지금도 글의 내용과 삽화까지 기억나는 것을 보면 지나간 소중한 것은 아름다움으로 다시 메아리로 되돌아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왕국에서 왕의 총애를 받는 총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청렴하고 성실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온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왕의 눈에는 더 없이 좋은 것으로 비추지만 그 옆에서 바라보는 신하들의 눈은 곱지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시골 목동출신의 총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심지어는 모함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 총리가 가끔씩 들리는 곳이 있는데 시골의 한 작은 오두막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는 한 함이 있었는데 늘 잠을 쇠가 잠겨 있었습니다. 이를 수상히 여기는 사람들은 그가 모은 보석을 그곳에 넣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이 소문은 점점 더 붙어서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총리의 성격을 잘 알던 왕이었지만 소문의 소문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왕은 그 총리에게 넌지시 그의 시골집에 대해서 그 안에 잠을 쇠로 잠겨둔 것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총리는 얼굴을 붉힐 뿐 대답이 없었습니다.

왕은 자신에게까지 밝히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괘씸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벼르다 싶이 그 총리를 독려해서 그 집을 찾았습니다.

왕은 총리에게 그 함을 열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곳에 동행했던 신하들은 많은 호기심을 갖고 드디어 밝혀질 고소한 결과에 대해서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들은 총리의 비리가 밝혀지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 총리가 얼굴까지 붉히며 열었던 함을 보고 왕을 위시해 모두 놀랄 뿐이었습니다.

함 안에는 그들이 기대했던 황금덩어리 대신 남루한 누더기의 옷 한 벌과 피리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왕은 기대에 어긋나는 의외의 것들에 대해서 놀라면서 그 총리에게 물었습니다.

자신이 보기에는 별 가치도 없는 것을 왜 잠을 쇠까지 걸어서 보관하는지에 대한 질문 이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자신이 왕의 부르심을 받기 전 목동으로 입었던 옷이었으며 양 떼를 돌보며 불었던 피리였는데, 가끔씩 와서 그것을 들여다보노라면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되고 그것들은 어떤 유혹과 부정의 순간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왕은 그렇게 해서 그날 그때까지 총리가 자신의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고백을 듣고 더 없이 감명을 받았고 그의 적대자들을 처벌했습니다.

우리는 청렴에 바탕을 둔 관료들은 결코 자신의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아무리 공직에 공정성을 둔다고 해도 비리가 발견되면 누구도 그를 신뢰하지 않게 되지요.

신앙인에게도 귀감이 가는 축복의 길을 주님께서는 그곳의 사람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이 말하는 행복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 길은 청빈의 삶, 자신의 욕심을 버리는 삶, 바로 그리스도 자신의 삶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첫 번 째로 꼽으시는 길은 이러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이어서 주님께서는 행복한 사람의 조건을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로 꼽고 있습니다.

이어서 이런 말씀으로 마무리 하십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11절)

실 생활에서 조그마한 오해나 고통이 오면 곧잘 주님의 이 말씀을 잊게 됩니다.

한참 헤매다가 돌아오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선물을 받게 됩니다.

욕심 없는 마음,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가난한 마음이면 그 안에서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잘 되지 않거나 생각지도 못한 고통이 따를 때에는 주님의 계획이 있으신 것이지요.

바로 ‘겸손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교만한 것을 차마 못 보십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게 따끔한 매도 드시지요.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그 뜻을 헤아릴 줄 알고 겸손하게 그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어서 이러한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가 환난을 겪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위로는 우리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견디어 나아갈 때에 그 힘을 드러냅니다.”(2코린 1,6)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는 서로 일치하며 고통과 박해까지도 나누며 궁극적으로 행복에 초대를 받는 것입니다.

그 행복은 세상이 물 흘러가듯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말하는 진리의 원천을 향해 거슬러가며 고통과 박해를 감수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베푸시는 결실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가르쳐 주신 그 길대로 따라 걷는 신앙인은 주님의 도움과 함께 희망을 가지며 오늘도 하느님 나라를 성실하게 기다리며 살 수 있습니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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